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우생보호법 근거로 1만6천여명 강제 불임수술
최고재판소 “위헌”…정부·피해자 ‘배상금’ 첫 합의
일본 정부에 의한 ‘강제불임’ 수술 피해자인 니시 스미코씨(77)가 약 1억5000만원 상당 배상을 받게 됐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현지 언론이 1일 보도했다.
강제불임이란 장애인이 자녀를 낳지 못하도록 일본 정부가 강제한 임신중지, 생식기 제거 수술 등을 뜻한다. 일본 국회에 따르면 강제불임 수술 피해자는 1만6000여명에 달해, 현지 언론 등은 “전후 최대의 인권 침해”로 평가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니시씨가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도중이던 지난달 31일 도쿄 지방재판소에서 정부가 니시씨에게 1650만엔(약 1억5000만원)을 배상하는 것으로 양측 간 화해가 성립했다.
재판상 화해란 당사자 간 상호 양보를 통해 소송을 종료하는 행위다. 니시씨는 강제불임 사건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 가운데 첫 화해 사례로, 아사히신문은 이를 계기로 “각지에서 진행 중인 비슷한 소송에서도 화해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앞서 대법원 격인 일본 최고재판소는 지난달 3일 ‘옛 우생보호법’에 따라 정부가 불임수술을 강요한 것은 헌법 위반이라며 피해자 상대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정부에 의해 불임수술을 강제당한 장애인 39명이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결과다.
옛 우생보호법은 나치 독일의 ‘단종법’을 따라 1948년 만들어졌다. 당시 유행하던 ‘우생학’에 근거, 유전병과 장애를 지닌 자손 출생을 막고 국민 정신·신체를 ‘개량’한다는 취지였다. 당시 일본 국회는 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일본 정부는 이 법에 따라 유전성 질환자, 지적장애인 등을 상대로 임신중지·불임 수술을 강요했다. 여성의 자궁, 남성의 고환을 적출하는 사례도 있었다. 법 시행 초기 정부가 부득이한 경우 수술 대상자를 속여도 된다고 시달한 사실도 밝혀졌다.
일본 국회가 지난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이 법에 따라 불임수술을 받은 2만4993명 중 강제로 수술을 받은 경우가 1만6475명으로 3분의 2에 달한다. 이 중 10대 이하 청소년이 2714건이었으며, 9세 어린이도 강제 수술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AFP에 따르면 남성 피해자인 기타 사부로씨는 13세 때 정관수술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어린 시절 뇌성마비로 장애를 입은 니시씨도 그 나이 무렵 자궁을 적출당했다. 법이 개정된 건 입법 반세기 이후인 1996년에 이르러서였다.
수많은 피해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사과와 배상 논의는 뒤늦게 시작됐다. 2019년 일본 국회가 강제불임 수술 피해자에게 1인당 320만엔(약 2900만원)을 지급하는 피해자 구제법을 제정했지만, 피해자들은 국가가 법적 책임을 명시하지 않았다며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금액도 피해 회복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불법행위에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정 기간(제척기간)인 20년이 지나 책임을 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부 고등재판소도 정부 논리를 인정해 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최고재판소는 강제불임이 위헌이라면서, “제척기간을 적용해 국가의 책임을 면하게 하는 것은 현저히 공평과 정의에 반한다”며 정부가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고재판소가 법률 규정을 위헌으로 판단한 13번째 사례다.
이후 지난달 17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피해자들과 만나 공개 사과하고 판결에 따른 신속한 보상을 약속했다. 피해자 보상을 위한 초당적 의원연맹도 꾸려졌다. 원고 측 변호인단은 이날 연맹 회의에 참석해 피해자 보상금 1500만엔, 배우자 보상금 500만엔을 요구했다고 닛케이는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