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위기의 삶서 다시 꺼낸 ‘이야기꾼’ 재능…희망의 삶 얻다

2020.02.04 21:05 입력 2020.02.04 22:58 수정
장영은

이자크 디네센

메릴 스트리프와 로버트 레드퍼드가 주연을 맡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작가 이자크 디네센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왼쪽 사진). 케냐에서 20년 동안의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낸 끝에 삶의 터전과 연인까지 잃은 디네센(오른쪽)은 40대 나이에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7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디네센은 오래된 이야기를 새롭게 쓰는 사람으로 살았다.

메릴 스트리프와 로버트 레드퍼드가 주연을 맡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작가 이자크 디네센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왼쪽 사진). 케냐에서 20년 동안의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낸 끝에 삶의 터전과 연인까지 잃은 디네센(오른쪽)은 40대 나이에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7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디네센은 오래된 이야기를 새롭게 쓰는 사람으로 살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지난 몇 개월 동안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며 그 일들의 실체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삶의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나 절대 빠져서는 안될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 그 모든 게 그저 우연의 일치이며 소위 말하는 불운이 겹친 것일 리는 없고 어떤 근본적인 요인이 존재하는 게 분명했다. 제대로 찾아보면 그 일들의 일관성이 분명히 드러날 것이며 그걸 찾아내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 터였다.”

스물여덟 살에 케냐 이주 후 결혼
세계 대공황·이혼·파산 아픔 겪고
빈털터리 되어 고향 덴마크 돌아와

1931년, 마흔여섯 살의 카렌 블릭센은 빈털터리가 되어 케냐에서 덴마크로 돌아왔다. 케냐에서 보낸 약 20년간의 시간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자로 알려진 카렌 블릭센은 스물여덟 살에 처음 케냐로 떠났다. 그곳에서 스웨덴 출신 귀족과 결혼을 하고 커피농장 경영에 뛰어들었다. 낯선 땅에서 밤낮없이 일을 했다. 갑자기 쓰러진 카렌 블릭센은 풍토병과 과로가 겹쳐 탈이 났을 것으로 짐작했지만, 검사 결과는 매독이었다. 남편과는 별거에 들어간다. 카렌 블릭센은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렸다. 그의 아버지는 매독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열 살 때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잃고 충격에 빠졌던 카렌 블릭센은 자신에게도 같은 공포가 닥치자 비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케냐에 큰 애착을 가졌다. 커피 사업에 매진하는 한편, 케냐 원주민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직접 학생들을 가르쳤다. 부족장은 이방인이 만든 학교를 싫어했다. 우선 자신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더불어 소위 배웠다는 유럽의 제국주의자들이 아프리카에 와서 저지른 일들을 지켜보며 교육이 사람을 망쳐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카렌 블릭센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읽고 쓰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부족장과 원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마을 원로들에게 아이들의 미래는 달라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호소했다. 그의 헌신적이고 한결같은 태도에 마을이 움직였다. 커피농장 옆 학교에서 케냐 어린이들은 영어와 수학을 배우고 음악을 들었다. 고산 지대에서의 커피 수확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주위 우려와 달리 사업은 성장을 거듭했다.

카렌 블릭센은 케냐에서 사업가로 활동하며 많은 사람들과 우정을 쌓았다. 무역업을 하며 아프리카 전역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데니스 핀치 해튼과는 유독 말이 잘 통했다. 영국 출신의 데니스 핀치 해튼은 카렌 블릭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어떤 소재를 꺼내도 막힘없이 이야기를 펼쳐가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던 카렌 블릭센은 1907년 덴마크에서 첫 작품 ‘은둔자’를 발표했고, 그 후로도 2년 동안 작가로 활동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과 동시에 이야기꾼의 본능을 숨기고 살았을 뿐이었다. 데니스 핀치 해튼은 카렌 블릭센의 지성과 문학적 재능에 매력을 느꼈다. 카렌 블릭센은 데니스 핀치 해튼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밤을 꼬박 새는 날이 늘어났다. 카렌 블릭센은 별거 중이었던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남편은 남작의 명예를 우선시했다. 1923년에 화재로 커피농장이 전소(全燒)되고 난 후로부터 2년이 지나서야 남편은 이혼에 합의한다. 손실이 컸지만 자유를 얻었다. 카렌 블릭센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26년에 ‘진실의 복수’를 덴마크의 잡지 틸스쿠에렌에 발표한다.

1930년, 세계 대공황의 여파는 무서웠다. 커피 생산에 어려움이 많았다. 비가 늘 부족했다. 거대한 메뚜기 떼가 농장을 습격했고, “설상가상으로 커피 가격까지 폭락해서 t당 100파운드 받던 것을 60에서 70파운드밖에 받지 못했다.” 카렌 블릭센은 더 이상 버틸 방법을 찾지 못했다. “돈이 바닥나 더 이상 비용을 감당할 수 없자 나는 농장을 팔 수밖에 없었다.” 1931년 3월에 ‘나이로비의 큰 회사’에서 커피농장을 샀다. “그들은 땅을 새로 구획하고 도로를 낸 뒤 나이로비가 서쪽으로 팽창하면 그 땅을 건축 부지로 팔 계획이었다.” 자신의 삶 일부가 도려내지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꼈다. 두 달 뒤에는 데니스 핀치 해튼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다. 카렌 블릭센은 모든 것을 잃었다. 그는 연인의 장례식을 치른 후 아프리카를 떠난다.

경제적 자립 위해 작가의 길 결심
퇴짜 맞던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
미 여성 작가의 발굴로 출간 화제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영화로

카렌 블릭센은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싫었다. 경제적 자립이 가장 시급했다. 식당을 차릴까도 한동안 고민했지만, ‘이야기’를 포기할 자신이 없었다.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자신을 사로잡았던 책들이 떠올랐다. 성경, <천일야화>, <프랑켄슈타인>, <안데르센 동화집>에 나오는 멋진 이야기들이 불멸의 존재임을 일찍부터 예감했다. 작가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에게 이야기보다 든든한 밑천은 없었다. “이야기들이 많으셨잖아요. 간담이 서늘해지는 이야기, 죽마고우도 의심하게 만드는 이야기, 또 더운 밤에 큰일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들, 이제는 없나요?” 그는 몰락한 귀족들의 삶을 떠올린다. 자신의 처지이기도 했다. 카렌 블릭센으로 살아왔지만, 이자크 디네센이라는 필명을 이때부터 사용했다. 히브리어로 ‘웃음’을 뜻하는 이자크는 그가 재산과 연인과 삶의 터전을 모두 잃고 나서 만든 이름이다.

희망적인 필명을 만들었지만, 작가로 재기하기까지 여러 차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자크 디네센은 죽은 연인을 기억하며 런던에서 자신의 책을 내고 싶어 했다. 퍼트남 출판사는 원고를 검토하자마자 거절 의사를 전했다. 영어로 쓴 책이라서 덴마크에서 바로 내기도 힘들었다. 다행히 미국의 여성 작가 도로시 캔필드 피셔가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차렸다. 도로시 캔필드 피셔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지적으로 펼치는 덴마크의 여성 작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출판을 적극적으로 주선하고 추천사도 맡았다. 1934년,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는 출간 즉시 미국 전역의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퍼트남 출판사는 이자크 디네센에게 정중히 사과하며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의 영국 판권을 사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책 한 권이 성공을 거두자 세상이 달라졌다. 그는 자신의 변화무쌍한 삶을 긍정했다. “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변화를 사랑해야 해. 그리고 농담을 사랑해야 하지.” 떠나온 곳의 이야기도 담담하게 털어 놓았다.

이자크 디네센은 1938년 회고록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발표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농부들의 축원문을 가슴에 새겼다. “비를 듬뿍, 넘치도록 듬뿍 내려 주십시오. 충심으로 말하건대 저를 축복해 주기 전에는 보내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자크 디네센은 자신의 삶을 위해 기도한다. “나의 삶이여, 나를 축복해 주기 전에는 그대를 보내 주지 않으리.” 그에게 축복은 이야기였다. “성공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자크 디네센에게 이야기는 생명이자 구원이었다. 그의 신념은 한 위대한 철학자의 사상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 한나 아렌트는 이자크 디네센의 작품에서 “모든 슬픔은, 말로 옮겨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참을 수 있다”는 통찰을 얻었고, 실제로 그와 같은 믿음이 고통을 직시하며 현실을 분석하고 윤리적 판단의 기준을 내린 한나 아렌트의 저작들을 관통하고 있다. 이자크 디네센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1958년, 72세의 이자크 디네센은 <바베트의 만찬>을 출간했다. 목사였던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며 소박하게 살고 있는 노르웨이의 두 자매 마르티네와 필리파는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갈 데가 없어진 바베트가 무작정 찾아오자 따뜻하게 맞이한다. 바베트는 복권에 당첨되자, 마을 사람들을 위한 만찬을 준비한다. 최고급 재료로 정성껏 차려진 식탁 앞에서 사람들은 사랑을 고백하고, 지나간 날들을 용서하며, 축복을 전한다. 노년이 된 이자크 디네센에게 이야기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선물이었다.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자크 디네센은 오래된 이야기를 새롭게 쓰는 사람으로 살았다.

‘이야기는 생명’ 신념 속 작품 활동
두 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라

1954년과 1957년, 이자크 디네센은 두 차례에 걸쳐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나, 헤밍웨이와 카뮈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글 쓰는 여자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긴다.

■ 필자 장영은

[여성,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23)위기의 삶서 다시 꺼낸 ‘이야기꾼’ 재능…희망의 삶 얻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초빙교수다. 이태영, 천경자, 박완서 등 20세기 초 한국 여성 지식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과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공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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