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혼잡경비는 경찰 주업무 아냐”···판사 “법조항 압니까?” 면박

2024.04.29 19:45 입력 강은 기자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기소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던 중 유가족의 항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관 직무집행법 2조 1호가 뭔지 압니까?”(판사)

“(국민의) 생명, 신체….”(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배성중)는 29일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 등 5명의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에 따른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재판에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이같이 질문했다. 김 전 청장이 “경찰의 주된 업무는 혼잡 경비가 아니라 범죄 예방”이라고 거듭 주장하자 재판부가 직접 심문에 나선 것이다. 김 전 청장은 경찰의 ‘윗선’ 책임자로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를 받는 피고인이면서 이날은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전 청장은 이날 법정에서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희생양을 찾지 말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날 재판은 재판부와 김 전 청장의 공방으로 시선이 집중됐다. 재판부는 김 전 청장에게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2조 (1호부터) 7호까지 있는데 중요도 순서로 돼 있다”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 보호가 1호, 범죄 예방은 2호다. 더 중요한 건 신체 보호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김 전 청장은 “그 부분을 도외시한다는 게 아니라 추상적 임무로 돼 있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김 전 청장이 “경찰력이 작용하려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발생해야만 한다”는 주장을 이어가자 재판부는 “사고발생 동영상을 보면 그런 말씀을 못 하실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김 전 청장은 경찰력 배치의 기본 목적이 ‘사고 방지’가 아닌 ‘범죄 예방’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참사 당일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 현장에만 경찰력이 대거 파견된 것은 ‘사고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김 전 청장은 전 용산서 관계자 측 변호인의 신문에서 “설령 (용산서에서 서울청에) 기동대를 요청했다고 하더라도 범죄예방 인력이었을 것”이라며 “기동대의 성격은 범죄 예방이라 기동대 배치가 (이번 사건의) 쟁점이 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에 그 많은 경찰은 어떤 목적으로 나간 건가”라고 물은 것에 대해선 “(집회·시위의) 대오가 깨지면서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이날 김 전 청장은 참사 발생 전 내부 보고를 받은 것과 관련해서도 부실 대응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항변을 이어갔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청장은 서울경찰청 정보부의 ‘핼러윈 데이를 앞둔 분위기 및 부담 요인’ 등 4건의 내부 보고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김 전 청장은 “(처음 받은) 정보보고서 문서 말미에 있는 ‘안전사고’라는 단어 하나로는 어떤 위험성도 전혀 읽을 수 없었다”며 “그 이후 나머지 보고서는 (대책을 촘촘히 마련하라는) 제 지시에 따라 각 경찰 기능에서 보고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19일 기소된 김 전 청장의 재판은 이 전 서장 등 용산서 관계자들과는 별도로 진행 중이다. 김 전 청장은 이날 재판부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희생양을 찾기보다는 합리적인 개선안을 마련하고 그것이 한 단계 사회를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면서 “사고 이후 그 험난한 과정을 견디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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