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지검 남양주지청은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출신 이규현씨(42)를 최근 구속 기소했다. 이씨는 올해 초 자신이 가르치던 10대 제자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1998년 나가노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등 동계올림픽에 2회 연속 출전 기록을 갖고 있는 이씨는 2003년 은퇴 후 지금까지 피겨스케이팅 코치로 활동해왔다. 스포츠계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로 정부와 대한체육회가 대대적인 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하고, 쇼트트랙 코치 조재범 같은 성범죄자에게 중형이 선고된 것이 불과 1~2년 전이다. 그런데도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다니 할 말이 없다.
이씨는 범행을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과거에도 어린 여자 선수에게 신체 접촉을 해서 성희롱 논란을 일으켰다. 2016년 9월에 열린 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주니어 대회에서는 10대 제자의 허리를 감싸고 엉덩이를 토닥이는 등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하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을 타기도 했다. 2005년 9월에는 행인을 차량으로 치고 달아나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됐고, 음주 운전 전과만 3차례라고 한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2007년 여자 프로농구계의 성폭력 사건부터 2019년 스포츠계 미투와 조재범 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정부와 체육계는 성폭력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자성과 함께 재발 방지책을 내놨다. 2020년 6월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국가대표 최숙현 선수 자살 사건 때는 국회가 진상 조사를 벌이고, 대통령까지 나서 체육계에 만연한 폭력과 성폭력 고리를 끊겠다고 천명했다. 그 이후 스포츠 분야 비리를 독립적으로 조사하는 ‘스포츠윤리센터’가 설치되고, 빙상계 비리 온상으로 지목된 한국체육대학에 대한 감사가 실시됐다. 학생 선수 6만3000여명을 전수조사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체육계의 성폭력을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 치부해서는 제2의 이규현, 조재범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성적지상주의와 결합된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엘리트 체육 중심의 패러다임을 뜯어고쳐야 한다. 성적을 명분으로 폭력·성폭력을 휘두르는 지도자를 발본색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학 진학 등을 위해 폭력을 용인하는 학부모들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