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무관심, 고립된 삶…그를 ‘괴물’로 만들었다

2017.05.05 20:46 입력 2017.05.05 20:51 수정
김경옥 프로파일러

어느 방화범의 노트

[프로파일러 김경옥의 범죄 앤 더 시티]가족의 무관심, 고립된 삶…그를 ‘괴물’로 만들었다

영철씨(가명)는 오늘도 펜을 들었다. 매일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좁은 고시원 방에서 영철씨의 얘기를 들어주는 건 이 노트뿐이다. 집을 나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영철씨는 노트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적기 시작했다. 노트가 얘기를 들어주는 친구처럼 느껴졌다. 이 세상에서 혼자인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친구.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영철씨는 어려서부터 가족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겉돌았다. 부모님이 무뚝뚝하긴 했다.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누워서 TV만 봤고 어머니도 그런 아버지가 익숙한 듯 정을 표현하는 데 인색했다. 누나는 그런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살갑게 애교를 부려 예쁨을 받기도 했지만 자신은 쉽게 부모님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이 대화의 전부였다. 그런 영철씨를 어머니는 바라만 보실 뿐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았다. 가족이 모여 앉아 TV를 보며 과일을 먹으면서도 영철씨는 소외감을 느꼈다. 웃고 떠드는 누나를 부러운 듯 쳐다볼 뿐이었다.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영철씨는 더 힘들어졌다. 도무지 친구들과 어울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친해지는지, 먼저 말을 걸어야 하는지 온통 궁금하고 어색한 것투성이였지만, 누구도 그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어색하게 겉도는 자신을 친구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무거운 집안 분위기에 숨이 막혔다. 학창 시절에는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많았고 때로는 친구들과 다퉈 전학도 자주 다녔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영철씨는 혼자였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자신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억지로 끌려가듯 입대한 군대에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선임병과 싸우고 영창에 가기도 했다.

[프로파일러 김경옥의 범죄 앤 더 시티]가족의 무관심, 고립된 삶…그를 ‘괴물’로 만들었다

답답했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고 나를 이해해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정작 사람들과 부딪치면 두려웠다.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 나한테 왜 이러지’ 하는 의심부터 들어 좀처럼 마음을 열 수 없었다. 제대하자마자 영철씨는 집을 나왔다.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하며 비좁은 고시원을 전전했고 가족과는 연락을 끊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편하고 혼자인 것이 좋았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답답함은 커져갔고 삼삼오오 어울려 재잘거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왠지 부러웠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루 종일 영철씨가 대화를 하는 시간이라고는 음식점 사장님의 지시를 받거나 꾸중을 듣는 때가 전부였다.

언젠가부터 영철씨의 노트에는 흉측한 말들이 적히기 시작했다. ‘이 세상 살아서 뭐하나’ ‘나는 잘못 태어난 사람’ ‘죽어버리자’…. 영철씨는 지쳐갔다.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었고 매일 싫은 소리를 해대는 사장의 얼굴도 보기가 싫었다. 노트에는 사장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할 수 없었던 말들이 넘쳐났다. ‘음식값 잘못 계산한 거 네 월급으로 내. 너는 일하는 게 왜 그 모양이냐.’ ‘염병하네, 지는 실수 안 하나, 젠장.’ ‘쥐꼬리만 한 월급 떼고 부자되나 보자, 악랄한 놈.’ 글로 쓰니 더 화가 났다.

노트에 글을 쓸수록 마음의 분노는 더 커졌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왜 이렇게 태어났는지’ ‘이게 내 잘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그토록 누군가 도와주기를 바랐지만 아무도 보듬어주지 않았다.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세상도 원망스러웠다. 도무지 살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해.’ 영철씨는 불행하기만 한 삶을 끝내기로 했다. 하지만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혼자 죽을 수는 없었다.

그날 밤 영철씨는 밤을 꼬박 새며 노트에 글을 적어 내려갔다. ‘라이터, 휘발유, 부탄가스, 마스크’. 노트는 범행일지가 되었다. ‘이제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생 마지막 멋지게 끝내자.’ 마지막 글로 영철씨는 각오를 다졌다. 쥐죽은 듯 고요한 새벽, 모두들 곤히 잠든 시간. 영철씨는 침대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를 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던 고시원은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변했다. 모두 깊이 잠들어 있던 터라 불이 크게 번지도록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이 다섯이나 됐다. 그들은 모두 사망했다. 화재 직후 옥상으로 피신해 있던 영철씨는 생존자들 틈에 끼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가 옷과 얼굴에 그을음이 있는 것을 의심한 형사의 추궁으로 범행을 인정했다.

영철씨가 검거된 후 모친은 “평소 아들이 친구 없이 혼자 지냈고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고 전했다. 혼자 있는 것을 편하게 여겼고 좀처럼 자기 속마음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 영철씨가 엄마에게도 낯설었던 듯싶다. 자라면서 영철씨는 고립되어 갔고 타인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그는 자신을 보듬어주지 않은 부모와 세상을 원망했지만 정작 영철씨 스스로도 세상과 어울려 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고시원에 틀어박혀 자신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던 영철씨는 결국 자기연민의 늪에 빠져 다섯 명의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괴물이 되어 버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따져볼 수는 없겠지만, 이 사건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우리에게는 우리를 이해해줄 다른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기댈 곳을 필요로 한다. 서로를 의지하고 때로는 투정부리고 위로받으면서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누군가와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일방적인 이야기는 안된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시작의 대상은 아무래도 ‘가족’일 것이다.

필자는 비행 청소년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은 한결같이 “집이 싫어요” “간섭받는 거 싫어요”라며 부모를 거부하면서도 은연중에 부모가 자신과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드러내곤 한다. 청소년들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부모를 원망하면서도 부모를 실망시킨 자신을 질책한다. 자신이 힘들 때 외면한 부모를 원망하던 한 청소년은 “어떻게 부모가 자식한테 그럴 수 있어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 눈빛에는 원망보다는 서러움이 더 크게 담겨 있었다. 어떤 사건으로 만났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한 범죄자가 이야기한 자신의 어린 시절이 가끔 생각난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신을 때릴 때면 벽에 한 점을 찍어놓고 폭행이 멈출 때까지 그 점만 바라봤다고 한다. 자신이 왜 맞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만 바랐다고 한다. 그는 어른이 돼서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족 간에도 내 마음을 표현하고 귀 기울여 들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힘듦을 알아차리고 보듬어주려는 관심이 필요하다. 어린 영철씨가 진정한 가족을 느낄 수 있도록 서로 관심을 기울였다면 영철씨의 노트에는 좀 더 행복한 글들이 남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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