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안팎으로 엿새째 이어진 추모 행렬···“피해자 목소리 외면한 정부·사법부·서울교통공사 책임”

2022.09.19 17:58 입력 2022.09.19 18:37 수정 박하얀 기자    김세훈 기자

서울 중구 신당역 화장실 추모공간에 19일 시민들이 쓴 추모 메시지와헌화한 꽃 등이 놓여 있다. 한수빈 기자

스토킹 살인 사건이 벌어진 현장이자 피해자 추모 공간이 자리잡은 서울지하철 신당역에는 사건 발생 6일째인 19일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경향신문이 이날 찾은 신당역은 가해자에 대한 엄벌부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로 가득찼다. 범행 현장인 신당역 역사 내 여자화장실과 10번 출구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추모객들이 손수 남긴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으로 가득했다. 애도의 메시지가 담긴 조화를 비롯해 커피, 생수, 컵라면 등 피해자에게 전하는 물품도 차곡차곡 쌓였다.

추모객들이 붙여놓은 포스트잇에는 ‘막을 수 있었다 충분히! 피해자가 무엇을 더 해야 했던가’ ‘이 사건은 모든 여성의 사건이다. 대체 얼마나 더 많은 여자가 살해당하는 것을 방관할 것인가’ ‘가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법부가, 국가가, 가부장제가 그를 잃게 했다. 책임지고 해결하라’ ‘일상에서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그만 느끼고 싶습니다’ ‘세상은 그대로이지만 우리가 바뀌었습니다. 피해자와 연대하고 가해자는 처벌받는 사회를 만들어갑시다’ ‘나는 오늘도 우연히 살아남는다’ 등의 메시지들이 적혔다.

이날부터 추모 주간에 돌입한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 소속 동료들 몇몇은 꽃을 들고 찾아왔다. “일면식은 없지만 같은 공사 직원으로서 추모하러 왔다”고 밝힌 공사 직원 김모씨(36)는 “혼자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많고 특히 여성 직원은 야간 근무를 할 때 취객에게 더 많은 폭언·폭행 등 공격 대상이 된다”고 했다. 그는 “이번 사건도 (피해자가) 직장 내 2차 피해를 걱정해 내부적으로 밝히지 못했던 것 아닌가”라며 “가해자를 더 확실히 격리했어야 했다”고 했다.

19일 서울 중구 신당역 화장실 앞 추모 공간에 시민들이 붙인 포스트잇에 적힌 글귀들. 김세훈 기자

신당역 추모공간은 희생자를 낳은 사회를 향한 여성들의 분노와 무력감을 분출하는 현장이기도 했다. 젠더 기반 폭력에서 비롯된 사건의 본질을 외면하는 여성가족부 장관이나 ‘가해자 관점’에서 사건을 언급한 서울시의원 발언 등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청주에서 온 오모씨(27)는 ‘여성과 남성 프레임으로 보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김현숙 여가부 장관의 발언을 두고 “같은 여성으로서 많은 이들이 납득할 수 없는 발언”이라며 “여성 개인에게 있는 의사를 무시한 것”이라고 했다.

대학생 정모씨(26)는 “스토킹처벌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시행 중인데도 여자 화장실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범행이 일어났다는 데에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다.

대학원생 박소연씨(30)는 “사건 전에 스토킹과 불법촬영 과정이 있었다”며 “(가해자) 자신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는 대상을 찾아 감행한 범행”이라고 말했다.

각자 묻어뒀거나 선뜻 말하기 힘들었던 스토킹 피해 경험을 털어놓는 연대의 장이 되기도 했다.

권모씨(31)는 “전 남자친구로부터 ‘너 어디 사는지 아니까 만나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며 “(이번 사건은) 저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토킹했을 때 확실한 페널티(처벌)가 있어야 한다”며 “(피해자로서는) 처벌 강도가 약해 가해자를 계속 보게 될 테니 원만하게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합의나 처벌 불원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청년하다’를 비롯한 2030 청년단체들은 이날 낮 12시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을 위한다던 윤석열 대통령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성폭력·스토킹 범죄에 강력 대응하라”며 “이번 사건의 원인은 피해자 목소리를 외면한 정부, 사법부, 서울교통공사에 있다”고 했다.

전국여성연대와 불꽃페미액션, 진보당, 녹색당 등 단체들도 이날 여가부가 있는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수많은 여성이 피해자를 추모하며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 ‘여성이라서 죽었다’고 외치는데, 여가부 장관은 도대체 누구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인가”라며 “김현숙 장관은 망언에 대해 당장 사과하고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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