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 악몽 시작되나…각국 중앙은행들, 해결방안 마련에 고심

2021.10.05 16:18 입력 2021.10.05 16:41 수정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석유화학공장.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석유화학공장.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경제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채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상승)이 세계 곳곳에서 포착되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서둘러 긴축정책으로 돌아서면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수 있고, 그렇다고 완화정책을 지속하면 물가 폭등에 직면할 수 있어서다. 경제학자들은 공급부족이 촉발한 물가 상승은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서 세계 중앙은행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에너지가와 원자재 가격이 동반 상승하면서 지구촌 물가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은 4일(현지시간) 미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2.3% 급등한 77.62달러로 거래를 마쳐 약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북해 브랜트유 역시 2.5% 치솟은 81.26달러로 마감돼 2018년 이후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 산유국 협의체인 OPEC플러스(OPEC+)가 11월에도 기존 증산 속도를 유지하기로 하면서 유가상승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또 최근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서 화력발전소들이 대체원으로 원유에 눈을 돌린 것도 유가상승의 원인 중 하나다.

원자재 가격도 일제히 오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에너지와 금속, 곡물 등 23개 품목의 가격을 추적해 집계하는 ‘블룸버그 상품 스폿 인덱스’는 이날 1.1% 상승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초기인 지난해 3월 4년만의 최저치를 기록한 이후 90% 이상 오른 수치다. 경제가 회복되면서 수요가 늘어났지만 공급이 따라주지 못하는 게 원인으로 지목된다.

인플레이션이 뚜렷해지면서 각국 중앙은행은 대처 방안을 두고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노르웨이, 체코, 멕시코, 콜롬비아, 칠레 등 경제 신흥국들은 줄줄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긴축에 나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2023년 이전에 금리인상이 이뤄질 것을 시사하는 등 긴축정책 전환에 시동을 걸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지난달 채권매입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테이퍼링을 시작했다. 하지만 금리인상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장기간 경기침체를 경험한 일본도 완화정책을 거두는 데 소극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대책이 제각각인 이유는 그만큼 팬데믹 이후 경제대응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메간 그린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세계 경제가 성장둔화와 인플레이션 압박을 동시에 받는 스태그플레이션은 모든 중앙은행들이 꺼려하는 “최악의 악몽”이라고 표현했다. 통상적으로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를 높여 기업과 가계의 투자·지출을 억제한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성급하게 금리를 인상하면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수도 있다.

성급한 금리인상이 경제에 독이 된 선례도 있다. 금융위기 여파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2011년 당시 식량·에너지 가격이 오르자 ECB는 그해 두 차례 금리를 인상했다. 하지만 이후 유로존 국채시장에서 채무불이행 우려가 커지면서 그리스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의 국채 가격이 급락하며 유로존 경제가 휘청였다.

게다가 공급망 붕괴와 노동력 부족, 에너지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통화정책의 변화만으로는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앤드류 베일리 영국은행 총재는 “통화정책이 바뀐다고 반도체 공급이 늘어나거나 운송 노동자들이 증가하거나 (풍력발전을 위한) 바람의 양이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현재의 인플레이션 대처를 기존방식대로 해서는 안된다고 FT에 말했다.

투자연구기관 BCA리서치의 다발 조시 최고전략가는 “공급충격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긴축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위험하다”면서 전통적인 경제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개입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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