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네모반듯 획일적 공간 벗어나지 못하면, 도시는 죽음을 맞이할 것”

2020.02.18 21:38 입력 2020.02.18 21:39 수정
장영은

제인 제이콥스

제인 제이콥스는 도시의 주인공은 걸어 다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성 엘리트 중심의 건축과 도시공학 분야의 폐쇄성을 비판하며 개발이란 명목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행위를 막고자 했다.

제인 제이콥스는 도시의 주인공은 걸어 다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성 엘리트 중심의 건축과 도시공학 분야의 폐쇄성을 비판하며 개발이란 명목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행위를 막고자 했다.

“제가 아는 도시는 전부 문제가 있고 실수를 저질렀어요. 하지만 도시가 살아 있는 한, 젊은 사람들이 도시에 살면서 일하는 한, 늘 희망이 있고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스스로 관심이 많은 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사람이 가득합니다. 희곡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고, 건물을 설계하거나 물건을 발명하는 사람도 있지요. 저를 흥분시키는 것은 그 모든 삶의 집합, 활동적인 사람들과 그들이 하려는 일들입니다.”

제인 제이콥스는 평생 호기심이 많았다. 1916년, 펜실베이니아의 탄광도시 스크랜턴에서 태어난 제인 제이콥스는 어린 시절부터 책과 신문을 좋아했다. 가정의였던 아버지는 자녀들과 그날의 신문 기사 내용을 주제로 토론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면 어떤 직업을 가져도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제인 제이콥스의 재능과 기질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고, 딸의 결정을 존중했다.

어린 시절 책·신문 읽기 즐겨…고교 졸업 후엔 ‘도시의 변천사’ 독학
남성 중심 건축·도시 공학 폐쇄성에 ‘개발 부당성’ 비평글 쓰며 맞서
쉬운 글쓰기로 ‘도시의 미래’ 문제의식 공론화·시민 참여 고취에 기여
1961년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출간 이후 더 적극적 시민운동 동참

제인 제이콥스는 획일화된 학교 교육을 거부했다. “질문을 받지 않는 한 말을 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던 학창 시절은 고통스러웠다. 제인 제이콥스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될 거라는, 이제 목소리가 사라질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한동안 틱 장애에 시달리기도 했다. “아직 말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 목 안에서 작은 소리를, 작은 목소리를 내곤” 했지만, 누구에게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3학년 때부터 책상 밑에서 혼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제인 제이콥스는 마크 트웨인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모험을 좋아했다. 질서정연한 교실보다 풍파 속 현장에서 배울 것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지역 신문 스크랜턴 트리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무급이었지만, 신문 제작과 편집 과정을 빠른 속도로 익힐 수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속기도 배웠다. 낯선 대도시에서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1935년, 제인 제이콥스는 언니가 있는 뉴욕으로 무작정 향한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떠돌아다녔다. 걷고 또 걸었다. 뉴욕의 건축물들은 매력적이었다. 오래된 건물들일수록 포근하게 느껴졌다. 도시의 변천사를 혼자서 공부했다. 공간의 변화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관해 점차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제인 제이콥스는 도시 계획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학위도 경력도 없었던 제인 제이콥스는 우선 무역 현황을 다루는 잡지사의 비서로 들어갔다. 신문사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도움이 되었다. 제인 제이콥스는 이내 편집 업무로 변경한다. 동시에 그는 보그, 선데이 헤럴드 트리뷴 등 각종 매체에 건축 비평을 부지런히 투고했다.

문득, 보다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다. 제인 제이콥스는 버나드칼리지에서 지리학, 법학, 정치학, 경제학 등을 공부했지만, 졸업장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 것 같았다. 2년 만에 컬럼비아대학을 자퇴했다. 건축과 도시공학 분야에서 진정한 전문가가 되는 길은 현장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1952년, 제인 제이콥스는 건축 전문 잡지사의 문을 두드렸다. 아키텍처럴 포럼(Architectural Forum)은 그가 쓴 글들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건축과 도시공학 전공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은 학술 논문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제인 제이콥스는 소수의 엘리트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건축과 도시공학 분야의 폐쇄성을 더 이상 묵인할 수 없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정녕 어떤 도시에서 살기를 원하는가? 아름다운 도시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제인 제이콥스는 좋은 도시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는 한편,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도시를 파괴시키는 행위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무엇보다 누구라도 이해하기 쉬운 글쓰기로 자신의 문제의식을 널리 전하고 특정인들의 전유물로 치부되었던 건축과 도시공학의 현안들을 공론화시키며 시민들의 참여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독자들은 제인 제이콥스의 제안을 적극 수용했다. “도시를 보면서 귀를 기울이고, 서성이고,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도 좋다.”

제인 제이콥스는 대중 강의에도 적극적이었다. 제인 제이콥스의 글과 강연에 깊은 감화를 받은 록펠러재단의 관계자는 그의 연구가 좀 더 독립적이고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제인 제이콥스는 아키텍처럴 포럼과 포천(Fortune)에 발표했던 글들을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완성하고 싶었다. 록펠러재단은 제인 제이콥스의 저술 지원을 결정했다. 그는 1년 동안 온전히 글 쓰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1961년, 제인 제이콥스의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 미국 랜덤하우스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제인 제이콥스는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뉴욕, 시카고 등과 같은 대도시들의 변천 과정을 추적하며, 한 도시가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미묘하고도 복잡한 질서”와 “오래된 이야기”가 도시의 생명이자 자산임을 주장했다. 천편일률적이고 네모반듯한 공간으로 도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그 공간은 도시의 활력을 잃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인 제이콥스(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1963년 개발로 지금의 매디슨 스퀘어가 된 뉴욕의 ‘펜 스테이션’ 개발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제인 제이콥스(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1963년 개발로 지금의 매디슨 스퀘어가 된 뉴욕의 ‘펜 스테이션’ 개발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오래된 도시라면 어디나, 외견상의 무질서 아래 거리의 안전과 도시의 자유를 유지시켜 주는 불가사의한 질서가 존재한다. 이 질서는 매우 복잡한데, 그 본질은 끊임없이 얽히고설킨 보도(步道)의 이용과 그 결과물인 끊임없이 보는 눈의 연속이다.” 그는 도시의 주인공이 걸어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달리는 자동차와 새로운 건물이 될 때, 인간의 삶과 도시의 미래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예언에 가까운 비판을 논리적으로 펼쳐나갔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은 제인 제이콥스가 시민활동가로서 투쟁하고 실천한 시간들의 기록이기도 했다.

제인 제이콥스는 뉴욕 맨해튼의 그리니치빌리지와 리틀 이탈리아 타운의 파괴에 맞섰다. 그는 뉴욕 소호 지역을 통과하는 8차선 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했고, 베트남전 징집 반대 시위에도 나섰다. 제인 제이콥스는 반전 시위에 참여한 수전 손택과 함께 체포되었다. 검사는 제인 제이콥스를 폭동, 폭동 선동, 형사상 피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하며, 제인 제이콥스가 “무시무시한 괴물”이라고 주장했다. 어리둥절하고 끔찍한 경험이었다. 검사의 기소대로라면 제인 제이콥스는 각 혐의당 징역 1년씩 형량을 받아 총 4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다행히 검사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심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제인 제이콥스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식탁 앞에 앉아 있는데도 “뒤에서 감방 문 닫히는 소리가 정말로 들리는 것” 같았다. 제인 제이콥스는 1968년에 미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결정한다.

1974년 캐나다 시민권을 획득한 제인 제이콥스는 미국 국적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그는 2006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만의 ‘정체성’을 변함없이 지키며 살았다. 그는 언제나 “뭐든 기회가 있으면” 배우는 사람이었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을 집필하면서 경제학과 생태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제인 제이콥스는 88세까지 <생존 시스템> <자연과 경제의 대화> <도시의 경제> <도시와 국가의 부> <어두운 미래> 등 여러 저서를 출간하며, 건축 전문 기자이자 작가, 도시공학 전문가, 시민운동가, 경제학자, 생태학자 등으로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을 꾸준히 확장시켜 나갔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운으로 돌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좋은 집, 넉넉한 공간, 사랑스러운 이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 특히 제인 제이콥스는 자신이 “여성 참정권 운동이 성공을 거두자 여자는 남자와 동등하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싹튼 시기에 태어나 “여성에 대한 희망이 있는 곳”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자 했다. 제인 제이콥스는 무임승차를 거부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유·무형의 사회적 혜택을 도시와 지구의 미래에 환원했다. 글 쓰는 여자는 미래를 지킨다.

■ 필자 장영은

[여성,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24)“네모반듯 획일적 공간 벗어나지 못하면, 도시는 죽음을 맞이할 것”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초빙교수다. 이태영, 천경자, 박완서 등 20세기 초 한국 여성 지식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과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공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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