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는 빚더미에 ‘깜깜’…정부 대책은 ‘감감’

2024.05.25 09:00 입력 2024.05.25 09:03 수정 김은성 기자

코로나에 묻힌 자영업 다중부채, 선제 대응해야

차주 실태 파악 선행 후 맞춤형 선별 지원 필요

중고 주방용품 업체 직원이 지난 5월 17일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가구거리에서 주방 설비를 운반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주간경향] 자영업자 부채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르면서 정부와 정치권도 지원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내수 경기가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자영업자의 원리금 상환에 대한 부담이 가중돼 부채 부실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 부채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자영업 부채는 다층적인 문제가 뒤섞여 있는 데다 차주의 옥석을 가리지 않는 금융 지원은 자영업 생태계를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확한 진단을 토대로 채무자 상환 여력에 따른 맞춤형 방안을 지원하고 장기적으로는 산업의 구조 재편이 불가피하다고 주문한다.

코로나 청구서 날아오는데단기 대책만

현재 금융당국이 진행하는 금융정책은 크게 세 가지다. 채무 조정을 돕는 새출발 기금과 만기 연장·상환 유예, 대환대출 지원이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2020년 4월부터 6개월 단위로 대출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를 시행했다. 신청 자격만 있으면 상환 능력과 관계없이 지원받을 수 있었다. 만기 연장은 내년 9월까지 미뤄졌지만, 원리금 상환 유예는 지난해 9월 종료됐다. 다만 금융위원회의 ‘연착륙 지원’을 위해 상환 유예 차주는 상환계획서에 따라 2028년 9월까지 지원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거치 기간이 끝난 차주들은 원금과 이자를 동시에 갚아야 하는 시기가 돌아와 빚으로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 때보다 더 힘들다”고 토로하는 이유다.

당국은 고금리로 불어난 이자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저금리로 바꿔주는 대환대출을 지난 3월 시작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신용점수 등 조건이 까다롭고 문턱이 높아 체감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온다. 또 정책의 대상 범위를 사업자 대출에서 개인대출로 넓혀야 한다고 주문한다. 대다수 자영업자는 1금융권에서 사업자 대출을 받은 후 부족한 부분을 2금융권에서 개인 신용대출로 충당한다.

한계상황에 몰린 자영업자의 부채를 일부 탕감해주는 새출발 기금도 이용이 저조하다. 2년간 채무조정 프로그램 이용정보(공공정보)가 전 금융권에 공유되고, 신용점수가 하락해 대출은 물론 금리 산정 등에서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이 크다. 이에 금융당국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신용평가방식을 개선하고 있다.

그 외 소상공인 전기요금 지원, 대출 이자 환급 등의 대책을 총선을 앞두고 쏟아냈다. 하지만 대출 이자의 일부를 환급해주는 과정에서 벤츠 같은 고급 수입차의 리스 할부금 이자를 세금으로 지원해준 것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금융위는 “지원 기준과 소득 등을 일일이 따져서 지원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정책 성과를 위해 성급히 추진한 결과라는 비판이 나왔다.

또 2000만원 이하 채무 연체자가 올해 5월까지 빚을 다 갚으면 연체 기록을 다 삭제해주는 신용사면 조치도 단행, 성실 차주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부분의 정책이 단기 대책에 그치고 부채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자영업자들의 반응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신용학회장)는 “자영업 부채는 내수 부진과 고금리 등 복합적인 문제가 누적돼 있어 금융 하나만으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상환 여력을 높이기 위해 각 부처가 큰 그림을 갖고 각각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빚을 연장해 위기를 늦추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국민 25만원’ 재정 투입 대비 효과 미미

아울러 전문가들은 차주에게 필요한 지원을 해주기 위해서라도 부채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 파악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경기 상황으로는 사업을 한다고 해도 수익을 낼 수 있을지가 불확실한 차주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상환 여력을 구별해 선별적으로 채무를 재조정하고 대출에 발목이 잡힌 한계 차주에게는 폐업을 지원해주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도 “자영업자에게 실제로 필요한 금융지원을 할 수 있도록 부채에 대한 정밀 진단이 필요하다. 실태 파악 없는 무차별 지원은 다른 업종에 역차별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생계형과 사업가형을 나눠 맞춤형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정책 금융의 패러다임을 직접 대출에서 간접 보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서지용 교수는 “정부가 한정된 재원으로 직접 현금을 출연해 (대출로) 지원하기보다 일정 부분 상환 자금에 대해 보증을 서주는 신용 보강을 통해 금리를 낮춰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며 “정부 재정을 투입하는 것보다 연체 가능성이 작고 더 많은 이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지역상품권 형태로 25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특별조치법을 추진 중이다. 민주당의 총선 공약으로 해당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약 13조원의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여당과 정부는 위헌 소지가 있고, “어려운 사람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취약계층을 위해 재정을 확대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전 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25만원 상품권을 지원하는 것은 재정 투입 대비 효과가 크지 않으리라고 본다.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은 “경기를 활성화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전 국민 지급은 카드로 쓸 것을 지역화폐로 쓰는 정도의 수준에 그쳐 지출 대비 효과적이지 않다. 취약 차주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자영업자의 퇴로를 열어주는 구조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왔다. 이윤수 교수는 “폐업 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사전에 지원해 위험을 줄이고, 사회안전망 확충을 전제로 과밀화된 경쟁을 줄일 수 있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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