EU 농업보조금, 소수 특권층이 꿀꺽...EU, 역내 통합 해칠까 감시 소홀

2019.11.04 17:16 입력 2019.11.04 17:19 수정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라벤더 농장.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라벤더 농장.

유럽연합(EU) 농업보조금이 몇몇 국가 소수 특권층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가고 있음에도 EU가 이같은 상황을 방관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해당 국가의 반발로 역내 통합이 저해되는 것을 EU가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EU 방관 속에 헝가리, 체코, 불가리아 등 중·동유럽 국가에서 권력층과 부유층이 보조금을 독식하면서 ‘현대판 봉건제’ 비판까지 나온다.

EU는 역내 농산물의 안정적 공급과 농가 소득 유지를 위해 연간 650억달러(약 75조4325억원)의 농업보조금을 지급한다. 이는 EU 전체 지출의 약 40%에 해당한다. 농업보조금은 1962년 수립된 공동농업정책(CAP)의 일환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은 전시 등 비상 상황이 닥쳤을 때 유럽의 식량주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공동농업정책을 도입했다. 유럽이 평화와 번영을 누리면서 식량주권 확보라는 명분은 약해졌다. 공동농업정책의 규모는 1980년대에 더욱 확대됐다.

현재 유럽 농업은 EU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고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다.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한 사례를 보자. 노스무어요크 국립공원에 사는 농부 리처드 핀들레이는 700여마리의 양을 키워 연간 1만2000파운드(약 1799만원)를 번다. 연간 20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입이지만 EU의 농업보조금이 없으면 3만2000파운드의 적자를 보게 될 상황이다. 영국의 경우 농가 평균 소득의 61%가 EU의 직불금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 대다수 농부들이 비슷한 처지다.

사정이 이런데도 ‘유럽 데이터저널리즘 네트워크’에 따르면 EU 농업보조금의 80%는 수령액 기준으로 상위 20%에게 돌아간다. 특히 헝가리, 체코, 불가리아 등 중·동유럽 국가에서는 특권층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로 국유지가 많았던 이 국가들은 2000년대에 EU에 가입하면서 EU 농업보조금을 받게 됐다. 하지만 정치 권력과 결탁한 소수 특권층이 국유지를 장악해 농업보조금을 독식하고 있다. 헝가리에서는 오르반 빅토르 총리와 친분이 있는 기업인 2명이 2018년에만 농업보조금 2800만달러(약 324억원)를 독식했다. 체코에서는 2017년 총리직에 오른 안드레이 바비시 총리가 소유한 기업들이 지난 한 해 동안 4200만달러(약 486억원)의 보조금을 가져갔다. 불가리아에서는 정부 관료들과 결탁한 농업 기업 100개가 전체 농업보조금의 75%를 타낸 것으로 드러났다. 슬로바키아에서는 지난해 정치인들과 이탈리아 마피아가 결탁한 농업보조금 횡령 시도를 취재하던 저널리스트가 살해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EU는 적극적인 감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EU 집행부는 가뜩이나 극우 정당의 부상과 브렉시트 논의 등으로 역내 통합이 절실한 상황에서 보조금 문제로 이들 국가와 충돌하는 일을 피하려 한다. 루카시 겐크네히트 체코 상원의원은 지난달 EU가 보조금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EU 정상회의를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극소수 권력자들만이 이익을 누리는 현대판 봉건제에 EU가 자금을 대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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