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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허수아비 경찰’을 원하는가

2022.07.07 03:00 입력 2022.07.07 03:05 수정
정현수 충주경찰서 경위

우리 경찰에게는 천형(天刑)이 있다. 일제강점기엔 독립군 잡아들이는 순사로 오명을 얻었고 해방 후엔 독재권력의 편에 섰다. 민주화를 탄압했고, 단속 대상인 업소에서 소위 ‘삥’을 뜯던 시절도 있었다. 이런 부끄러운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두가 뼈를 깎고 또 깎았다. 민간 기업처럼 치안서비스와 고객만족도 평가를 도입했다. 내부 감찰을 강화해 청렴 의식도 높였다. 그렇게 시민의 지지를 얻는 대신 경찰은 권위를 내려놓았다. 친근함과 근엄함은 양립하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정현수 충주경찰서 경위

정현수 충주경찰서 경위

그 덕분에 경찰에 대한 인식은 많이 달라졌다.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편한 이웃이 됐다. 동시에 멋쩍지만 치안강국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새벽까지 술을 마셔도 걱정 없는 나라에 산다. 지구상에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경찰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친근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럼에도 경찰을 사나운 공룡에 비유하는 시선도 있다. 우리가 공룡인 건 맞다. 아기 공룡 둘리여서 유감이지만.

최근 행정안전부는 공룡 경찰을 통제한다는 명분으로 경찰국 신설 의도를 분명히 했다. 내부 반발은 거세다. 직장협의회(직협)를 중심으로 전국 대부분 경찰 기관에서 반대 입장문을 발표했다. 길거리마다 이들이 내건 현수막이 만장처럼 펄럭인다. 얼마 전에는 ‘경찰의 꽃’으로 불리는 한 총경의 1인 시위가 큰 감동을 주었다. 경찰 지휘부의 침묵과는 정반대다. 아기 공룡들의 꼼지락거림은 아름답다.

어떤 경찰관은 소나기가 퍼붓는 와중에 삭발식을 했다. 그는 퍼붓는 빗물을 경찰의 눈물이라고 했다. 한발 더 나아가 노동계·시민사회와 연대해 반대 입장을 널리 알리고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직협 대표단과 한국노총 공무원연맹 공동 주최로 경찰국 신설 반대 기자회견도 있었다.

행안부의 경찰권 비대화 주장은 추상적이다. 조직의 수장이 차관급에 불과한 경찰이 권력화됐다면 차관급이 50명 넘게 즐비한 검찰은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그들이야말로 둘리를 다스리는 티라노사우루스 아닌가. ‘수사 만능키’인 영장청구권도 없이 일거리만 늘어난 마당에 경찰을 통제하겠다는 발상도 그렇다. 게다가 행안부 내외부 인사들이 모여 고작 네 번의 회의를 거쳐 도출한 결론이다. 그래서 경찰 장악 의도라고 의심받는 것이다.

반면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대한 우려는 현실적이다. 과거 정부에서 청와대가 관행적으로 경찰청장과 고위직 임명권을 행사했다면 이번에 나온 행안부 권고안은 그보다 더 구체적이고 위협적이다. 지난달 27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경찰에 대한 지휘규칙을 만들어 인사·예산·징계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했다. 주요 권한을 뺏긴 경찰청장은 허수아비가 될 수밖에 없다.

경찰 내부 게시판은 지금 ‘우경충정’으로 펄펄 끓는다. 현대판 시일야방성대곡이 등장하고 독립선언문을 패러디한 글도 올라왔다. 하루 10건 정도 올라오던 게시물이 수십건씩 쏟아지고 있다. 이상민 장관이 경찰 여론을 파악하겠다며 서울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를 방문한 것을 두고도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경찰국 신설을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현장을 달래려는 시늉만 하고 있어서다. 그 와중에 마포서장은 이상민 장관에게 악수를 하면서 굴신 경례까지 곁들여 빈축을 샀다.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지휘부가 벌써 행안부에 무릎을 꿇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모든 반발의 요점은 하나다. 최소한 경찰의 자존심만은 지켜달라는 것이다.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과거로 돌아가지만 않게 해달라는 절규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정부의 대응이다. 몇 명을 시범 케이스로 징계해 반대 의견을 억압할까봐서다. 그건 민주열사를 고문했던 과거로 시계를 되돌리는 것이다. 우리는 행안부 권고안에 대한 반대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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