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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논문 표절, 등록금, 입시, 취업률, 노벨상….” 한국 사회에서 대학 하면 떠오르는 쟁점이다. 대학원을 포함하면 ‘착취’ 같은 쟁점을 더할 수 있다. 대학이나 대학원이나 성폭력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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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박사하기>(스리체어스) 필진을 대표해 서문을 쓴 영문학자 이우창은 이런 사례를 열거하며 “입학과 졸업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우리의 고등교육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와 같은 주제는 한국의 공론장에서 다뤄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대학(원)의 본질 문제에 무관심하다고 볼 수 있다. ‘젊은 연구자 8인이 말하는 대학원의 현실’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저널리즘 대담’ 형식으로 지난해 말 나왔다. 2월 출간된 <대학>(민음사)은 대학 중심으로 교육 문제를 다룬다. 인문잡지 ‘한편’ 시리즈 중 한 권이다. 대학 진학 거부자, 학부생, 대학교수, 출판 노동자 등 10명의 글을 실었다. 두 책은 연구 환경부터 페미니즘까지 걸쳐 현실과 대안을 이야기한다.

‘알바 천국’과 ‘철창’에 갇힌 일차원적 연구자


대학원을 두고 냉소적 이미지와 시선이 널리 퍼진다.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 “대학원은 ‘좋소 기업’(드라마 <좋좋소>에서 딴 작명)과 같다” 같은 말들이 유행한다. 2010년대 후반엔 밈으로 등장한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한 장면은 지금도 회자된다. ‘바트’가 긴 꽁지머리를 한 박사 과정 학생을 흉내 내면서 “저 좀 봐요. 전 대학원생입니다! 서른 살이고요. 작년에 600달러를 벌었죠”라고 말하자 바트 엄마가 “대학원생들 놀리지 마. 그들은 삶에서 끔찍한 선택을 했을 뿐이야”라고 꾸짖는 장면이다.

2010년대 후반엔 밈으로 등장한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한 장면. ‘바트’가 긴 꽁지머리를 한 박사 과정 학생을 흉내 내면서 “저 좀 봐요. 전 대학원생입니다! 서른 살이고요. 작년에 600달러를 벌었죠”라고 말하자 바트 엄마가 “대학원생들 놀리지 마. 그들은 삶에서 끔찍한 선택을 했을 뿐이야”라고 꾸짖는 장면이다.

2010년대 후반엔 밈으로 등장한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한 장면. ‘바트’가 긴 꽁지머리를 한 박사 과정 학생을 흉내 내면서 “저 좀 봐요. 전 대학원생입니다! 서른 살이고요. 작년에 600달러를 벌었죠”라고 말하자 바트 엄마가 “대학원생들 놀리지 마. 그들은 삶에서 끔찍한 선택을 했을 뿐이야”라고 꾸짖는 장면이다.

대학 하면 떠올리는 쟁점이나 사회에 유행하는 밈과 냉소는 무엇을 뜻할까. “핵심은 대학원에 간 사람이든 아니든 대학원의 환경과 대학원생의 삶을 그다지 권장하고 싶지 않다는 거겠죠…. 지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대학원이 덜 매력적인 선택지가 돼버리고 있다는 게 진짜 문제인 거죠”(이우창). 그는 “ ‘좋은’ 대학 교육을 구성하는 게 무엇이며, 연구자와 지식을 생산하는 중심부로서의 대학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거의 생각”하지 않는 현실도 지적한다.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때 기본적인 매너가 보장되는 공간인지, 충분한 지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인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대학원 기피 현상엔 인권 문제나 진로의 불확실성, 부족한 장학금처럼 학업을 지속하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 작용한다. “예로부터 인문계 대학원 입학 면접 때 ‘부모님이 도와주실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전통 아닌 전통”이 내려온다. 역사학자 현수진은 이렇게 말했다. “가난해도 공부하고 싶다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사회학자 유현미는 대학원생의 성찰도 이야기한다. “대학원생을 소위 교수 갑질의 피해자로만 재현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며, 대학원생들 역시 이 불평등한 학계 구조의 재생산에 공모하고 있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고 봤어요.” 연구 성과를 쌓으려면 어느 정도 인권 침해는 수용할 수 있다거나 피해자를 부적응자로 비난하는 경우를 두고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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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박사하기> 책에 참여한 이들은 자신을 어떻게 부를까. ‘다단계 학회 사업’이나 ‘부실 학술 활동’ 같은 한국 학술장의 문제를 지적해온 전준하는 ‘철창 속 일차원적 연구자’로 칭한 적이 있다고 했다. 여러 연구 프로젝트의 연구 보조원, 전일제 조교, 번역, 자료 코딩, 학회 간사, 과제 채점 등에 기대 생활비와 학비를 마련한 유현미는 “학계를 굴리는 온갖 미세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스스로의 현실을 ‘알바천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말한다.

책은 여성 연구자들 현실도 다룬다. 국문학자 김보경은 “한때 자주 보이던 여자 선배들은 왜 잘 보이지 않을까,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열악한 판에서 왜 서로 경쟁하면서 소진돼야만 할까” 같은 생각을 자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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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라는 주홍글씨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에서 2021년 11월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반대하는 규탄 공동행동에 참가한 재학생 등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총여학생회 대안기구가 폐지되는 건 중앙대가 처음이다. 한수빈 기자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에서 2021년 11월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반대하는 규탄 공동행동에 참가한 재학생 등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총여학생회 대안기구가 폐지되는 건 중앙대가 처음이다. 한수빈 기자

<대학>은 <한국에서 박사하기>의 프리퀄 성격의 책이다. <대학>의 여러 필자는 “오늘날 대학 사회에서 주홍글씨”인 페미니즘 문제를 주요하게 다룬다. 인문학자 김종은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조롱처럼 사용하기도 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을 말하기에 앞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으로 운을 띄워야만 할 때도 있다”고 말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서울 소재 49개 대학 중 25개 대학 총여학생회가 위축되거나 소멸했다. 대학 내 여성학 학부 과정과 여성학을 다루는 대학 전공, 교양과목들이 줄줄이 폐지 혹은 축소됐다. “마치 누군가가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지우는 작전에 돌입한 것처럼 말이다”. 여성학자 신하영은 “이러한 현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학에 현실적인 쓸모를 요구하는 소위 ‘대학의 위기’의 여파이기도 하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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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별 익명 커뮤니티 기능을 제공하는 에브리타임에선 페미니스트, 비건, 성소수자, 캣맘 등을 향한 무차별적 비난이 이어진다. “온라인 메시지로 ‘교수님, 동성애는 죄악입니다’라고 나를 단호하게 타이르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나무위키’나 ‘루리 웹’ 같은 사이트의 글을 캡처한 화면을 보내며 팩트 체크를 부탁하는 학생도 있었다”고 신하영은 전한다. “알고리즘이 만들어 주는 편하고 친숙한 세계 밖에 있는 불편한 이야기를 자꾸 이야기해 보라는 교수에 대한 반응들”이다.

출판인 ‘유리관’은 공부하지 않는 교수의 문제도 지적한다. “어떤 교수님들의 원고는 아무리 봐도 거기 적힌 이름보다 많은 사람이 쓴 것이 분명하다…도대체 교수님 아닌 누가 그 원고들을 썼단 말인가…그래도 ‘사람’들이 썼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번역기의 일차 생산물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뭔가를 원고라며 넘기는 교수님들도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소속 대학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지난해 8월 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대학 청소경비노동자 노동조건 개선 및 대학사업장 집단교섭 투쟁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소속 대학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지난해 8월 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대학 청소경비노동자 노동조건 개선 및 대학사업장 집단교섭 투쟁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인문학자 신현아는 대학 노동 문제를 환기한다. 그는 신라대 비정규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청소노동자들이 탈환하려고 했던 것은 그들의 일자리뿐 아니라 대학 그 자체였다. 지방 대학의 비정규직 청소노동자가 대학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대학 본부를 점거할 때, 대학은 우리에게 다른 공간으로 열리게 된다.”

인권운동가 ‘난다’는 고교 시절인 2008년 퇴학 상담 때 교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지금 이렇게 학교 그만두면 나중에 배추 장사나 한다.” 이 말은 2022년 11월 17일 수능일 시험장 밖 ‘오픈 마이크’ 때 “시험이 끝나면 학생들은 성적을 비교하며 더 높은 등급을 받은 학생에게 찾아가 ‘내가 네 방석이 될게!’라고 외치며 엎드리는 시늉을 합니다”는 한 청소년의 발언과도 이어진다. 요즘도 “지금 공부하면 남편의 직업이 바뀌고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는 말이 떠돈다고 한다. 난다는 한 대학 거부자가 ‘학력 무관’이라고 적혀 있는 구직 공고를 올린 업체에 연락하자 대학은 나왔어야 한다는 답을 들었다는 일을 전했다. “이때 학력 무관이란 대학을 안 나온 사람은 아예 떠올리지조차 않는 배제의 의미”라고 했다. 그는 “우리 사회 전체가 학력 무관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사회는) 각자가 가진 능력들의 차이가 차별의 조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들이 기대고 소통하는 힘이 되는 사회”라고 했다.

▼김종목 기자 jom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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