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루틴의 중요성

2019.11.25 20:50 입력 2019.11.25 20:52 수정 오은 시인

일요일 아침마다 조금 다른 기분으로 일어난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지만, 왠지 몸이 가볍게 느껴진다. 평소와는 달리 숙면을 취해서? 아니다. 전날 과음으로 숙취가 있어서? 아니다. 내게 일요일은 다름 아닌 글을 쓰는 날이기 때문이다. 기지개를 켜고 찬물을 들이켠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링 위에 오르는 복서처럼 비장하지도 않고, 면접장에 들어서는 구직자처럼 손에 땀을 쥐는 심정은 아니다. 인근의 카페로 이동하는 발걸음은 경쾌하기 그지없다. 적당한 긴장과 흥분이 뒤섞인 상태가 된다.

어릴 때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시는 엄마를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까맣고 뜨겁고 쓰기까지 한 음료를 왜 굳이 아침부터 마실까. 생각해보니 그것이 엄마가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이었다. 블랙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에 엄마가 으레 짓곤 하던 표정이 떠오른다. 만족과 결의가 둘 다 담긴 표정이었다. 머릿속으로는 오늘 해야 할 일의 목록이 한 줄 한 줄 적히고 있었을 것이다. 정확히 20년 후, 나 또한 하루를 그렇게 시작하고 있다. 까맣고 뜨겁고 쓰기까지 한 음료가 나의 아침을 열어젖힌다.

중학교 때 루틴(routine)이란 단어를 처음 배웠다. 루틴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었다. ‘판에 박힌’ 일과나 ‘지루한’ 일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우유(커피)를 마시고 공부(일)하고 점심 먹고 공부(일)하고 하교(퇴근)하는 것. 오늘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고 아마 내일도 오늘과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다. 루틴은 삶의 진부함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커가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루틴이 있기에 우리는 애써 생기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닐까. 판에 박혔다거나 지루하다는 말에서 편안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제는 이 규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다. 루틴이 심신을 만든다.

타석에 들어서서 배트를 땅에 두 번 두드리는 야구선수, 출발하기 직전까지 신나는 음악을 듣는 수영선수, 껌을 씹으며 마음을 다잡는 골프선수 등 운동선수들에게도 루틴은 중요하다. 루틴대로 하지 않아도 기량을 발휘하는 데 큰 지장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마음은 못내 불안할 것이다. 출근길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을 양손으로 감쌀 때, 그것을 조심스럽게 목 뒤로 넘길 때, 이 소소한 의식이 비로소 오늘이라는 시간에 내가 발 들이게 되었음을 알려준다. 힘이 불끈 솟는다거나 없던 자신감이 갑자기 생겨나지는 않지만, ‘다행’의 상태에 진입할 수 있다. 퇴직 후 출근할 데가 없어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니, 루틴은 일상을 구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평소와는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도 루틴은 중요하다. 언젠가부터 화가 날 때면 의도적으로 심호흡을 했다. 한껏 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그것을 내쉴 때면 마음이 가라앉았다. 씩씩거리는 상태에서 씩씩한 상태가 되었다. 침잠이 아니라 진정이었다. 화를 내려고 했던 대상도, 이유도 희미해졌다. 반면, e메일 발송이나 화장실 청소처럼 촌각을 다투는 일은 아니지만 지금 하면 나중에 편할 일들은 비교적 선명해졌다. 그런 일들을 수행하며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강연장에 들어서기 전, 나는 화장실에 간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거울을 바라본다. 강연을 마친 직후의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만족스러운 표정의 사람들, 장내에 감도는 온기, 곳곳에서 나직하게 들려오는 웃음소리… 자기 최면을 거는 일은 중요하다. 실제로 부정적인 마음가짐으로 행사에 임했을 때 잘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기대하지 않는 데서 불쑥 기쁨의 순간이 튀어나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기 암시를 하는 루틴이 안정감을 갖게 해준 셈이다.

나만의 루틴을 만드는 것은 판을 짜고 틀을 세우는 일이다. 판과 틀이 없었다면 나는 허우적댔을 것이다. 집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치다. 익숙함이 나를 나답게 만든다. 루틴은 안전망이자 안정망이기도 하다. 나는 그 속에서 일하고 밥을 먹고 하품하고 커피를 마신다. 산책하고 메모하고 뜨거운 물로 목욕한다. 루틴이 있기에 다른 궁리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엄격한 규칙 속에서 규칙을 위반하는 것을 상상한다. 빤한 일상일수록 적극적으로 일탈을 꿈꾼다. 루틴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원문기사 보기
상단으로 이동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경향신문 뉴스 앱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