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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연진이를 끝까지 미워했으면 좋겠어요.”

배우 임지연. 넷플릭스 제공

배우 임지연. 넷플릭스 제공

배우 임지연은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 가해자 박연진’ 그 자체였다. 어떤 나쁜 짓을 해도 구원받았던 박연진의 평화는 학창시절 자신이 괴롭힌 문동은(배우 송혜교)이 딸의 담임교사로 나타나면서 균열이 시작된다.

박연진은 악인 중 악인답게 문동은의 약점을 골라 하나씩 후벼판다. <더 글로리>의 악인을 연기한 배우들은 대본을 받아들며 “연진아 너무 한 거 아니냐”며 이구동성 외쳤다고 한다. 박연진은 문동은의 복수를 피할 수는 없었다. 시체 안치실에서 손명오(배우 김건우)의 시체가 사라진 걸 안 순간 연진이는 손가락을 미묘하게 떨고 “당황해서 할 말도 없네”라며 담배를 문다.

당황해도 도도했던 악인을 연기한 임지연은 악역이 처음이었다. 주위에 저런 사람이 있을까 무서울 정도로 악역을 제대로 소화한 임지연은 <더 글로리>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제 어머니조차 집에서 “연진아~”를 부른다고 한다. 배우 임지연과 17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임지연은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솔직히 말해서 엄청난 화제성을 일으키고 사랑을 많이 받을 작품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면서도 “캐릭터 하나하나까지도 이렇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많은 분들이 어딜가나 저를 ‘연진아’라고 불러주는데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배우 임지연은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 가해자 박연진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 넷플릭스 제공

배우 임지연은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 가해자 박연진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 넷플릭스 제공

임지연은 대본을 처음 마주한 순간을 ‘잘 짜여진 소설’을 본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박연진’이 아니라 다른 단역이었어도 이 작품에 참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혜정이었던 사라였든 행남이 역할이 주어졌어도 했을 거에요. 악역을 도전해보고 싶다고 여러번 말했는데 기회가 한번도 없었어요. 맘에 드는 악역을 만나서 무조건 내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를 졸업한 임지연은 2011년 영화 <재난영화>로 데뷔했고, 영화 <인간중독>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2016년 MBC 주말드라마 <불어라 미풍아>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초기만 해도 연기력 논란이 일었지만 <불어라 미풍아>에서 탈북여성 미풍을 맡으면서 연기력을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다. 정말 순둥순둥한 캐릭터였던 미풍에 비하면 박연진은 180도 변신이었다.

“타고난 배우는 아냐. 노력하는 배우”
임지연이 연진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은
“연진아, 용서는 없어”

대본 리딩때 김은숙 작가는 “천사 같은 얼굴에 분명 악마의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라고 했다고 한다. 임지연은 “작가님이 연진이에게 어떤 미화도 서사도 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셨는데 저도 무조건 동의했고 세상 사람들이 끝까지 절 미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연진이를 만들어갔다”고 했다.

임지연은 악역을 표현하기 위해 처음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박연진’에 접근했다. ‘감정이 없는 소시오패스’ ‘완전 감정적’ 등 최대한 아이디어를 내봤다가 결국 기존 악역 연기를 참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임지연만 할 수 있는 박연진’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그는 “어떤 빌런도 참고하지 않고 내 목소리와 내 표정과 걸음걸이, 스타일로 다 내꺼화 시켜버리자는 마음을 먹었다”면서 “연진이가 제대로 해야 동은이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고, 동은이가 그렇게까지 해서 복수하는 이유가 생기기 때문에 초반 대부분을 연진이 캐릭터 잡는 데 할애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안길호 감독은 “악역 5인방 사이에서 연진이가 독보적으로 나빴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계속 강조했다. 임지연은 이유가 있어서 나쁜 악인이 아니라 그저 그냥 나쁜, 그래서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박연진을 만들어냈다. “왜 없는 것들은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라는 명대사를 그는 찰떡같이 소화해냈다. 임지연은 또 “동은이가 내 딸 담임 교사로 나타났을 때 불안하고 당황하는게 보여서는 안되지만 또 흔들리는 감정은 나타나야 했기 때문에 디테일하게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유독 많았던 흡연 장면에서도 ‘남편 앞’ ‘화가 났을 때’ ‘어이없는 순간’ 등 각각 담배를 꺼내 무는 자세와 감정을 다르게 표현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배우 박연진이 <더 글로리>에서 연기한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배우 박연진이 <더 글로리>에서 연기한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임지연이 오래 준비한 장면은 마지막 감옥 씬. 엄마마저 등을 돌렸다. 감옥에서 죄수복 옷 매무새를 고치고 배에 손을 올리며 오늘의 날씨를 전해야 했다. 얼굴은 미소를 띠면서도 울었다. 복잡미묘한 감정 표현을 위해 임지연은 대본이 나온 순간부터 몇달을 준비했다. “연진이가 악행을 저질렀때랑 느낌이 달랐어요. 진짜 무너지면서 많이 울기도 울었어요. 엄마는 등돌리고, 억울해해야 하고, 복합적인 감정으로 살아가는 마지막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렇지만 마지막은 연진이한테 최고의 벌이라고 생각해요. 재준이처럼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더 최고의 벌이에요.”

임지연은 연진이로 온종일 촬영하고 와서는 감정이 이어져 힘들었다는 고백도 했다. 그는 “연진이 성질머리로 지내는 것”이라며 “감정신이 몰려있는 날도 있었는데 그럴 땐 그냥 세상이 다 짜증이 나는 느낌이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스스로를 ‘노력하는 배우’라고 표현했다. “사실 학교 다닐 때부터 타고난 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주변에 재능이 많고 끼가 다분한 친구들이 많은데 저는 가진 게 많지 않으니까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노력해가며 조금씩 성장하자고. 현장에서 많이 혼나기도 하고 울기도 했지만 (연기를) 그만해야지 하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 없었어요.”

그의 다음 작품은 <마당에 있는 집>이다. 임지연은 “보시는 분들이 연진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다른 사람이라 생각하실 수 있다”며 “정말 지하 세계로 내려간 여자 역할을 했다. 색깔이 뚜렷한 작품과 역할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배우 임지연(왼쪽)과 송혜교의 비하인드 컷.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배우 임지연(왼쪽)과 송혜교의 비하인드 컷. 넷플릭스 제공

“지금은 칭찬을 받았지만 또 연기력 논란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걸 이겨내고 성취감으로 살아가는 배우, 앞으로 느리더라도 집요함과 끈기로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작품에서 또다른 모습으로 열정 가득한 배우가 되는 게 목표에요.”

임지연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연진이를 떠나보내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연진아, 용서는 없어. 평생 죗값을 치르고 네가 한 일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하길 바랄게.”

▼ 임지선 기자 visio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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