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움을 허락하는 최초의 마법 같은 재료.”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양동이뿐 아니라 보석까지도 모두 만들어 낼 수 있는” 플라스틱을 두고 한 말(1957년 <현대의 신화> 중)입니다. <플라스틱 테러범>(최린 옮김, 열린책들) 저자 도로테 무아장은 1950년대 플라스틱 열풍을 전하려 바르트 말을 인용합니다.
바르트, ‘최초의 마법 같은 재료’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그리스 어원인 ‘plastikos’가 의미하듯 “원하는 대로 주조하고 반죽할 수 있으며 상상하는 모든 형태를 가능하게 하는 엄청난 특성을 가진 재료”였습니다. 곳곳으로 퍼져나가 ‘대동맥’을 이룬 게 당연해 보였죠. 1950년 생산량은 200만t입니다. 2020년 4억t으로 200배 이상 늘었죠. 이 성장세가 유지되면 2050년 생산량은 10억t이 넘어설 것이라고 저자는 추정합니다.
플라스틱은 말 그대로 “인간의 육체에 흠뻑 배어들어” 갔죠. 바르트가 말한 ‘대동맥’에 중증의 경화증이 일어난 것도 분명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플라스틱의 갖은 문제를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합니다. ‘마법’ 같은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비닐봉지 사용 20분, 오염은 1000년
비닐봉지? 영어로 플라스틱 백(Plastic bag)입니다. 비용 대비 효과는 엄청납니다. 놀라울 만큼 얇고 가벼우며 내구성도 뛰어납니다. 자기 무게의 2000배를 담아 나릅니다. 2018년, 유엔은 매년 지구상에서 5조 개의 비닐봉지가 소비된다고 추산했습니다. 문제가 더 많죠.
거북이에게만 해를 끼치는 플라스틱?
저자는 “오늘날 이런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라고 되묻습니다. “플라스틱이 자신의 이웃보다 거북이에게 해를 끼친다고 아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웃보다 거북이를 더 아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린피스 미국 지사에서 일하는 해양 생물학자 존 호시바의 말입니다. 봉지를 해파리로 여겨 삼킨 뒤 죽은 바다거북 이야기나 해안가를 뒤덮은 플라스틱 이미지는 널리 알려졌죠. 문제는 이런 이야기와 이미지가 플라스틱 문제의 모든 것으로 여긴다는 겁니다.
플라스틱 마법의 이유, 첨가제
‘플라스틱은 어디서 왔을까?’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에 관한 질문인데, 문제는 ‘첨가제’입니다. 생산에 관한 문단을 전합니다.
……
플라스틱 산업은 독특한 특성이 있다. 석유와 가스는 단순히 플라스틱을 생산해서 스마트폰이나 목욕할 때 갖고 노는 오리로 바꾸는 데 사용되는 에너지가 아니다. 그것들은 플라스틱 산업의 원료이기도 하다. 거의 같은 비율로 쓰인다. 그 결과, 석유 화학은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이고 온실가스 배출량 측면에서 시멘트와 철강 다음으로 세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플라스틱 테러범들과 3D
이런 문제의식에서 탐사 대상으로 삼은 게 ‘플라스틱 테러범’입니다. “플라스틱으로 환경과 공중 보건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기업”을 뜻합니다. 저자는 화학 회사 듀폰이나 석유 회사 엑손모빌, 다국적 음료 기업 코카콜라 같은 회사들을 지적합니다. 코카콜라는 전 세계 기업 중 가장 많은 플라스틱을 유통하는 회사입니다. 이들 기업은 미국 화학협회나 유럽 플라스틱스유럽에 가입했습니다. 저자는 이들 ‘플라스틱 테러범’의 행태를 고발하며 업계 로비의 황금률인 ‘3D 원칙’을 거론합니다. 3D 원칙은 환경이나 노동 한국 여러 사회 문제와 기업 태도·대응과 비교해도 될 듯합니다.
물도 많이 마시면 죽는다?
“독을 만드는 것은 바로 용량이에요. 마치 소금이나 물과 같은 거죠” 같은 논리가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물을 너무 많이 마셔도 죽을 수 있다”는 말이죠. 즉 소량의 플라스틱 독성 물질 섭취는 별문제 없다는 논리가 들어간 말입니다.
‘3D 원칙’으로 담배 회사는 반세기에 걸쳐 담배와 폐암의 연관성을 강력하게 부인했죠. 석면 먼지와 폐 질환 사이 “반박할 수 없는 연관성”이 드러난 건 1930년인데, 1970년대가 되어서야 그 속임수를 폭로하는 소송이 미국에서 제기됩니다.
‘합성 내분비 교란 물질’은 최근 부각된 플라스틱 이슈입니다. 2020년 여섯 개 과학잡지에 “자칭 최고의 독물학자라는 19명의 전문가는 ‘합성 내분비 교란 물질이 인간에게 노출되는 건 대개 무시해도 좋은 수준’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우리가 콩, 녹차, 겨자와 같은 음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천연 내분비 교란 물질’이 비스페놀 같은 공장에서 합성한 내분비 교란 물질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점”을 내세웁니다. “합성 내분비 교란 물질의 노출은 지난 50년간 꾸준히 감소해 온 반면, 천연내분비 교란 물질의 노출은 주로 채식주의 생활 방식의 확산과 더불어 증가했다”고도 주장했죠. 이들 전문가는 어떤 사람들이었까요?
전문가들 알고 보니, 업계 사람들
‘플라스틱 테러범’은 속임수도 씁니다. ‘눈 가리고 아웅’이죠. 식품 용기나 음료수병에 쓰이는 화학물질인 비스페놀A가 한 예입니다. 우선 비스페놀A가 젖병 속 우유로 유출된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은 1997년입니다. 2008년 초 미국·캐나다 연합 환경단체 그룹이 젖병 속 비스페놀A 유출에 관한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미국 독성물질 국가 관리 프로그램인 NTP(National Toxicology Program)가 비스페놀의 유독성에 극도의 우려를 나타낸 뒤에야 경각심이 일어납니다.
업체들의 변화? 이들은 비스페놀A가 없다는 뜻으로 ‘BPA free’라는 문구를 달아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비스페놀 A 대신 비스페놀 S
저자는 이런 용기 제품의 구성 성분을 정확하게 표시하지 않아도 되는 법과 제도 문제를 지적합니다.
‘생분해성’ 봉지는 어떤가요. 사람들은 정원에서도 분해 가능한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소각로에서나 분해할 수 있습니다. 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친환경 수지인 PLA의 독성이 강하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플라스틱스유럽은 브뤼셀에 기반을 둔 전문 협회입니다. 토탈이나 이네오스 같은 유럽의 플라스틱 원료 제조업체와 다우, 엑손모빌, 사빅 같은 글로벌 거대 기업의 유럽 자회사들을 대표합니다. 플라스틱스유럽은 “플라스틱은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절약하고, 사용 과정에서 해로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게 해준다”고 선전해왔죠.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이 단체는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선전과 계산에서 빼버립니다.
폐기 과정은 뺀 채 계산한 이산화탄소 배출량
‘플라스틱 차이나’와 ‘거국적 칼’
‘선진국’의 폐기물 처리장이나 소각장은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입니다. 대표적인 곳이 중국이‘었’습니다. 전 세계 플라스틱 쓰레기 절반을 “흡수”한 곳이었죠.
2016년 나온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차이나>가 중국에 대격변을 일으킵니다.
<플라스틱 차이나> 트레일러를 전합니다. 2분 54초짜리 영상도 먹먹하고, 고통스러워 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저자는 중국의 거부 뒤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다른 아시아 국가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고 전합니다. 중국 사업가들이 말레이시아 서해안에 인접한 젠자롬의 불모지를 산 뒤 ‘환경 분야 일’을 한다며 얼버무리고는 폐기물을 소각한 일도 묘사합니다. 주민들은 연기를 보고 ‘경제 투자’의 실상을 알게 됐죠.
플라스틱 쓰레기 근절에 15억, 화학 공장 건설엔 2000억
플라스틱 폐기와 생산은 죽음을 대가로 합니다. 환경 단체 티어펀드의 조사에 따르면, 개발 도상국에서는 플라스틱 오염 질병으로 30초마다 한 명이 숨진다고 합니다. 유엔은 사업장에서 유독성 제품 노출로 15초마다 노동자 한 명이 사망한다는 통계를 냈습니다.
기업들이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외면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폐기물 종식 연맹이라는 거대 연합 단체가 있습니다. 2019년에 전 세계 거대 플라스틱 제조업체 50개가 결성했습니다. 이 단체는 “함께 플라스틱 쓰레기를 근절”하겠다며 5년간 15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문제는 이 금액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들이 미국에서 새로 석유 화학 공장을 세우는 데 20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라는 사실이다. 130배를 웃도는 금액이다.”
“재활용이 단편적이고 불완전하다고 해서, 더 이상 분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당연히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니다. 나는 언젠가 모든 것들이 진정으로 재활용되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올바른 쓰레기통에 분리배출을 할 것”이라는 말부터 전해야 할듯싶습니다. 저자는 “난 아무 말도 안 하고, 부모님, 친구들, 이웃들에게 <분리배출행동>이 플라스틱 오염에서 지구를 구할 것이고、그들이 버린 요구르트병은 재활용될 것이라 계속해서 믿게 놔둘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심사숙고 끝에, 난 누구나 쓰레기통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권리와 최선으로 행동하기 위한 카드를 손에 쥘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재활용 이미지 이용하는 기업들
그는 책에서 ‘재활용’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합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세뇌를 당해서 쓰레기를 제대로 분류해 재활용 쓰레기통에 넣으면 지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할 뿐이라는 말을 전합니다. 재활용되면 환경은 큰 문제가 없으리라고도 여기고들 하죠. 뫼비우스 띠와 비슷하게 생긴, 세 개의 화살로 이루어진 삼각형 픽토그램은 익숙합니다. PET1~7로 분류합니다. 이 삼각형이 표시된 제품이 반드시 재활용되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 표시를 믿죠. 분류는 하지만, 재활용은 하지 않는 일도 일어납니다. 저자는 재활용 캠페인이 “플라스틱의 이미지를 개선하여, 기업들이 계속해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재활용 수치는 낮습니다. 1950년부터 전 세계에서 배출된 플라스틱 폐기물 약 70억t 가운데 오직 9%만이 재활용됐습니다. 나머지는 소각되거나(12%), 대부분 매립 또는 자연에 버려집니다(79%). 재활용되는 건, 물병(PET1)이나 샴푸병(PET2) 같은 투명 또는 불투명 용기 정도입니다. 재활용 분류함에 버리는 포장재 등 다른 종류의 포장재들은 현실적으로 다시 쓰일 기회가 없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플라스틱 대부분은 재활용되어서는 안 되고, 독성 폐기물로 분류해야 한다, 진정한 순환 경제를 원한다면, 플라스틱은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유럽 환경국 책임자 말을 인용합니다. 순환 경제? 인상적인 말이 있습니다.
‘화학적 재활용’의 문제
저자는 업계가 준비 중인 ‘화학적 재활용 프로젝트’ 문제도 경고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는 화학적 재활용이 플라스틱을 다시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양 선전하면서, 실제로는 대부분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사용할 계획인 것입니다」 세계 소각로 대안 연합Global Alliance for Incinerator Alternatives, GAIA 과학 자문 이사인 닐 탠그리Neil Tangri는 언성을 높인다. 세계 소각로 대안 연합은 20년째 쓰레기 소각을 반대하는 투쟁을 벌여 오고 있는 국제 조직이다. 세계 소각로 대안 연합은 그린워싱에 대해 큰목소리로 비난한다. 산업계가 <재활용(플라스틱을 다시 플라스틱으로 폴리머화)과 소각(플라스틱을 연료화) 사이의 구분을 의도적으로 섞어 버리기 위해> 화학적 재활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규탄하는 것이다.
미세 플라스틱과 인체 유해성
“‘저자가 좀 과장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좀처럼 믿기 힘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자 도로테 무아장은 기후와 환경 문제를 전문으로 취재해온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입니다. 프랑스 통신사 AFP에서 18년을 일했죠. 책은 수백 개의 주가 달렸습니다. 출처를 보면, 환경 단체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국가들의 주요 공공기관도 있습니다. 주요 기관 인사의 실명이 나옵니다. 책에 나온 위험과 위협, 부조리와 부패는 외신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판적 기조이긴 해도, 기업이나 협회 쪽 주장과 입장 등 다른 의견도 전합니다.
100% 규명되지 않은 일도 있죠. 한 예가, 미세 플라스틱과 인체 유해성 문제입니다.
“현재의 과학 연구로는 미세 플라스틱이 인류 건강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저자는 미국 화학 협회의 이 말이 사실이고, 전적으로 옳다고 하면서 반론을 씁니다.
미세 플라스틱의 굴에 대한 영향을 알아내기 시작한 사실도 전합니다. “물론, 인간은 굴이 아니다”죠. “그건 그렇지만, 경험은 생각을 더 깊이 하게 만든다”며 전한 게 프랑스 국립해양개발연구소 학자 아르노 위베의 실험 결과입니다. 플랑크톤만큼 아주 작은 폴리스티렌 미세 알갱이들을 노출한지 두 달 지난 결과 굴들의 난자 배출은 40%나 감소했고, 정자들의 활동성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합니다. 시간이 자닐수록 이런 반응은 더욱 증폭되었고요.
결국은 규제와 체제의 문제
플라스틱 오염은 결국 규제와 이어지는 문제입니다. 저자는 “규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기업들은 강제당할 때만 행동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강력한 규제를 실천하는 국가들 사례도 전합니다.
방글라데시는 “업계 일자리 2만5000개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법적 대응을 감행하는 폴리에틸렌 생산 업자들의 저항”에도 2002년 비닐봉지를 금지했습니다. 케냐는 징역형 4년을 포함한, 가장 강압적인 법률안을 채택한 곳입니다. 2018년 여름 기준 127개 국가가 비닐봉지 사용 제한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저자는 알고도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는 기업 문제뿐만 아니라, 자신도 제품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는 제조업자들도 있다고 말합니다. “감독 당국이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고 길을 보여줘야 한다.”
바르트가 플라스틱을 찬양하는 글을 내기 2년 전인 1955년 미국 잡비 ‘라이프’ 표지 제목은 ‘버리며 살기: 일회용품이 집안일을 줄여줍니다’였습니다. 이 기사엔 “이 물건들을 다 씻으려면 40시간은 소요될 것”이라는 설명도 붙였습니다.
1950년대 커피 자판기도 첫선을 보였죠. 당시 “플라스틱 커피잔을 버리지 않고 보관했다가 씻어서 다시 사용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판매기의 발치에 때맞춰 놓인 쓰레기통” 때문에 망설이긴 했지만 말이죠. 지금 보면 자판기 커피잔을 씻어 또 쓰겠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다시 할 때입니다. 저자는 개인이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이 ‘재사용’이라고 말합니다. 쇼핑 때 포장재를 되도록 쓰지 않고, 나무 국자나 유리 용기를 쓰는 게 대안이죠. 합성수지로 만든 옷은 세탁 과정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나오니, 천연 섬유 옷을 사라고 조언합니다. “개인 차원에서의 핵심 단어는, 플라스틱 발자국을 줄이는 것”이죠. 이 발자국 줄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천연 섬유 옷이나 유리 용기는 플라스틱보다 비싸죠.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좋은 물건을 사기도, 몸에 좋은 과일이나 채소를 사 먹기도 힘든 가난한 이들도 떠오릅니다.
동남아시아에서 그린피스 이사로 일했던 폰 헤르난데스의 말도 전합니다.
문제는 ‘체제’입니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일은 곧 지금의 경제 체제나 성장 이데올로기를 바꾸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