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근우의 리플레이
2023.12.15 16:00 입력 2023.12.15 19:16 수정 위근우 칼럼니스트

문제는 ‘철학’…좋은 코미디를 심어야 좋은 웃음이 난다

[위근우의 리플레이]좋은 코미디를 고민한다는 ‘코미디로얄’의 의도가 공허한 이유

모두가 사랑하는 코미디는 없지만 모두가 외면하는 코미디는 있을 수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신작 <코미디 로얄>의 2번째 에피소드 제목 ‘모두가 사랑하는 코미디는 없다’를 보며 든 생각이다. 총 3라운드 서바이벌 형식으로 진행된 <코미디 로얄>에선 TV와 유튜브를 통틀어 현재 코미디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는 ‘영건’ 15명과 5명의 마스터가 팀을 짜 라운드마다 각기 다른 과제로 코미디 대결을 벌여 탈락 팀을 정하는데, 해당 회차에서 1라운드 탈락 팀이 나왔다. 현재 뉴미디어 코미디를 대표하는 메타코미디 클럽 멤버들과 대표 정영준으로 구성된 정영준 팀이었다. 물론 첫 라운드 과제가 콩트인 만큼 공개 코미디 경력이 오래된 황제성, 이상준, 김두영 등이 포진한 문세윤 팀, 탁재훈 팀이 유리했던 건 사실이다. 심지어 문세윤 팀은 첫 콩트 반응이 저조하자 tvN <코미디 빅리그> 최고참이던 문세윤이 직접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니 정영준 팀의 첫 라운드 탈락이 아주 의외의 결과는 아니다.

의외인 건 그들이 원숭이의 교미를 소재로 짠 콩트가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서도 기대 이하였다는 것이다. 타 팀 마스터인 이경규가 해당 개그를 보고 버럭 화를 낸 것에 시청자 상당수가 공감하기도 했지만 그의 말대로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서 성행위 묘사를 해서 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정확히 21년 전 군 복무 시절 중대 회식 장기자랑에서 휴가증 좀 타보겠다고 페트병을 성기처럼 들고 섹스 흉내를 내던 타 소대 선임들의 몸부림을 보는 것 같았는데, 당시 20대 초반 군인들 사이에서도 재미없고 그냥 추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웃음의 미학은 미추 사이 회색지대 어느 즈음에 있으며 그것이 한없이 추에 가까워질 때 불쾌해진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가 외면하는 코미디라는 뜻은 아니다.

정영준 팀의 콩트는 많이 실망스러웠지만 단 2시간의 빠듯한 준비 시간엔 누구든 잘못된 경로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니 마스터이자 메타코미디 클럽의 수장으로서 정영준이 비난받는 팀을 대변해 변론을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개그가 선을 넘었다는 이경규의 지적에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한 코미디는 아무도 안 보는 코미디가 된다”고 반박하며 “이경규 선배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는 정말 모든 사람들한테 같은 코미디가 전달되어야 했던” 반면 이제는 “자기의 취향에 따라서 구독을 결정하는 시대”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발언 자체는 완전히 옳은 진단이다. 이제 더는 모두가 MBC <무한도전>이 이번주에 어떤 도전을 했는지 다 아는 시대가 아니다. 웃음과 재미를 위한 공통의 지반은 해체되었고, 누군가의 ‘최애’가 다른 누군가에겐 ‘듣보잡’이 된 시대다. 메타코미디 클럽은 정확히 이러한 시대 진단 아래 특정 문화와 경험에 익숙한 소비층을 타깃으로 한 고맥락 개그를 선보여 성공한 사례다. 정영준이 단 하나 틀린 건, 그가 말한 진단과 철학이 원숭이 교미 개그와 완전히 상반된다는 것이다. 정작 해당 콩트를 짠 곽범은 “원초적” 개그를 선보이겠다고 설명했고, 논란 이후 인터뷰를 통해 “페루의 어느 지역 남자가 말은 안 통해도 그냥 웃을 수 있는” 개그를 하려 했다고도 밝혔다. 다시 말해 팀원들은 모두를 웃기려는 개그를 하려다 실패했는데, 수장은 모두를 웃기는 개그의 시대는 끝났다고 엉뚱한 변명을 한 셈이다. 코미디에 대한 꽤 유의미한 철학과 그 철학과는 상관없는 결과물 사이의 간극. <코미디 로얄>의 진짜 문제는 원숭이 교미 개그가 아닌 바로 이 간극에 있다.

공개방송 형식 아닌 ‘스우파’ 닮아
‘코미디 창작자’ 모습 부각에 초점

원숭이 교미 콩트에 비만 희화화…
불쾌하고 철지난 기대 이하 결과물

윤리적 유의미한 멘트는 휘발되고
유일하게 ‘선’ 지킨 이경규만 빛나

‘무엇이 나쁜 코미디인가’ 고민 없이
더 나은 코미디, 좋은 웃음은 요원
무제한적 자유경쟁은 답이 아니다

[위근우의 리플레이]좋은 코미디를 고민한다는 ‘코미디로얄’의 의도가 공허한 이유

프로그램을 연출한 권해봄 PD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코미디를 사랑하는 코미디언들의 리얼한 모습”을 통해 그들이 “우스운 사람이 아니며 더 웃긴 결과물을 내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창작자라는 점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가 <코미디 로얄>에 대해 기존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보다는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같은 프로그램과의 근친성을 강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프로페셔널이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으며, 그들의 위상 역시 높일 수 있다. 여기엔 단순히 이기기 위한 경쟁을 넘어 프로페셔널 간 철학의 충돌이 필요하다. 1라운드에서 원숭이 교미 콩트를 두고 벌어진 이경규와 정영준의 논쟁은 어느 정도 그러한 맥락을 드러낼 수도 있었다. 다만 이경규의 분노는 직관적으로 상당히 타당하되 해당 개그의 불쾌함을 수위의 문제로 환원한 감이 있으며, 앞서 말했듯 정영준의 반박 역시 말 자체로는 타당하되 해당 개그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변론이었다. 유의미한 논쟁의 전선은 그어지지 못했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스탠딩 코미디인 로스팅으로 치러진 2라운드도 마찬가지다. 2라운드 최고의 코미디는 이경규 팀의 엄지윤이 문세윤을 상대로 펼친 문세윤 스타일리스트 1인이었다. 하지만 코미디 프로페셔널로서의 철학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휴게소 화장실에서 변기를 엉덩이로 부순 적이 있지 않느냐는 김두영의 로스팅에 대해 문세윤이 “이거는 제가 비만인들의 어떤 대표로 앉아 있는 느낌이 나서, 그런 적은 없습니다(라고 답하겠다)”고 했을 때다. 엄지윤 역시 문세윤의 과체중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연예인과 스타일리스트라는 갑을 관계의 구체적 캐릭터와 상황을 통해 최대한 범위를 문세윤 개인으로 좁혔다. 반면 김두영의 로스팅이나, 역시 나선욱의 과체중을 공격한 이재율의 로스팅은 비만 자체를 희화 혹은 비하하는 것에 가깝기에 일차원적이고 불쾌했다. 문세윤의 짧은 답변은 이 차이를 구분하고 웃음의 윤리를 따져볼 좋은 기준점이었지만 유독 소란스럽고 불필요한 욕설이 난무하는 2라운드의 분위기에 묻혀 무의미하게 휘발되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코미디 로얄>은 호불호가 갈리거나 평타 이상은 친 코미디 프로그램이 아닌, 안일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된다. 이기기 위한 자유경쟁은 그 자체로 멋있을 수 없다. 멋있는 승리란 무엇이냐는 제작진과 출연진의 고민이 구체화될 때 비로소 경쟁의 치열함은 승패 이상의 것을 남길 수 있다. 잠깐잠깐 드러나던 출연자들 각각의 좋은 코미디에 대한 생각은 그럼에도 실제 결과물의 형태로 구체화돼 부딪치지 못했다. 우승자와 우승 팀을 가리는 최종 3라운드가 어떻게 웃기느냐는 것보다 웃음을 참는 것에 방점이 찍힌 미션이 되며 최종 승리의 의미가 모호해지는 와중에, 결국 프로그램의 진정한 승리자로 다들 입을 모아 마스터인 이경규를 꼽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만이 프로그램 내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개그와 없는 개그에 대한 전선을 그어나갔다. 이경규의 코미디 철학이 다 옳은 건 아닐 것이다. 다만 어떤 건 좋고 어떤 건 나쁘다는 구체적인 입장과 실천만이 경쟁에 가치판단의 전선을 긋고 더 나은 코미디를 위한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앞서 모두가 외면하는 코미디는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코미디 로얄>의 몇몇 저질스러운 개그가 거슬리긴 했지만 그것들을 염두에 두고 한 이야기는 아니다. 좋은 코미디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결국 무엇이 나쁜 코미디인지에 대한 비판적 질문을 동반해야 한다는 뜻이다. <코미디 로얄>은 전자에 대한 고민을 품고 경쟁시키되, 후자에 대한 갈등은 최대한 회피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좋은 의도와 그렇지 못한 결과 사이의 간극이 벌어진다. 방송에서 곽범이 말했듯 “코미디의 종류는 다양하고, 웃음의 종류는 다양하다”. 좋은 웃음은 정영준과 메타코미디 클럽이 추구하는 타깃형 고맥락 코미디에서 나올 수도, 오랜 경험과 생존에서 우러나온 이경규의 내공에서 나올 수도, 탁재훈의 토크 코미디에서 나올 수도, 이용진의 냅다 지르고 보는 욕설에서 나올 수도 있다. 당연히 열어놓고 경쟁해야 한다. 다만 다양성의 무조건적인 포용은 무엇이 좋은 웃음이냐는 질문 자체를 성립하지 못하게 한다. 이 역설 앞에서 <코미디 로얄>의 야심은 자주 좌초한다. 방송 말미 이경규는 코미디에 있어 시행착오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당연히 <코미디 로얄>에도 적용될 수 있는, 아니 적용되어야 할 조언이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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