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도 만든다’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윤여관씨(63·대성정밀)가 엘리베이터 부속품을 깎던 중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쇠 깎는 건 박사지. 누구한테도 안 져요.” 금속부품가공 경력 44년, 을지로에서만 34년째다. 펄펄 끓인 알루미늄을 주물틀에 부어 금형을 뜨던 김학률씨(61·신아주물)는 “실물의 50분의 1 크기의 모형 탱크를 실제로 만든 적이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아이디어를 물건으로 뚝딱 만들어내는 여기 사람들은 그냥 기술자가 아니라 장인”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시의 발표로 재개발이 보류된 청계천변 입정동. 미로 같은 골목마다 금속을 자르고 다듬는 소리와 기계의 크고 작은 진동이 울렸다. ‘정밀’ ‘공업’ ‘상사’ ‘주물’ ‘빠우’ 등의 돌림자를 붙인 간판들이 필체 좋은 손 글씨로 쓰였다.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새긴 철공소와 공구상이 골목을 따라 마주보며 이어졌다.
불 밝힌 작은 공장 안에서 ‘장인’들이 선반기계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황민석씨(63·중앙기업)는 글과 문양이 새겨진 조각금형 위에 손바닥만 한 황동판을 올리고 기계로 눌러 상패를 만들었다. “청춘을 다 바쳤다”는 그는 조건이 좋은 이 지역에서 1977년 창업해 한 길을 걸었다. 젊은 아들이 10년 전 아버지 사업을 잇겠다며 합류했다. ‘재개발 반대’ 빨간조끼를 입은 이영건씨(56·광신공업사)는 금속가공 40년 인생이다. “액세서리, 가방장식… 뭐든지 다 만들어요.” 그는 이날 15개 소량의 주문을 받은 시계받침대를 제작했다.
박홍종씨(71·경인빠우)는 고속으로 돌아가는 바퀴에 감긴 천의 마찰을 이용해 장식용 도끼에 광을 냈다. “빠우(광내기) 치지 않고 도금하면 뿌옇게 돼요.” 익숙한 손놀림에 도끼는 금세 반짝였다. 이 분야 50년 경력자다. 골목 입구 ‘을지상회’ 앞에서는 이성옥씨(75)와 아들 주형씨(45)가 마주앉아 금속이 포함된 폐자재 더미에서 황동, 아연, 스테인리스 등 재활용공장에 납품할 비철금속을 분리했다. 주형씨는 13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웠다. 할아버지부터 시작해 3대째 80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100년 점포의 꿈’도 머지 않았다.
을지로의 장인들은 ‘유기체’처럼 연결돼 있었다. 주문받은 물건을 납품하기까지의 공정에 여러 업체가 함께 참여한다. 가령, 메달을 찍어낼 때 앞집에서 재료를 구입하고, 옆집에서 금형을 뜨고, 뒷집에서 광내고 도금을 하는 식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며 공존·공생이 가능한 이유다. 같은 이유로 하나가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 있는 구조다.
해가 기울자 입정동 골목마다 떠다니던 기계소리가 얼마간 잦아들었다. 골목 하나 건너에 이미 철거에 들어간 재개발 구역에서 굴착기의 굉음은 더 짙어졌다. 인근 장인들은 대책 없이 스러지는 이 구역의 사업장, 그곳을 줄줄이 떠나가는 이들을 아프게 지켜봤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월 을지로 지역의 재개발을 다시 검토하고, 올해 말까지 종합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두렵고 불안합니다.” 코앞까지 밀고 들어온 철거를 바라보는 이주형씨의 심정이다. 이씨는 작업을 하며 말을 이었다. “지키고 싶어요.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