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스태프는 언제쯤 착취당하지 않을까

2019.10.05 11:53 입력 류인하 기자

/ pixabay @kaleido-dp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2013년 2월 청년유니온이 미용실 스태프들의 열악한 근무실태를 폭로하고 나섰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젊은 스태프들은 하루 최대 12시간, 주 6일을 근무하고도 평균 93만원의 월급을 받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2013년 당시 시간당 최저임금은 4860원이었다. 그러나 평균 월급을 기준으로 한 미용실 스태프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2980원이었다. 언론은 청년유니온을 비롯해 각종 노동연구소에서 발표한 노동실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고용노동부도 집중 근로감독을 벌여 일부 제재를 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2019년 현재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미용실 스태프가 하루 12시간 주 6일을 근무하고 받아가는 돈이 6년 전보다 10만원 오른 103만원이었다.

2019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8350원이다. 6년 사이 최저임금은 1.7배 넘게 올랐지만 미용실에서 오늘도 헤어디자이너의 잡일을 돕고, 고객의 머리를 말려주는 스태프들의 월급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열악해졌다.

박가은씨(가명·24)는 2017년 5월 학교 선배의 소개로 마포구의 한 유명 프랜차이즈 미용실에 스태프로 취직했다. 근로계약서는 그가 일한 지 석 달이 지나서야 작성했다. 매장에서 일하던 도중 본부장이 “계약서를 쓰자”며 서류를 내밀었다. 계약서는 누가 봐도 불공정 계약이었다. 3년 이내에 퇴사해 다른 매장으로 옮기거나 미용실 기준 1.5㎞ 이내 거리에 매장을 차릴 경우 1500만원을 ‘위약벌’로 지급해야 한다는 문구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 일하는 직원들 다 동일한 계약서야”라는 말에 그 역시 서류에 서명했다.

매장은 오전과 오후 조로 돌아갔다. 오전 조는 아침 10시에 매장문을 열어 저녁 8시30분까지 일했다. 오후 조는 낮 12시부터 밤 10시30분까지 근무했다. 하루 10시간 주 6일을 꼬박 일했다. 그러나 월급은 최저임금에 한참 못미쳤다. 그가 받아야 할 월급의 절반 가까운 돈을 매장에 돌려줘야 했기 때문이다. 스태프들에게 각종 커트 기술부터 펌, 염색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명목으로 매장이 한 달에 가져가는 돈이 40만원이었다.

“스태프로 들어와 (초급 디자이너로 승급하더라도) 3년간 꼬박 커트 교육을 받아야 했어요. 주 1회당 10만원씩 한 달에 40만원이 커트 교육비로 나갔어요. 거기에 매달 레벨테스트비 명목으로 22만원을 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15만원이었는데 인건비가 올랐다며 2018년에는 20만원을, 올해는 22만원을 테스트비로 내라고 했습니다. 점심밥값 명목으로도 10만원을 냈습니다. 그 돈으로 반찬 배달을 시켜 먹었어요. 매달 총 72만원을 돌려드렸습니다.”

여기에 실습 및 테스트에 필요한 가발도 매장을 통해 월 20만~30만원의 돈을 내고 구입했다. 시중 판매가보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외부에서 사올 수는 없었다. 미용실을 통해 구입한 커트용 가발은 커팅 연습을 하고 나면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박씨가 2년간 매달 받은 월급은 70만원이었다. 여전히 커트 교육을 받아야 하는 초급 디자이너로 승급했을 때에도 그는 한 달에 105만원을 겨우 손에 쥘 수 있었다.

실습에 필요한 용품도 매장 통해 구입

지방의 한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스태프로 일하다 퇴사한 장모씨(23)는 하루 10시간, 주 6일을 근무하고 1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월급으로 받았다. 월급명세서에는 최저임금 8350원을 기준으로 한 180여만원이라는 액수가 찍혀 있었지만 이 중 80만원은 매장에 돌려줘야 했다. 교육비 명목이었다. 이 매장에 근무하는 스태프들은 최소 50만원에서 80만원까지 교육비 명목으로 돈을 미용실에 돌려줬다. 교육비와 강사 인건비, 재료비 등이 포함된 가격이었다. 대표는 “스태프들은 매장에 속한 직원”이라며 프랜차이즈 마크가 새겨진 가위와 핀셋 등을 강제로 사게 했다. 당연히 시중 가격보다 비쌌다. 반면 디자이너들은 개별적으로 외부 구매가 가능했다.

이들이 한 달에 최저시급의 절반도 되지 않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버티는 이유는 ‘디자이너가 돼야 한다’는 목표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이를 놓고 ‘열정페이’라고도 부른다. 열정페이는 개인의 노동력 착취를 미화한 단어에 불과하다. 열정페이는 불법이다. 최저임금법 위반이다.

청년유니온이 2013년 2월 미용업계 실태조사를 발표하고 있다. / 청년유니온 홈페이지

“대표님께 ‘월급이 너무 적다. 교육비를 좀 깎아주시면 안 되냐’고 부탁드린 적이 있어요. 그러자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어디 가나 (월급이나 근무형태는) 똑같다. 네가 어디 가서 이런 기술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런 기술은 아무 데서나 못배운다’고 해요. 그러면 또 억울해도 출근하고, 교육비 뜯기고 그렇게 살았어요.”(서울 A프랜차이즈 매장 스태프)

미용업계는 전형적인 ‘도제식 교육’이 이뤄지는 분야다. 미용전문대학을 나와 기본기술을 습득해도, 별도의 자격증을 취득해도, 결국은 매장에서 최소 3년의 실습경험을 쌓아야 미용사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스태프들은 때문에 ‘인턴(교육생)’으로 불리기도 한다. 자신이 속한 미용실에서 원장이나 수석디자이너, 실장급 디자이너로부터 샴푸 기술(머리감기기)부터 커트, 펌, 염색 기술 등 미용실에서 이뤄지는 각종 기술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얘기다. 다른 미용실에서 1~2년의 스태프 경험이 있어도 3년을 채우지 못하면 또 다른 미용실에 가서도 처음부터 다시 스태프 기간을 밟아야 한다. 교육을 명목으로 한 각종 착취가 이뤄져도 버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학이나 학원에서 배우는 ‘기술’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기 어렵다.

헤어디자이너 박명수씨(31)의 말이다. “실습용 가발은 마네킹 머리가 둥글고 거의 비슷하잖아요? 그런데 고객들의 머리 모양은 제각각이죠. 어떤 분은 뒤통수가 절벽인 분이 있고, 앞뒤 짱구도 있고, 머리 양쪽만 두드러지게 튀어나온 분도 있고요. 쌍가마, 회오리가마, 기존에 해오던 가마 스타일에 따라 커팅 기술도 전부 다 달라야 해요. 머릿결에 따라서도 달라지죠. 그걸 학원이나 학교에서 배울 수 있을까요? 아니거든요. 디자이너 옆에 붙어서 어깨 너머라도 가위 잡는 방식, 머리 고정시키는 방식을 다 일일이 배워야 해요.”

청담동에서 개인숍을 운영하는 정모씨는 “디자이너들이 스태프들에게 기술을 알려주는 것의 가치 역시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최신 트렌드는 디자이너들도 계속 연구하고 연습해서 만들거든요. 그건 아무에게나 알려줄 수 없는 고급 기술이에요. 소위 잘나간다는 디자이너 숍에 스태프들이 돈을 갖다 바쳐서라도 일을 배우고 싶어하는 이유가 뭘까요. ‘고준희 머리’ ‘한예슬 머리’ 등 유명 연예인 머리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그만큼 계속 연구를 했기 때문에 유행 스타일을 탄생시킬 수 있는 거예요. 이 분야는 평생 연구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데 자기 기술을 스태프들에게 알려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나요.”

문제는 교육을 명목으로 자행되는 착취다. 미용업계는 기술을 전수해주는 것과 노동을 착취하는 것의 경계가 희미하다.

“한 번은 매장 브랜드를 걸고 패션 행사를 하는데 행사 진행비를 스태프 1인당 20만원씩 내라고 했어요. 우리가 거기 가서 잡무부터 모든 일을 다 해야 하는데 왜 진행비까지 내야 하냐고 물으니 ‘행사 진행 전반을 도우며 너희가 알아가는 것도 결국 교육’이라고 했어요. 우리가 거기서 커트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시키는 잡일만 했는데…. 행사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은 당연히 할 수 없었어요. 스태프장이 돈을 걷어서 수디쌤(수석 디자이너)에게 드렸어요.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모르죠.”(서울 B프랜차이즈 매장 스태프)

패션 행사 진행비까지 걷기도

교육비가 왜 1회당 15만원에서 20만원까지 책정돼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매장은 회당 10만~20만원의 교육비를 스태프들로부터 관행적으로 받고 있다. 이 돈은 결국 최저임금 이하의 월급을 받게 하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한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세금 포탈의 방식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급여명세서상의 지급액과 실지급액은 교육비 및 각종 재료비만큼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스태프 한 명당 50만~80만원을 돌려받았다면, 스태프 10명 기준으로 약 500만~800만원의 돈이 지출내역만 있을 뿐 매달 사업주의 주머니로 다시 들어간 셈이다. 일부 사업주는 ‘돌려받기’를 감추기 위해 사업주 명의 계좌가 아닌 수석 디자이너나 부원장급 디자이너의 계좌로 스태프들의 교육비를 돌려받고, 그 돈을 현금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스태프들은 휴게시간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설령 근로계약서에는 ‘1일 2시간의 휴게시간 제공’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도 실제 2시간을 쉴 수 있는 직원은 없었다. 일부 미용실 스태프들은 밥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합해 30분 이상의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다.

한때 초급 디자이너로 일하다 현재 미용업계를 떠난 장모씨는 “손님이 몰릴 때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서 소변을 참았다. 같이 일하던 언니는 방광염에 걸리기도 했다. 오전근무(오후 6시)가 끝날 때까지 점심밥을 먹지 못하는 경우도 셀 수 없이 많았다”고 했다.

매장 밖으로 나가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을 막는 미용실도 있었다. 지방의 한 프랜차이즈 매장 스태프 김모씨는 “매니저가 무조건 배달시켜 먹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밖에 나가면 주문해서 기다리고 왔다갔다 하는 시간까지 걸리니까 점심은 무조건 탕비실에서 먹으라고 했다”면서 “손님이 몰렸을 때 매장 안에서 밥을 먹으면 먹다가도 뛰쳐나갈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또 다른 스태프 문모씨는 “밥먹고, 담배 한 대 피우고, 이 닦는 것까지 합쳐서 30분을 줬다”고 말했다. 30분을 넘기면 벌점이 부여됐다.

법적으로 보장된 휴게시간도 없이 일을 해도 그 시간들이 모두 급여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일부 사업주들은 전화통화에서 “손님이 없을 때 쉬었으니 그 시간까지 포함하면 휴게시간이 2시간이 넘을 때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상 대기시간은 사용자가 돈을 지급해야 할 근무시간에 해당한다(제50조 2항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

2013년 2월 청년유니온이 2012년 10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전국 주요 프랜차이즈 미용실 198개 매장의 스태프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64.9시간, 평균 월급여는 93만원으로 나타났다. 청년유니온은 2012년 기준 전국 198개 매장이 100% 최저임금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는 2015년 7월 ‘인턴 다수 고용 사업장 151개소 수시감독’을 한 결과 151개소 가운데 103개 사업장에서 236건의 노동관계법 위반행위를 적발했다. 이 중 미용업종은 실습과 교육과정의 구분 없이 사실상 노동자로 사용하고, 손님이 없는 시간은 근로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휴게시간으로 임의로 정해 임금을 미지급하는 등의 불법행위를 적발, 24개소 357명에 대해 시정조치를 내렸다.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갈수록 관행 악화

2019년 현재 미용실업계의 근로실태 관련 조사는 없다. 6년 전 대대적인 조사에도 불구하고 미용업계는 잘못된 관행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됐다. 2015년 3월 페이스북에 미용업 종사자들을 위한 페이지 ‘미용노조(www.facebook.com/beautyunion1)’가 생겨 화제가 됐다. 당시 미용노조는 페이스북에 ‘기술을 가르친다며 열정페이를 요구하고 청년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착취를 끊어야 한다. 종일 서서 중화독(머리 손질과정에서 다루는 화학물질)으로 고생한 대가를 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적었다. 호기롭게 등장한 미용노조는 그러나 2016년 6월을 끝으로 게시물을 올리지 않고 있다.

청년유니온이 제작한 미용실 실태조사 홍보 포스터 / 청년유니온 홈페이지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미용업계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도제식 교육을 통해 운영되고, 그 과정에서 실습비 명목으로 노동자에게 보장된 가장 기본적인 최저임금 지급이 지켜지지 않는 대표적인 곳이 미용업계라는 이야기다. 김 부소장은 2013년 서비스산업 노동과정 실태 기획연재 프로젝트 중 하나인 ‘헤어숍 헤어디자이너와 스태프 노동과정’을 연구한 당사자다. 김 부소장은 “이쪽 업계는 아무리 문제점을 지적해도 개선될 수가 없는 구조”라고 했다. 미용 스태프들은 잦은 이직으로 고용 자체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업계의 유입과 이탈이 많아 특정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고용주를 상대로 임금 및 퇴직금 지급 민사소송을 걸거나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고소·고발을 하는 것 역시 어려운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몇 년 이상 근무하지 않으면 고용주에게 위약금을 낸다는 식의 모든 계약이 그 자체로 불법인데도 스태프들은 이러한 점을 잘 알지도 못하는 데다, 소송을 하려 하면 고용주로부터 ‘이쪽 업계에서 매장시켜 버리겠다’는 식의 협박을 받다보니 실제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다”고 했다.

지방의 한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5년간 헤어디자이너로 근무했던 이모씨는 회사를 상대로 퇴직금 지급을 요구했다가 오히려 670만원을 내고 나왔다. 회사는 이씨가 고객을 상대로 회원권을 판매하고 받은 배당금을 전부 토해내라고 했다. 이씨가 퇴직하더라도 고객에게 판매된 회원권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는 그러나 이씨가 판매하고 받은 수수료를 내지 않으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했다. 이씨는 부모님께 돈을 빌려 그 돈을 지급하고 나왔다. 퇴직금도 영영 받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이긴 직원이 없다”던 담당자의 말과 달리 그보다 먼저 퇴사한 직원이 회사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소송을 해서 돈을 받아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이씨는 소송을 준비 중이다.

김 부소장은 “미용업계의 착취구조는 스태프들이 직접 들고 일어나 문제해결을 하기는 어렵다”면서 “언론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근로감독기관과 검찰, 사법부가 이들의 열악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때 조금씩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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