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읽음

미국의 노동자 430만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2021.10.15 18:05 입력 2021.10.15 18:19 수정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에서 노동자 430만명이 사라졌다. 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월스트리트저널은 14일(현지시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직장을 떠난 수백만명의 미국 노동자들이 여전히 일터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 1년 반이 넘었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약 430만명의 노동자들이 직장으로 복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이던 2020년 1월에 비해 2021년 8월 현재 미국의 노동자 총수는 497만명이나 줄어들었다.

반면 코로나19로 인한 침체기를 넘기면서 기업들의 노동자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 구인 건수는 지난 6월 이후 3개월 연속 1000만 건이 넘었다. 지난 8월 구인 건수는 약 1044만 건으로 집계됐다. 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리는데 노동자들은 점점 더 많이 직장을 그만두는 모순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손 부족 사태가 사상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물류 대란 등 공급망 혼란과 물가 급등을 야기하며 미국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대퇴사(Great Resignation)’라 불릴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월스트리트저널은 그 원인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한다. 우선 아동 돌봄 인력 부족을 노동자들이 직장으로 복귀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지난해 2월에 비해 지난 9월 아동 돌봄 인력은 10.4% 감소했고, 이들의 임금은 10% 증가했다. 아이 돌봄 서비스를 구하는 게 더 어려워지고 값도 비싸짐에 따라 일부 부모들은 직장에 돌아가지 않고 집에 남아 아이들을 돌보기로 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폐쇄로 이주노동자 수가 감소했다거나,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가 금융시장 활황으로 이득을 챙겨 조기 은퇴를 했다는 등의 분석도 나왔다. 인력 수요가 많은 만큼 보다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기존 일을 그만두는 배경이 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가 직장 복귀를 가로막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경우도 있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미 상무부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본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됐거나 코로나19 확진자를 돌보느라 일하지 못했다는 이들이 250만명이나 늘었다.

공화당 등 보수정당과 기업들 사이에서는 정부 보조금이 일자리 복귀를 지연시키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골드만삭스는 한때 일주일에 600달러씩 지급됐던 실업수당이 결국엔 인력 부족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난 9월 700만명에게 실업수당을 지급하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 만료됐는데도 올해 들어 구직자 수는 가장 적게 나타났다. 이 때문에 보조금이 인력 부족을 야기하는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미국 노동자들의 반란’이란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적은 임금이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해 노동자들이 갖고 있던 불만들이 일상에 ‘잠시 멈춤’을 가져온 코로나19로 인해 폭발하면서 일을 그만두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미국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다시 생각하고, 형편없는 일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게 가치있는 일인지를 되묻게 됐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그러면서 2019년 평균 실질임금이 40년 전과 비슷한 수준이고,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장시간의 노동을 하고 있는 미국 노동자들의 현실을 지적했다.

기업들은 구인난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음식점과 술집들은 지난 2월에 비해 시급을 12.7% 올렸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그럼에도 직원을 구하지 못하면 영업일이나 영업시간을 단축하기도 한다. 호텔은 이전엔 기본으로 제공했던 서비스를 줄이고 있다. 예컨대 조식 뷔페를 없애거나, 이전엔 기본으로 제공했던 객실 청소 서비스를 요청하는 손님들에게만 제공하는 식이다. 가게에서 셀프 계산대를 설치하거나, 병원에서 환자들 심박수를 재는 기계를 도입하는 등 노동력을 절약할 수 있는 기술에 투자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인력이 부족한 만큰 기존 직원들에게 초과근무를 요구하는 기업들도 늘었다. 미국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제조업 노동자들의 평균 초과근무 시간은 지난달 4.2시간으로, 지난해 4월 2.8시간에 비해 증가했다. 인력 부족으로 그만큼 더 강도 높은 업무를 짊어지게 된 노동자들은 파업에 나서기도 했다. 예컨대 식품제조업체 켈로그의 미시간, 네브래스카, 펜실베이니아, 테네시주 공장 노동자 1400여명은 주 7일이나 하루 16시간 근무를 감당한다며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지난 5일 파업에 들어갔다. 메사추세츠의 성 빈센트 병원에선 코로나19로 근무환경이 버틸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간호사 700여명이 간호인력 보충을 요구하며 지난 3월부터 메사추세츠 역사상 가장 긴 의료 파업에 들어갔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