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이 1000인분 조리…열악한 노동 환경이 만든 ‘부실 급식’

2024.05.10 06:00 입력 김나연 기자

서초구 중학교 ‘구인난’ 조리사 부족하자 반찬 수 줄여

노동 강도·폐암 발병률 높아…전국 학교서 738명 결원

근본적 해법 없이 ‘민간 위탁’ 논의…학생 건강권 ‘위태’

육아카페에 올라온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한 중학교 급식. 육아카페 갈무리

지난달 한 인터넷 육아카페에 밥과 국, 반찬 한 종류가 담긴 식판 사진이 올라오면서 서울 서초구 A중학교의 ‘부실 급식’ 논란이 확산했다. 누리꾼들은 “아이의 심한 장난 아니냐”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실제 A중학교는 급식을 조리할 인력이 부족해 반찬 수를 줄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학교 급식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학생들의 건강권까지 위태롭게 한 사례로 급식노동환경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취재를 종합하면 A중학교는 지난달까지 조리실무사 2명이 전교생 1043명의 급식을 조리했다.

당초 조리실무사 정원은 9명이었지만 구인난으로 필요한 인원을 채우지 못했다.

A중학교는 인력 부족으로 급식을 운영하기 힘들어지자 지난 3월 ‘학교급식 중단 위기에 따른 학부모 긴급 의견 수렴’ 가정통신문을 내기도 했다. A중학교는 ‘개인 도시락 지참’ ‘3찬 운영’ ‘외부 운반급식’ 등의 선택지를 주고, 수요조사 결과에 따라 반찬 수를 4찬에서 3찬으로 줄였다.

A중학교의 조리실무사 구인난이 심했던 것은 식수 인원이 많아 그만큼 노동강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A중학교 학생 수는 지난해 900명대였다가 올해 1000명을 넘겼다. 서울시교육청이 조리실무사 정원을 1명 늘렸으나 채우지 못했다.

A중학교 교장은 “채용되자마자 출근일이 되기도 전에 바로 퇴사하는 분들이 생기면서 인력 부족 문제가 계속 누적돼왔다”며 “노동력을 덜어드리기 위해 교육청으로부터 세척기기 대여비 예산을 받았으나 넉넉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해당 학교가) 식수 인원이 많아 조리량이 많다 보니 선호도가 낮다”며 “학생 수가 적은 학교들도 사람을 많이 구하는 상황이라 그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전국적으로도 급식노동자는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결원이 많다. 학교 급식실은 환기시설이 부족해 조리 중 발생하는 발암물질 ‘조리흄’에 노출돼 폐암 발병률이 높다. 또 급식노동자 기본급은 월 198만6000원으로, 최저임금(206만740원)보다 낮다. 방학 중 임금이 없어 생계유지도 어렵다. 건강 측면에서도, 경제적 측면에서도 노동환경이 열악한 탓에 지난해 4월 기준 전국 학교에는 급식노동자 738명이 결원 상태다. 배정되더라도 6개월 이내 중도퇴사하는 비율이 55.8%로 절반을 넘었다.

수도권 급식실의 노동환경은 더 미흡하다. 급식실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 반지하 급식실을 운영하거나 휴게·환기 시설이 부족한 곳이 많다. 지난해 3월 기준 전국 폐암 의심 급식노동자 338명 중 36.9%에 이르는 125명이 수도권 노동자였다.

서울시교육청은 A중학교의 급식을 민간 업체에 위탁하는 방식을 논의 중이다. 또 조리를 보조할 급식로봇을 도입할 방침이다. 김한올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정책부장은 “당장의 대증적인 해법일 수는 있겠으나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는 없다”며 “1인당 식수 인원 제한 등 뚜렷한 대책이 몇년째 나오지 않아 터질 게 터진 것”이라고 했다.

이번 부실 급식 논란은 교육당국이 급식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보장하지 않아 필요한 인력을 구하지 못하고, 결국 아이들의 건강권에도 악영향을 준 사례다.

이재진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노동안전국장은 “이전부터 전국적으로 결원이나 신규채용 미달률이 높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아이들이 건강한 식단을 먹지 못할 수 있다는 것까지도 예견돼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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