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어디로 떠나갔을까?
10여년 만에 다시 찾은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 해 저물녘 골목에서 삼삼오오 모여 놀던 아이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마을길로 오르다 만나는 구멍가게 앞 평상에선 사내아이들이 딱지놀이를 했었다. 그 가게는 부동산사무실로 바뀌어 있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이 사라진 동네는 스산하고 쓸쓸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별칭이 꽤 오랫동안 붙어있는 마을이다. 옛 주소가 산104번지여서 백사마을이다. 1967년 남대문, 영등포, 청계천 등 도심개발로 밀려난 주민들이 불암산 자락의 거친 땅을 고르고 집을 지었다.
고층 건물에 익숙한 눈에 마을은 여전히 낯설다. 입구에 서면 1960~70년대로 장면이 전환된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그 시절의 외형을 유지한 남루한 가게들이 늘어섰다. 대부분 문을 닫았고, 식당과 이발소 등 몇 곳만 손님을 받았다. “여기가 예전엔 사람들이 북적이는 상가거리였어요.” 쌀가게를 했다던 한 주민은 집 앞에 앉아 인적 드문 거리에 허전한 시선을 던졌다. 한때 3500명 이상이 살며 북적이던 곳이다.
핏줄처럼 뻗어있는 골목을 따라 걸었다. 빈집들이 즐비했다. 문 옆에는 가옥 소유자 이름과 함께 거주 여부를 표시했다. ‘공가’라 써놓은 집뿐 아니라 ‘주거’라고 표시된 집도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사람의 체온이 빠져나간 집은 힘없이 허물어졌다. 지붕과 담벼락은 내려앉고 집기들이 나뒹굴었다. 녹슨 철제 대문은 담쟁이가 덮었고, 위태로운 담장 너머로 웃자란 나무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인기척에 놀란 길고양이들은 서둘러 몸을 숨기곤 했다.
“다 떠났어. 전부 빈집이야. 없이 살아도 정 붙이고 살았는데….” 50년 원주민 김순자씨(77)는 씁쓸해 했다. 김씨는 마을 쉼터 ‘만수정’에서 이웃 노인들과 늦은 오후 시간을 보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살아낸 얘기, 건강과 자식 자랑, 떠나간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웃음과 한숨으로 주고받았다. 해가 기울고 바람이 서늘해지자 주민들은 집으로 느린 발걸음을 옮겼다.
최근 백사마을 재개발이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시와 노원구는 최대 25층의 아파트 단지와 주거지 보전구역의 저층형 임대주택을 짓는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집을 가진 주민이나 세 들어 사는 주민도 “좋은 집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동시에 분담금이나 입주 조건 등의 이유로 실제로 들어가 살 수 있을지 걱정이다. 개발이 돼도 재정착할 수 없는 원주민들이 지난 십수년 동안 입주권을 팔고 수없이 마을을 떠났다.
13년 전 백사마을의 야경을 찍었던 곳에 다시 올랐다. 어둠이 짙어지기 전에 골목마다 보안등이 켜졌다. 촘촘히 들어선 집들은 어느새 어둠에 잠겼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창문이 드물었다.
가진 것 없어 도시의 끝자락으로 내몰렸던 가난하고 고단했던 사람들, 다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