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다큐
2019.05.03 16:28 입력 2019.05.03 17:32 수정 서성일 기자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야산의 불에 탄 소나무 숲 속에 초록의 우산나물이 봄 햇살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야산의 불에 탄 소나무 숲 속에 초록의 우산나물이 봄 햇살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

동해고속도로 속초 나들목을 나서 설악산 리조트단지 아래에 자리한 강원 고성군 토성면 일대를 다시 찾았다. 지난 달 4일 고성과 속초 등 동해안 일대를 휩쓴 ‘강원도 산불’의 발화지점인 원암리 마을 초입부터 아직도 탄내가 바람을 타고 코끝을 자극한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따라 번져간 불길이 성천리, 인흥리, 용천리, 봉포리 등 토성면의 산과 마을을 초토화시켰다. 한 달의 시간이 흘렀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의 절반은 여전히 시커멓다.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마을의 불에 타 무너져 내린 주택.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마을의 불에 타 무너져 내린 주택.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에  불에 탄 자전거가 방치돼 있다.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에 불에 탄 자전거가 방치돼 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금강송, 방풍림으로 꼿꼿이 해변을 지키던 해송, 우리 삶의 일부로 자리한 마을 야산의 수많은 나무들이 숯덩이로 변했다. 황폐화된 산림만 2832㏊다. 산불에 타버린 나무들을 베어내고 다시 복구하는 데 또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산불로  타 버린 고성군 토성면 봉포리 해안의 해송.

산불로 타 버린 고성군 토성면 봉포리 해안의 해송.

화마가 덮친 마을은 불길을 가까스로 피한 멀쩡한(?) 집과 탄 집이 뒤섞여 혼란스럽다. 중장비를 동원해 무너진 집의 잔해를 말끔히 철거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집들은 한 달 전 불에 탄 그대로다. 속초시 장천마을과 영랑호 주변의 주택·상가들도 마찬가지다. 마을길 곳곳에는 정부의 선보상, 한국전력의 책임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내걸려 있다.

불에 탄 채로 남아 있는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의 한 주택.

불에 탄 채로 남아 있는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의 한 주택.

강원도  속초시 영랑동에서 반려견 한 마리가 불에 탄 집을 지키고 있다.

강원도 속초시 영랑동에서 반려견 한 마리가 불에 탄 집을 지키고 있다.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의 불에 탄 음식점에 한전의 책임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의 불에 탄 음식점에 한전의 책임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집을 잃은 이재민들은 인근의 정부기관이나 공기업 연수원, 이재민대피소 등에서 생활하고 있다. 낯선 연수원이 불편한 고령의 이재민들은 마을회관에서 지내기도 한다. 이재민들은 매일 아침이면 원래의 집이 있던 마을로 출근(?)한다. 농번기인 탓에 논일, 밭일을 해야만 한다. 불탄 집을 지키고 있는 반려견의 끼니도 챙겨야 한다. 농삿일에 필요한 농기계도 화재로 망가져 이웃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실정이다. 이재민들은 마을회관에서 봉사단체가 제공하는 식사로 점심을 해결하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정부의 보상대책과 임시주택 입주, 주택신축 문제 등이 주된 관심사다.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며 서로를 위로하다 저녁이 되면 다시 연수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속초시 장천마을의 한 밭에서 이재민들이 옥수수 모종을 옮겨 심고 있다.

속초시 장천마을의 한 밭에서 이재민들이 옥수수 모종을 옮겨 심고 있다.

고성군 토성면 성천리에서 한 이재민이 무너져내린 집 앞의 밭을 매고 있다

고성군 토성면 성천리에서 한 이재민이 무너져내린 집 앞의 밭을 매고 있다

고성군 토성면 성천리에서 이재민들이 불에 탄 주택과 야산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고성군 토성면 성천리에서 이재민들이 불에 탄 주택과 야산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매캐한 냄새가 진한 ‘검은 숲’에 들어섰다. 저만치 5월의 햇살을 받고 피어난 초록의 생명들이 먼저 눈에 띈다. 불 탄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새들도 보인다. 타버린 솔방울과 도토리를 뒤적이며 먹이를 찾던 청설모는 인기척에 황급히 달아난다. 사람의 손길이 닿기도 전, 숲은 재앙에서 벗어나 다시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시작하고 있다.

강릉시 옥계면 천남리 야산에서 청설모 한 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다.

강릉시 옥계면 천남리 야산에서 청설모 한 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다.

이런 기사 어떠세요?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