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송의 아니 근데
2024.02.15 06:00 입력 2024.02.15 06:04 수정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어설픈 흉내보다 불편한 왜곡…“아,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쫌”

유튜버 쯔양의 채널에 출연한 코미디언 김지영(사진 왼쪽)은 외국인 며느리 ‘니퉁’ 캐릭터를 연기한다. 코미디언 김경욱은 일본 호스트 ‘다나카’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다.  유튜브 갈무리

유튜버 쯔양의 채널에 출연한 코미디언 김지영(사진 왼쪽)은 외국인 며느리 ‘니퉁’ 캐릭터를 연기한다. 코미디언 김경욱은 일본 호스트 ‘다나카’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다. 유튜브 갈무리

설 연휴가 끝났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생활했던 사람은, 나고 자란 곳의 언어에 둘러싸일 때 새삼 명절을 실감한다. 사투리가 강한 지역 출신이라면, 타향살이로 살짝 희석됐던 억양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사투리는 최근 꽤 핫한 콘텐츠다. ‘충청도식 돌려 말하기’, ‘경상도 호소인의 엉터리 경상도 사투리’ 같은 영상이 쇼트폼으로 인기를 끌고, 얼마 전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에 올라온 ‘미디어 사투리 기강 잡으러 왔어예’는 순식간에 15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온라인에서 화제 몰이를 했다. 이때 ‘미디어 사투리’란 미디어에서 재현된,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사투리를 일컫는다. 이후 이 채널은 사투리 콘텐츠를 연달아 올리며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오늘은 ‘하말넘많’이 쏘아 올린 영상을 중심으로 미디어의 사투리 재현과 반응을 살펴본다.

‘하말넘많’의 사투리 영상은 <‘강의의 神’&‘리뷰의 神’> 코너에 올라왔으며, 칠판을 배경으로 TK 출신인 강민지가 시종일관 은은한 광기를 곁들여 대구·경북 사투리를 가르쳐주는 내용이다. 디테일한 사투리 구현, 언어학자에 버금가는 분석, 댓글의 표현을 빌리면 ‘강약조절’을 잘하는 강의 태도 등 이 영상의 웃음 포인트는 곳곳에 포진해 있다.

‘하말넘많’의 사투리 강의. 유튜브 갈무리

‘하말넘많’의 사투리 강의. 유튜브 갈무리

‘하말넘많’을 비롯한 사투리 콘텐츠의 댓글 창을 살펴보면, 주류 미디어가 지금껏 자연스럽게 탈락시켰던 ‘공감의 재미’ 영역에 비서울 지역 사람들을 모은다는 특징이 있다.

‘출퇴근길 지옥철’, ‘망원동의 분위기’, ‘한강 산책’ 같은 것들은 특정 지역 사람들에게만 해당하지만, 현대인의 일상인 것처럼 포장된다. 뉴미디어 시대의 사투리 콘텐츠는 생생한 언어를 담아내며 공감의 장을 만든다. 그중에서도 재미있는 부분은 ‘미디어에서 왜곡된 사투리’에 대한 일갈이다. “오빠야”를 예로 들며 간드러진 억양이 아니라 ‘그냥 던지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장면에서, 지긋지긋하게 “오빠야” 개인기를 요청받았던 ‘쌍도 여성’들은 손뼉을 쳤을 것이다.

이창섭이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 ‘전과자’에서도 부산에 갔을 때, 길에서 만난 여성에게 ‘오빠야’를 요청한다. 현지인 여성은 무뚝뚝하게 ‘오빠’를 읊조리고, 이창섭은 마주한 현실 앞에 겸연쩍어한다. ‘하말넘많’의 강민지는 ‘햄, 히야’처럼 남성이 형님을 부를 때 억양이 오르락내리락하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하며 ‘오빠’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미디어 사투리가 가장 많이 왜곡하는 사투리 중 하나는 왜 하필 경상도의, 왜 하필 여성들이 쓰는, 왜 하필 ‘오빠야’일까?

경상도 사투리는 남한에서 가장 ‘억센’ 사투리로 알려져 있다. 억양이 강하고, 말의 속도가 빠르며, 언뜻 듣기에 화를 내는 것처럼 들린다. 한편으로는, 복잡한 한국 현대사와 결합하여 사투리 중에서는 그나마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지역 언어이다. 중년 남자의 경상도 사투리는 전라도의 그것에 비해 절대 교정되지 않으며,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한국인이라면 피부로 체감한다. 또한 경상도 사투리는 가장 흥행한 영화가 증명하듯, ‘깡패’의 언어이기도 하다. 좋게는 의리와 카리스마, 나쁘게는 폭력성과 무식함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요소들이다. ‘오빠야’는 ‘비경상도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우악스러운 경상도 여성의 여성성을 강화하기 위한 애교 프레임이다. ‘신현희와 김루트’의 ‘오빠야’라는 노래가 엄청나게 히트했다는 배경도 한몫하지만, 연인 관계에서 애교를 섞어 부르는 말투가 실생활과 다르다는 것은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오빠야’만은 시도 때도 없이 소환된다.

엉터리로 소비되는 사투리에 대한
TK 출신 강민지의 유쾌한 일갈
기본적 연습도 안된 티가 날 때
원주민들의 쌓인 한이 폭발한다

외국인의 발음을 흉내내는 코너는
인종 차별 비판에도 넘쳐난다

누군가의 억양과 발음에는
외부인들이 재미로 소비하거나
탈취할 수없는 소중한 것들이 있다

언어적 특징을 잘 포착해내고
비슷하게 구현하는 건 재능이지만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성찰해야

오빠는 단순히 연장자 남성을 부르는 호칭을 넘어, 젠더 권력을 행사하는 단어이자 가장 로맨스의 함의를 띠는 표현이다. 여기에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오르내리는 억양을 붙이는 순간, 경상도 여성은 ‘말투는 이래도 사실은 애교 있는 천생 여자임더’라는 변명이 붙는 존재가 된다. 경상도 여성이 오빠 뒤에 ‘야’를 붙이는 일은 “오빠, 야!(대노)”거나 “오빠야, 니는~(한심해하며)” 정도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내남결> 미디어 사투리 잡으러 왔어예’는 화제의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tvN)의 장면을 강의 자료(!)로 사용한다. 부산 출신인 백은호 역을 맡은 이기광은 어색한 사투리로 주목받았다. 사실 그동안 사투리 연기를 엉망으로 했던 배우는 한둘이 아니며, <내남결> 안에서도 이미 한 트럭이다.

강민지는 ‘모든 배우가 겪고 있는 문제’라며, ‘모든 문장에 리듬을 잘게 쪼개 넣는다’고 말하고, <아는 형님>(JTBC)에서 김영철 또한 배우가 경상도 사투리를 연기할 때 단어마다 악센트를 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춤에도 각자의 그루브가 있듯이, 이상한 사투리 연기에도 고유함이 있다. ‘스페셜하게’ 못한 이기광의 사투리를 지적하는 영상이 적절한 타이밍에 올라오면서, 그동안 미디어 사투리에 쌓인 원어민들의 ‘한’이 폭발한 셈이다. 아,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쫌! 모든 면에서 완벽하기를 바라진 않지만, 기본적인 것조차 연습하지 않은 티가 날 때 어떤 사투리 사용자들은 몰입 바깥으로 튕겨 나간다.

미디어의 왜곡된 사투리 재현은 ‘그래도 되는’ 영역이기에 빈번하다. 언어에는 권력이 개입한다. 표준어는 ‘특정 지역(서울)’과 ‘특정 조건(교양 있는 사람들)’을 명시하며 정치·경제적인 중심을 장악한 언어이고, 사투리는 문화 권력에서 주변부에 있다. 서울공화국의 수직적 구조는 표준어와 사투리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피식대학’의 ‘경상도 호소인’ 캐릭터로 유명한 이용주는 유창한 영어를 사용하는 호주 유학파 출신으로, 서울에 산다. 언어적 기득권자인 그가 엉터리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경상도 정체성을 탐내는 개그는 그가 언어적 기득권자이기에 가능하다. 결국 경상도인이 못 되어도 상관없으니 절박하지 않고, 어차피 사투리를 모르는 외부인이기에 어이가 없어서 웃긴 식이다. 반면 서울에 진입한 비서울 거주자는 이방인의 표식을 지우기 위해 사투리를 교정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쓰는 어설픈 서울말은 다른 의미로 웃음거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같은 지역에 있어도 노비, 깡패, 잡부, 가난한 노인 같은 사회적 하층민들만 사투리를 쓴다. 지역 출신 연예인은 표준어 연기가 필수지만, 특정 지역의 사투리가 필요할 때는 해당 지역 출신이 아니어도 무관하다. 진짜 사투리를 볼 기회는 사라지고, 잘못된 사투리를 흉내 내는 모습만 반복 재생산된다. 사투리와 지역에 대한 인식은 왜곡되고 평면화된다.

이런 문제는 사투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때 영어 발음에 좋다는 허위 사실이 퍼지면서 혀 아랫부분인 설소대 절제술이 유행한 나라에서, 엉망진창으로 구사하거나 발음을 희화화하는 것이 허용되는 언어는 따로 있다. 이수근의 엉터리 중국어나, 개그 코너의 유구한 ‘제3세계 외국인 노동자 흉내’ 개인기 같은 것들 말이다.

최근 먹방 유튜버 ‘쯔양’은 코미디언 김지영과 함께 베트남 음식 먹방 영상을 올렸다가,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을 받고 영상을 삭제한 뒤 사과했다. 김지영은 <개그 콘서트>(KBS2)의 코너 ‘니퉁의 인간극장’에서 필리핀 결혼이주여성 캐릭터 ‘니퉁’을 연기하는데, 쯔양의 유튜브에는 니퉁으로 등장했다가 한국인 김지영으로 돌아온다. 해당 영상을 두고 필리핀인들이 ‘인종차별’, ‘필리핀에는 니퉁이라는 이름이 없다’, ‘필리핀 구독자를 만나고 싶다면 진짜 필리핀 사람을 초대하고 필리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댓글을 달며 비판했다.

다른 나라 언어를 흉내 내거나, 외국인의 한국어 발음을 흉내 내는 것은 명백한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은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이를 정치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개그의 차원에서 안전하게 소비하고 싶은 욕망도 여전히 거세다. 코미디언 김경욱은 일본인 호스트 출신이라는 설정의 ‘다나카’ 캐릭터를 만들어 일본인 특유의 한국어 억양과 실제 일본어를 섞어서 사용하는데, 작년 3월 ‘더 현대 서울’에서 팝업스토어가 열릴 만큼 인기를 끌었다. <SNL코리아4>에서는 지예은이 영화 <헤어질 결심>의 탕웨이를 패러디한 ‘마라탕웨이’ 캐릭터를 연기하며 배우의 한국어 발음을 흉내 낸다.

누군가의 언어적 특징을 뛰어난 관찰력으로 잡아내고 비슷하게 구현하는 것은 뛰어난 재능의 영역이다. 동시에, 그런 재능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성찰할 때이다. K컬처에 대한 자부심만큼이나, 지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언어에 대한 윤리적 감각이 필요하다. “언어는 역사의 보관소”(에머슨)라는 말처럼, 누군가의 억양과 발음에는 외부인이 단순히 재미로 소비하거나 탈취할 수는 없는 것들이 담겨 있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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