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의료원장의 호소 “즉시 입원 가능한 중환자 병상, 수도권 사실상 0개”

2020.12.08 06:00 입력 2020.12.11 15:05 수정 이혜인·이창준 기자

“현재 수도권에서 즉시 입원가능한 중환자 병상은 사실상 0개입니다.”

확진자가 또 다시 600명대를 넘긴 지난 6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국립중앙의료원의 정기현 원장의 목소리에는 초조하고 착잡한 심경이 묻어났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중앙감염병병원으로서 코로나19 환자 치료병상 배정·전원을 총괄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날 정부가 브리핑에서 전한 중환자 병상 현황은 달랐다. 박능후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본부장은 “환자가 바로 입원할 수 있는 중환자 병상은 아직 전국 55병상, 수도권 병상 20병상이 남아있다”며 “지금의 환자 증가 추세가 이어진다면 한 두 주 후부터는 중환자 병상이 부족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우철훈 선임기자

의료대응의 컨트롤타워인 국립중앙의료원과 정부가 파악한 병상 현황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컸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7일 오전 서울 중구의 국립중앙의료원(이하 의료원)에서 정 원장을 만났다. 그는 “중수본이 말하는 것은 비어있는 중환자 병상까지 다 포함한 것인데, 지금 필요한 것은 즉시 이용가능한 중환자 병상”이라며 “막상 중환자가 발생해 의료원 상황실에서 전화를 하면 해당 병원들은 ‘인력이 없어 받을 수 없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가 발표하는 중환자 병상 수치는 당장 이용이 불가능한 병상까지 모두 끌어 모은 ‘행정적 숫자’라는 것이다.

정 원장은 “300병상 이상을 갖춘 공공병원은 (상황이 제일 나은) 수도권에서도 국립대를 제외하면 세 곳뿐인데, 이제까지 공공병원에서 중환자 대응까지 다 맡아왔다”며 “하지만 지금의 확진자 증가세는 민간 상급종합병원의 적극적 동참 없이는 절대 버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동원령을 선포하고, 전체 의료 체계가 함께 대응하도록 방향성을 제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 원장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정부와 의료원의 병상 현황 차이가 너무나 크다.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인가.

“정부가 말하는 수치는 이 정도 병상을 우리가 확보해 놨다는 것으로, 준비를 시키면 며칠 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는 병상까지 포함돼 있다. 그러니 실제로 환자가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중환자 병상은 그보다 적다. 어젯밤에도 중환자 전원 요청을 하기 위해 전화를 돌렸지만, 한 명도 보내지 못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파악한 가용 가능 중환자 병상은 0이라고 한 것이다. 위험 징후가 보여 이송 요청을 했는데 전원이 안되면, 해당 병원에서 버틸 수밖에 없다. 그러다 중증으로 악화된 후에는 이송하다가 사망할 위험이 높아진다.”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선별진료소에서 확진환자가 CT촬영등 검사를 마친뒤 앰블런스로 이동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중수본의 ‘중증환자 전담 치료병상’ 현황(6일 기준)을 보면 전국에 177개 중증환자 전담 치료병상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 유행 추세를 감안하면 얼마나 더 추가 확보해야 한다고 보나.

“8~9월 2차 유행을 대응하면서 보니, 하루 평균 확진자가 1000명 수준이 되면 400개는 필요하다. 다행히 3차 유행 초기에는 2차 유행 때보다 젊은층 확진 비율이 높아, 고위험군인 고령층 확진자 비율이 10%포인트가량 낮았다. 하지만 이제는 환자 규모 자체가 (하루 600명 이상으로) 커졌기 때문에 시차를 두고 중환자 숫자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 겨울철 대유행은 예상 가능한 것이었는데, 미리 대비하지 못한 이유가 궁금하다.

“원래 중환자는 일반 환자보다 2배 이상의 의료 인력이 붙어야 하기 때문에 병상을 늘리는 것이 쉽지 않은데, 방호복을 입고 봐야 하는 코로나19 중환자는 일반 중환자보다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중환자 4명을 치료하려면 간호사만 30명 넘게 필요하다. 벤틸레이터, 에크모 등 기계장치도 필요하고,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넓은 공간에서 환자를 봐야 하기 때문에 300병상 혹은 500병상 이상의 상급종합병원에서만 중환자를 볼 수 있다. 그래서 환자 규모 증가에 대비해 (의료진은 물론) 산소호흡기 몇 개가 필요한지까지 디테일한 계획을 미리 세워야 한다고 2~3월부터 얘기를 했는데….”

- 중수본은 국가가 관리권을 가지고 있는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공공병원)을 중심으로 빠르게 중환자 병상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지역에 중환자를 볼 역량을 갖춘 300~500병상 이상의 공공병원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에도 국공립대병원을 빼면 중환자를 볼 수 있는 공공병원은 서울의료원, 보라매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세 곳뿐이다. 이 세 곳에서 이미 50여개의 중환자 병상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미 한계치다. 더 이상 내놓을 병상이 없다. 민간 상급종합병원의 참여 없이는 계속 늘어나는 중환자를 감당할 수 없다.”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우철훈 선임기자

- 공공병원으로 코로나19 진료를 일원화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수십 개의 의료기관에 병상이 분산되면 효율적 운영이 불가하니 거점전담병원으로 시설과 인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3차 대유행 대응 단계별 중환자 진료 전략’을 내놨다.

“저는 굉장히 기만적인 태도라고 본다. 중환자를 볼 시설과 역량을 갖춘 공공병원이 없는 상황에서, 지금의 전국적 대유행은 민간 상급종합병원의 참여 없이는 감당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치료만 전담하면, 취약계층이나 차상위계층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없다. 어제도 10t 트럭에 받혀서 하반신 쪽이 다 손실된 중증 외상환자가 인근 병원 6개를 돌다가 의료원으로 왔다. 코로나19 상황을 이유로 들며 아무도 안 받아줬다고 한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도 의료원이 전담병원이 되면서 2~3개월 사이에 수백명의 환자를 내보내야 했는데,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됐을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 앞으로 정부와 의료계가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나.

“우선, 중수본이 민간 상급종합병원 동원령을 선포해야 한다고 본다. 법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지만, 중환자실을 더 열고 같이 감당하자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상급종합병원으로서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동안 혜택도 받았다. 지금은 유불리나 이해관계를 따질 시점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 또한 권역별 감염병원에 대해서는 민간 병원이 기술이나 인력을 지원하는 ‘지원 병원’ 역할을 해야 한다. 보건소와 지역의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 대응 체계도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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