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죽음으로 일깨운 대학 민주주의

2015.08.20 21:28 입력 2015.08.20 21:39 수정
김세환 | 부산대 교수·중문학

[기고]죽음으로 일깨운 대학 민주주의

현실은 요지부동이었다. 단식 12일째, 탈진한 교수들이 병원에 실려 가고 메아리 없는 농성장은 공허한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한 교수가 본관 건물 옥상에 오르더니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곧 ‘카톡’에 교수 투신을 알리는 문자가 떴고, 현장에 몰려든 교수들은 나뒹구는 유서를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현실은 이틀 만에 바뀌었다. 부산대 본부와 교수회는 “총장 직선제를 실현하기 위한 적법한 절차를 밟기로 합의했다”는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이렇게 간단한 일에 두 자녀의 아버지이자 한 여인의 남편을 앗아가야 했던가?

교육부는 그동안 모든 국립대의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고 간선제로 전환할 것을 강요했다. 전국 40개 국립대 중 39개 대학이 이미 간선제로 바꿨다. 부산대는 국립대 중 유일하게 총장 직선제를 고집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대학역량강화사업에서 탈락, 60억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반면 교육부의 요구를 잘 따르는 대학들은 사업신청을 줄줄이 따내는 행운을 누렸다.

현 부산대 총장(사의를 표명한 상태)이 문제였다. 그는 직선제 고수를 공약으로 당선됐는데, 공약을 뒤집은 것이다. 이에 교수들은 반발했고 교수회장은 단식으로 약속이행을 요구했다. 그러나 단식기간 12일 동안 총장은 휴가라면서 한 번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간선제와 직선제의 차이는 무엇인가? 사실 교육부의 요구는 간선제만이 아니다. 간선제로 총장 선출을 한 3개 대학(경북대, 공주대, 한국방송통신대)이 있지만 교육부가 제청을 하지 않아 현재 총장을 임용해 달라는 내용의 재판이 대법원까지 올라간 상태다. 간선제는 하나의 핑계일 뿐이고 교육부의 입맛에 맞는 인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교육부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직선 총장제, 간선 총장제 두 제도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다만 교육부가 국립대학을 확실하게 길들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간선제가 편하다. 간선제가 정착되면 교육부 퇴직 관리를 원하는 대학들이 줄을 이을 것이다. 현재도 교육부 퇴직 관리가 총장으로 가 있는 대학이 적지 않다. 이는 전관예우의 덕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군사정권의 탄압에도 지금의 대학들과 같은 일사불란한 굴종은 없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무서운 세상이 됐다.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권이 법률에 보장돼 있지만 이것은 무늬에 불과하다. 실제로 국립대의 재정을 주무르는 교육부의 공문 한 장이면 법은 멀기만 하다. 대학의 경쟁력 제고라는 구실로 예산을 균등하게 배분하지 않고, 여러 사업으로 쪼개 대학의 신청을 받는다. 이런 현실에 맞서야 하는 총장들의 고민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교육부는 또 행정 편의를 위해 대학의 모든 것을 계량화해 점수로 나타낸다. 가령 교수 업적에서 10편의 논문은 무조건 9편보다 우수한 점수를 받는다. 이러한 숫자 경쟁의 구도에서는 학문은 사라지고 부정과 사기꾼이 판치게 된다. 장관에 발탁되면 거의 모두가 논문표절 문제를 달고 오지 않는가? 한평생 한두 가지의 주제로 아무도 보지 않는 수십 편의 논문을 제조하는 것이 교육부가 만들어 놓은 전공학문의 실체다.

직선제가 꼭 좋은 선거방식은 아니다. 다만 교육부가 대학과 학문을 통치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나마 직선제가 대학을 권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민주적 수단이 될 수 있다. 교육부는 이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는 행정부의 조직이다. 그러나 교육현장은 교육부를 공공의 적으로, 때로는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하기도 하는 현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휴대폰에 문자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희생을 감당한 고현철 교수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우리의 무뎌진 의식을 일깨워 권력의 횡포로부터 교육과 학문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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