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다큐]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최혁준
베이징 동계 패럴림픽 출전 각오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골리(골키퍼) 최혁준 선수(50)는 우리 나라 파라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처음으로 출전했던 2010 벤쿠버 동계 패럴림픽 이후 12년 만에 다시 패럴림픽 무대를 밟는다.
크레인 운전기사였던 최 선수는 1997년 퇴근길에 몰던 크레인 운전석 앞바퀴가 터지며 마주 오던 덤프트럭과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결국 한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저는 절망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나름대로 삶의 재미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장애인 운동선수 모집.’ 그의 말처럼 사고 후 운명처럼 새로운 삶이 나타났다. 누님이 살고 있는 일산으로 이사하던 차 안에서 홀트장애인종합체육관 앞에 붙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망설임 없이 체육관 문을 두드려 장애인 운동선수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휠체어농구로 운동을 시작했던 최 선수는 국내에 파라아이스하키를 처음 들여온 고(故) 이성근 감독의 권유로 아이스하키를 접했다. 전용 링크가 없어 새벽 1시 링크를 빌려 연습해야 할 정도로 열악했던 시기에 시작한 아이스하키다. 그는 평창 패럴림픽 이름을 날렸던 한민수 선수(현 국가대표 감독)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 파라아이스하키 1세대 선수다.
“그때 나이가 38살이었으니까, 당연히 후배들에게 물려줘야 된다고 생각했죠.” 벤쿠버 패럴림픽 직후 그는 10년 동안 했던 파라아이스하키를 그만두었다. 빙판을 떠나 고향인 포항 특산물 과메기 음식점을 운영했다. 가게를 확장하려던 시기에 어머니가 재산 대부분을 사기 당했고, 그 역시 가게를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생계를 위해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하루에 700㎞를 운전하며 고지혈증과 고혈압 등 없던 병들이 생기고, 갑상선 수술까지 받았다.
택시를 그만둔 최 선수는 다시 고양도시관리공사에 입사해 교통약자이동지원차량을 몰았다. 그는 장애인 손님들에게 늘 운동을 권했다. “철인 3종 경기를 하다가 다쳐서 전신마비 장애를 갖게 된 손님이 계셨어요. 운동을 좋아하는데 못해서 너무 아쉽다고 하시는 거예요. 못하실 게 뭐있냐며 고양시재활스포츠센터를 소개해드렸어요.”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던 그 손님은 이제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저 덕분에 행복하다고 말씀해주셔서 뿌듯합니다.”
다른 장애인들에게 운동을 권하던 최 선수는 국내 첫 파라아이스하키 클럽팀인 서울연세이글스 고(故) 하진헌 감독의 설득 끝에 2017년 7월 빙판으로 돌아왔다. “당시에 6년을 쉬고 돌아왔으니까 결과를 내야한다는 압박감과 부담감이 심했죠.” 그는 복귀 후 3개월 만에 평창 패럴림픽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 탈락했다. 동료들이 동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TV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압박감보다는 오히려 행복해요. 예전에는 옆에서 잘한다 하니까 기고만장 했는데, 힘들게 돌아와서인지 운동하고 땀 흘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부담을 덜고 운동에 매진한 끝에 그는 베이징 동계패럴림픽 국가대표에 최종 선발됐다. 그가 일하는 공사 측에서도 국가대표 훈련 일정을 배려해줘 일하면서도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2년 만에 패럴림픽에 나서며 경기 이동 시 입을 정장도 새로 맞췄다. 넓은 어깨와 두꺼운 팔뚝·상체 덕에 기성복 매장에서는 맞는 옷이 없어 맞춤 양복을 제작했다. “자동차 영업할 때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맞추는 거예요.” 부인 라세정씨(50)가 정장을 맞추는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 13회 베이징 동계 패럴림픽은 오는 3월 4일 열린다.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베이징 땅을 밟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지난 7일부터 열릴 예정이었던 전국장애인동계체전 파라아이스하키 대회는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되었고, 대표팀 관계자들도 줄줄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잡혀있던 훈련일정도 미뤄졌다. 그럼에도 최 선수는 이용객이 적은 아침, 동네 헬스장에서 몸을 만들었고, 훈련기간에는 다른 선수들보다 한두 시간 일찍 훈련장에 나왔다.
최혁준 선수는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하지만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제가 팀 두 번째 골리라 아마 중요한 경기보다는 주전 골리의 체력 안배를 위해 뛰는 경기가 많을 겁니다. 그 잠깐 동안 실수하지 않기 위해 운동합니다. 동료들이 나를 믿을 수 있게. 그리고 내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혹시 아나요, 제가 열심히 하면 주전 골리가 뒤집어질 수도(웃음). 마지막 국가대표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국가대표가 안 되더라도 아이스하키는 그만두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