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야근 대신 뜨개질’ - ‘야근·잔업 없는 일터 만들기’ 세 여자의 연대와 도전기

2016.11.17 11:26 입력 2016.11.17 21:55 수정

[리뷰]다큐멘터리 ‘야근 대신 뜨개질’ - ‘야근·잔업 없는 일터 만들기’ 세 여자의 연대와 도전기

일하면서 행복할 수는 없는 걸까. 숱한 야근과 불필요한 감정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이 사회의 직장인들이라면 한번쯤 떠올려봤을 법한 질문이다.

영화 <야근 대신 뜨개질>(감독 박소현)은 한국 사회 노동의 조건을 살피는 다큐멘터리다. ‘노동’이란 단어가 안기는 특정한 이미지는 떠올리지 않아도 좋다. 영화에 등장하는 건 자동차 공장이나 조선소 같은 대규모 사업장도, 붉은 조끼를 입은 남성 노동자도 아니다. 영화의 배경은 공정여행을 추구하는 여행사, 등장인물은 근무경력 3~5년차의 30대 여성 3명이다.

어느 토요일 오후 여행사 트래블러스맵의 사무실. 나나, 주이, 빽은 잔업을 위해 출근했다가 문득 깨닫는다. “날 좋은 토요일에 나와서 우린 뭘 하고 있나.” 이들의 깨달음은 숱한 야근에 대한 재고로까지 이어진다. “야근은 지금 안 하면 큰일나는 그런 건 아닐지도 몰라.” 이전까지 셋은 직장 내에서도 그리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으나, 깨달음 이후 무언가 새롭고 재미있는 작당을 해보기로 한다. 세 직장인은 한자리에 모여 뜨개질을 시작한다. 이들은 예쁜 색깔의 실로 여러 모양의 조각보를 만든 뒤, 아무도 모르게 도심을 장식하기로 한다. 조각보를 들고 새벽 3시 인적이 드문 영등포역 부근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스릴까지 넘친다.

영화는 얼핏 그라피티아티스트 뱅크시처럼 도시에 대한 은밀한 미학적 도발을 감행하는 아마추어 예술가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뜨개질 모임 이야기는 곧 부당한 노동 조건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세 직장인은 모두 공정여행의 가치를 지지하고, 일을 좋아한다. 트래블러스맵 역시 비교적 민주적이고 평등한 직장문화를 유지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대표, 팀장 등의 직함이 없이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른다. 하지만 이상적으로 보이는 직장에서조차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일하기란 쉽지 않다. 트래블러스맵은 짧은 기간에 직원을 몇 배로 불릴 만큼 성장했지만,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끊기자 곧 경영난에 봉착한다. 나나, 주이, 빽은 좋아하는 일이니만큼 잘해내고 싶지만, 야근이나 잔업 없이 일을 잘하기란 어렵다. 나나는 홀로 노동법 강의를 들으러 다닌 뒤 노조를 조직하려 한다. 하지만 작은 사회적 기업에서 노조를 조직한 전례는 없다. 사내에선 일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받는다.

공정여행의 아름다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일하는 과정까지 아름답지는 않다. 올바른 일을 한다는 명목으로 자기희생이 전제되는 것이 이러한 일터의 현실이다. 영화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한 노력과 좌절의 과정을 그릴 뿐이다. 변화는 요원하지만, 이들은 또 다른 공간에서 삶과 사회의 변화를 꿈꾼다. 아이러니한 점은 기자도 이 영화를 ‘자발적 야근’ 상태에서 관람했다는 사실이다. 17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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