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인간과 동물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정치적 문제들

2018.09.06 21:27 입력 2018.09.07 11:23 수정

식용견의 해외입양과멀티스피시즈 정치

지난 3월 한국의 한 식용견 농장에서 국제 동물보호 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에 의해 구조된 카모의 ‘비포 앤드 애프터’. 구조되기 전 더러운 털이 엉겨붙은 채 작은 코만 드러나 있던 카모는 구조된 뒤 몰라보게 달라졌다.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 페이스북 페이지

지난 3월 한국의 한 식용견 농장에서 국제 동물보호 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에 의해 구조된 카모의 ‘비포 앤드 애프터’. 구조되기 전 더러운 털이 엉겨붙은 채 작은 코만 드러나 있던 카모는 구조된 뒤 몰라보게 달라졌다.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 페이스북 페이지

아시아에선 도살 위기의 개들
서구의 가정서 따뜻한 보살핌

‘선과 악’의 구조적 시선 고착
‘인종주의·혐오’ 문제로 확산
인간집단의 권력관계로 작용

단순한 동물의 문제만이 아닌
인간과 비인간을 아우르는
새로운 사회과학적 통찰 필요


구조된 개들의 ‘비포 앤드 애프터’

동물과 문화란 주제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팔로우하게 된 SNS 계정들이 있다. 그중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umane Society International)과 애니멀즈 아시아(Animals Asia)라는 국제적 동물보호 단체들이 있는데, 아시아의 각국에서 학대받는 동물들을 구조하여 북미, 유럽, 호주 등에 살고 있는 개별 가정 또는 보호기관에 입양시키는 이들의 활동이 특히 흥미롭다.

가장 빈번하게 구조 및 입양의 대상이 되는 것은 한국,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살고 있는 ‘식용견들’이다. 이 중 한 단체의 SNS에 8월 한 달 동안 올라온 총 11개의 포스팅 중 홍수가 난 인도 케랄라 지역에서의 구조 활동, 일본의 아이보리 수입 문제 등의 ‘다른’ 이슈들을 제외하면 7개의 포스팅이 아시아의 식용견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종종 현지 단체들과의 협조하에 식용견 반대 서명운동을 벌인다거나 기부금을 독려하는 데 집중된다. 8월에 올라온 포스팅들은 한국의 식용견 및 식용묘 금지를 위해 더 많은 서명을 모아 청와대를 압박하고, 인도네시아 농림부에 식용견 규제를 권고하는 활동을 소개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구조되어 다른 나라로 입양된 개들에 대한 소식도 잊지 않는데, 이번 달의 주인공은 중국의 식용견이었다가 캐나다의 새집으로 입양된 ‘니비아’이다.

“다른 개들과 함께 철창에 갇혀 있던 니비아는 우리 단체에 구조되기 전 중국의 율린 개고기 축제를 위해 도살될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니비아는 3개월 동안 새 보호자가 만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캐나다 몬트리올의 새집을 너무나 좋아하고 있고, 우리는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 8월29일)

중국에서 도살되어 잡아 먹힐 운명에 처해 있던 니비아가 캐나다의 좋은 가정에 입양되어 잘 살고 있다는 소식만큼 전형적인 해피엔딩은 없을 것이다. 이 소식은 동물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안도감을 느끼게 하며, 이 감정은 중국에서 비좁은 철창 안에 다른 개들과 함께 마치 구겨넣어진 모습으로 들어가 있던 니비아의 전 모습과 캐나다의 새 보호자에게 안겨 행복해하는 현재의 모습을 각각 담은 사진들을 통해 고조된다. 아시아 각국에서 구조된 개들의 ‘비포 앤드 애프터’는 이렇게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된다. 한국의 개농장에서 구조되어 미국으로 입양된 백구가 빨간색 나비넥타이를 하고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동영상, 역시 한국의 개농장에 있을 때는 길게 자란 털과 먼지로 뒤덮여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던 개가 새하얀 털을 되찾고 관리가 잘 된 모습으로 외국의 공원에서 뛰어놀고 있는 사진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 스토리들은 단지 훈훈함만을 만들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가지 감정을 한꺼번에 자아낸다는 데 이 스토리들의 복잡성이 있다. 즉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 있는 비위생적인 시설에서 잔혹하게 도살되고 소비될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던 개들이 서구의 어느 가정으로 구조되고 입양되어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식의 이 익숙한 서사 구조는 불가피하게 선과 악, 문명과 야만, 깨끗함과 더러움, 정상과 비정상, 혐오와 수치심 등의 정동을 생산하며, 이 정동은 중국, 한국, 인도네시아, 캐나다, 아시아 등 전혀 중립적이지 않은 지정학적 범주들 사이를 순환하며 극대화된다.

국제 동물보호 단체 ‘애니멀즈 아시아’(왼쪽 사진)와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오른쪽) SNS 계정에 올라온 구조된 개들.

국제 동물보호 단체 ‘애니멀즈 아시아’(왼쪽 사진)와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오른쪽) SNS 계정에 올라온 구조된 개들.

한국에서 처음 입양된 것은 개가 아닌 인간

한국에서 해외로 처음 입양되었던 것은 주지하다시피 동물이 아닌 인간, 즉 한국전쟁이 낳은 고아들이었다. 인류학자 일리나 킴은 한국 해외 입양의 형성을 추적한 연구에서 전쟁과 그에 따른 미군정의 설립이 없었다면 한국에서 몇십년간 이어진 것과 같은 규모의 입양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이야기한다(Eleana Kim. 2009. <Adopted Territory>. Duke University Press). 한국전쟁 고아의 해외 입양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지배와 반공주의를 강화하려는 미국 정부의 이해관계와 사회경제적 대혼란 속에서 특정 인구층에 대한 보호의 책임을 해외로 전가하려는 한국 정부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한국의 전쟁고아는 공산주의의 참상에서 구해야 할 인도주의적 대상으로 재현되었으며, 한국 정부에 의해 공식 승인된 기관인 한국아동양호회가 해외 여러 원조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해외 입양을 직접 수행하였다.

해외 입양이 단순히 수요와 공급에 따른 것이 아니라 냉전 체제와 그 속에서 형성된 불평등한 한·미관계 안에서 가능해진 것이라는 킴의 주장은 정치 또는 권력의 문제와 무관해 보이는 인도주의 활동들이 가지는 정치적 함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물론 전쟁통에 부모를 잃거나 혹은 부모에 의해 버려진 아동들에게 보살핌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해외 입양은 일차적으로 인도주의적 성격을 지닌다. 하지만 바로 그 실천이 위치한 더 큰 사회적 맥락에 스며든 불평등(미국과 한국, 또는 해외의 입양 가족과 입양되는 한국의 고아 사이에 존재하는)은 그 실천이 권력 관계라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한다. 킴은 미국과 한국의 적극적 공조 아래 이루어진 해외 입양이 냉전의 산물이었던 한국전쟁과 미국의 패권주의를 하나의 ‘인도주의적 과업’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음을 이야기한다.

해외 입양 사업을 통해 미국은 흉포한 제국 또는 지배자가 아닌 선의의 구원자가 되었으며, 한국은 그 구원의 숭고한 대상으로 재정의되었다는 것이다.

오랑우탄, 하청 노동자, 자원봉사자

물론 지금 한국에서 식용으로 소비될 개들을 구조하여 해외로 입양시키는 일과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해외로 입양시킨 일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둘은 분명히 다른 시점에서 벌어진 다른 성격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킴의 논의는 ‘선의’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적 구호활동이 그것만의 논리와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구호 활동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우리는 그 활동들이 인간 집단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권력/지배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동시에 그 관계들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고 있음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류학자 빠레나스는 말레이시아 사라왁에 위치한 오랑우탄 재활센터에서 오랑우탄들, 현지의 하청노동자들, 그리고 자비를 들여 오는 서구의 자원봉사자들이 서로 다른 차원과 강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이야기한다(R. Parrenas. ‘Producing Affect: Transnational volunteerism in a Malaysian orangutan rehabilitation center’ American Ethnologist, 39(4), 673-687). 오랑우탄이 야생에서도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재활센터는 많은 모순과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그곳에 상주할 수밖에 없는 현지의 하청노동자들은 부상, 물림, 동물원성 감염증에 늘 노출되어 있으며, 오랑우탄들도 마찬가지로 인간이 매개하는 병과 그들이 가하는 처벌에 노출되어 있다. 이와 달리 단기간만 이 시설을 찾고 고된 노동을 경험하는 서구의 자원봉사자들은 단지 한시적 위험에 처할 뿐이며, 더욱이 그와 같은 경험은 그들이 북반구의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남반구에서의 더없이 고귀하고 이국적인 모험으로 남게 된다. 따라서 호주, 유럽, 영국 등지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며 야생보호를 위해 시간적 여유와 자비를 들일 수 있는 북반구의 자원봉사자들과 피지, 필리핀, 말라위 등의 남반구에서 싼값을 받고 고된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현지 노동자들 사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초국가적 야생보호란 맥락하에서 질병과 취약성에서의 새로운 불평등으로 확장된다.

순전히 동물의 문제란 없다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적 구호 활동이 그것만의 독립적 영역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아시아의 ‘식용견’을 북반구의 가정으로 입양시키는 동물 단체들의 활동은 분명 동물의 ‘살 권리’란 문제에 부응하고자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활동은 ‘우리의 가족이자 친구인 개들을 비위생적으로 도살하고 잡아먹는 아시아의 잔혹한 전통문화’란 오리엔탈리즘적·인종주의적·식민주의적 시선들 또한 불가피하게 재생산한다. 앞서 언급한 두 단체의 SNS 포스팅들에는 분노와 혐오에 가득찬 댓글들이 종종 올라오며,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 한 단체는 인종주의와 혐오발언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동물 학대가 단지 ‘아시아의 문제’가 아닌 국경을 초월해 발생하는 문제임을 강조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한다(애니멀즈 아시아, 2017년 1월11일). 물론 이 성명서가 강조하듯이 현지에서의 자생적 동물보호 활동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으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자생적 활동의 발전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과 비인간을 아우르는 정치라는 본질적 문제는 남는다.

최근 일군의 인류학자들 사이에서 인간의 활동에만 초점을 두어 온 종래의 사회과학 방법론을 넘어 다양한 비인간 종으로 시선을 확장하는 ‘멀티스피시즈 에스노그래피’(multispecies ethnography) 논의가 활발하다. 멀티스피시즈라는 개념은 인간, 동물, 식물, 균류, 미생물 등 그야말로 다양한 ‘종’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 순전히 인간의 문제 또는 순전히 동물의 문제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종들은 서로에게 무수한 영향을 미치며 무수한 관계들을 형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가시화는 새로운 감각, 통찰, 성찰을 요구한다.

▶필자 전의령

[전문가의 세계 - 전의령의 동물이야기] (8) 인간과 동물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정치적 문제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채플힐) 인류학과에서 한국의 시민사회가 이주와 다문화에 대해 담론화하는 방식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신)자유주의 통치성, 반다문화와 우익 포퓰리즘, 동물과 생정치에 관한 논문들을 써왔으며,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연결되어 있다는 인류학적 믿음 하나로 다양한 연구 주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조교수로 강의와 연구를 병행 중이며, 전주와 파주를 오가며 세 마리의 고양이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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