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양두구육 표현, 정치영역서 썼다면 모욕죄로 처벌할 수 없어”

2022.08.25 21:45 입력 이혜리 기자

전 광주MBC 사장, 방문진 전 이사장 모욕 혐의 기소 사건

무죄 취지 파기환송…“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

정치적 영역에서 공적 인물을 비판하기 위해 ‘양두구육(羊頭狗肉·양 머리를 걸고 뒤에선 개고기를 판다)’ ‘철면피’ ‘파렴치’ 표현을 썼다면 형법상 모욕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5일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한 송일준 전 광주MBC 사장의 모욕 혐의가 유죄라고 판단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송 전 사장은 2017년 7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철면피 파렴치 양두구육’ ‘간첩조작질 공안검사 출신 변호사’ ‘역시 극우부패세력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써가며 고 전 이사장을 모욕한 혐의로 기소됐다.

방문진은 MBC의 감독기관이다. 송 전 사장은 “공인이라면 비판 내용이 다소 불쾌하더라도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감수해야 한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1심과 2심 모두 유죄로 판단해 벌금 50만원의 선고유예를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송 전 사장 글이 모욕죄로 처벌할 만한 모욕적 표현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말이나 글에 다소 모욕적인 표현이 포함돼 있더라도 자신의 판단과 의견이 타당함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사용됐다거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위법성이 사라진다는 게 기존 대법원 판례다.

대법원은 “사회상규에 위배되는지 여부는 피고인(송 전 사장)과 피해자(고 전 이사장)의 지위와 그 관계, 표현행위를 하게 된 동기, 경위나 배경, 표현의 전체적인 취지와 구체적인 표현방법, 모욕적인 표현의 맥락, 전체적인 내용과의 연관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송 전 사장이 고 전 이사장의 공적 활동과 관련한 의견을 페이스북을 통해 글로 쓰면서 일부 모욕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송 전 사장이 글을 쓸 당시에MBC 경영진과 대립 관계인 MBC PD협회 협회장이었고, 고 전 이사장의 MBC 경영진 비호를 비판하기 위해 글을 썼다는 점을 감안했다.

또 대법원은 ‘양두구육’ ‘철면피’ ‘파렴치’는 정치 영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봤다.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내부 총질’ 텔레그램 문자가 공개됐을 때와 별도 기자회견에서 ‘양두구육’ 표현을 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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