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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한 20대 남성이 경남 진주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던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했다.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다. 편의점에서 딸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던 50대 남성은 여성을 돕다가 역시 폭행을 당했고 어깨와 이마, 코, 오른손 등에 골절상을 입었다. 사건 이후 다섯 달이 지난 현재 두 사람은 신체적·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대 여성 A씨는 왼쪽 귀에 이명과 통증을 동반한 난청이 와 평생 보청기를 착용하게 됐고 A씨를 도운 C씨는 직장을 잃고 생활고를 겪고 있다.

20대 남성 B씨가 A씨를 폭행한 이유는 ‘머리가 짧으니 페미니스트’라는 이유였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나는 남성연대인데 페미니스트나 메갈리아는 좀 맞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수상해, 업무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씨에 대해 “초범이지만 비정상적 범행을 저질렀고, 피해자가 고통받고 있다”며 징역 5년을 구형했고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은 오는 9일 1심 선고를 내린다.

경향신문은 선고를 앞둔 7일 피해자 A씨와 C씨를 서면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들은 “성별을 떠나 모든 혐오 범죄 피해자가 법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진정한 사과도 없이 처벌을 피하려고만 하는 가해자가 큰 처벌을 받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아름 기자

이아름 기자

“혐오 범죄 엄정 대응”하겠다 했지만…
‘혐오 범죄’라는 맥락은 고려되지 않아
“응당한 대가 치르도록 엄벌 내려달라”

이 사건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차별 폭행했다는 점에서 혐오나 편견이 동기가 된 ‘혐오 범죄’ 성격이 강하다. 검찰도 이 사건을 “혐오 범죄로 규정하고 유사 사건을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내에는 관련 법규가 없다.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등은 관련 법에 따라 피해자를 명명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지원할 수 있지만 A씨는 폭행 사건의 피해자로 규정되고 ‘혐오 범죄’라는 폭행의 맥락은 고려되지 않는다. A씨는 “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여성 혐오 범죄와 제3의 피해자 지원법을 신설하자는 의견이 반영됐으면 좋겠다”며 “피해자는 도움을 받고, 가해자는 엄벌에 처해지도록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플랫]‘페미’라고 맞았지만 ‘여성폭력’ 지원 받지 못해…숏컷 여성 알바생 폭행 그 후

재판부의 대응이 아쉬운 점도 있었다. A씨는 피고인이 있는 상황에서 “지난달 결심 공판에서 판사님이 피해자가 왔는지 손을 들어보라 하더니, 이름을 언급하며 맞냐고 확인했다. 너무 불편하고 불쾌했다”며 “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언을 요구한 것도 매우 아쉬웠다”고 했다. 그는 “이 사건에는 피해자가 두 명이고 둘 다 큰 후유증을 겪고 있다”며 “구형된 5년 내에서 처벌해야 한다면 심신미약으로 인한 선처 없이, 5년을 꽉 채웠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C씨는 생계 때문에 재판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는 “나 역시 피해자인데, 일 때문에 재판에 참여하기가 어려워 발언 기회를 얻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 제대로 처벌해달라는 호소문을 법원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 당시 골절상으로 4주 입원 진단을 받았고 병원과 법원을 오가다보니 회사에 다니기 어려워져 퇴사했다. 현재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지인이 운영하는 청소업체에서 알바를 하거나 전기일을 하고 있는데 언제 일이 끊길지 몰라 많이 불안하고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두 피해자는 B씨가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처벌을 피하려고 해선 안된다며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C씨는 “피해자들은 여러 후유증으로 고생하는데, 피고인은 제대로 된 사과 전화 한 통 없이 심신미약이라는 핑계로 처벌을 피해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어 울화가 치민다”며 “응당한 대가를 치르도록 엄벌을 내려달라”고 말했다.

B씨의 변호인 측은 지난해 첫 공판을 앞두고 ‘창창한 미래를 생각해달라’며 피해자들에게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A씨는 “B씨 변호사가 집행유예가 나오면 피해자에게 월 20만원씩 보내도록 하겠다고 했다”며 “너무 황당했다. 금액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런 혐오주의 범죄자를 아무 조치 없이 사회에 내보낸다는 게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C씨는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은 없고, 그저 재판부에 ‘합의 노력을 했다’고 보여주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형식적이었다”고 했다.

진주 ‘편의점 숏컷 여성 폭행 사건’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숏컷’을 인증하는 글이 이어졌다. 이아름 기자

진주 ‘편의점 숏컷 여성 폭행 사건’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숏컷’을 인증하는 글이 이어졌다. 이아름 기자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무력했던 자신의 모습”
A씨 “정의의 대가가 생활고라니 너무 속상하다”
C씨 “잘못한 게 없으니 용기 잃지 마시라”

그날 이후 다섯 달이 흘렀지만,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무력했던 자신의 모습”이다. A씨는 C씨에 대한 죄책감이 컸다. 그는 “나를 돕기 위해 뛰어들었던 어른께 죄송하다”며 “그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함께 가해자를 저지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깝고 지금도 죄책감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다시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A씨는 “조금 더 침착할 수 있지 않을까, 멍청하게 휴대폰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적극적으로 나서서 피해자 어른과 힘을 합쳐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후회가 남는다”고 말했다.

C씨는 사건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그냥 피하지 그랬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는 “딸 키우는 아빠다. 무차별적으로 폭행당하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치겠느냐”며 “만일 그때 모른 척 했다가 나중에 더 큰 일이 벌어졌고 사건을 뉴스에서 봤다면 오히려 더 마음이 괴로웠을 것이다. 제가 조금만 더 빨리 도왔더라면 보청기를 끼지 않을 수 있는데 더 빨리 돕지 못한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안부를 묻거나 재판 내용을 공유하는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C씨는 “피해자끼리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범죄 이후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돕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씨는 “당장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병원비, 생활비 등 경제적 지원이 가장 큰 도움이 되겠지만 다시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지속적인 상담이나 자활 프로그램을 지원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씨에 대해서 A씨는 “정의의 대가가 생활고라니 너무나 속상하고 화가 난다”며 “그분이 복직하거나 재취업할 수 있게 관련 기관이 도움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C씨는 A씨에게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에 바라는 게 있다면 재판부가 올바른 판단으로 사회의 경종을 울려 두 번 다시는 이런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며 “피해자 여성이 항상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저에게 미안해하실 필요 없고 잘못한 게 없으니 죄스러워하시지 말고 용기 잃지 마시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A씨는 병원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운동과 독서를 하며 지내고 있다. 최근에는 짧게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있다. 시력이 떨어지면 회복할 수 없듯 청력도 마찬가지다. A씨는 더이상의 청력 저하를 예방하기 위해 보청기를 끼고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그는 “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저를 돕다가 다친 피해자 어른께 가장 큰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돕지 않으셨다면 저의 오늘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연대해 주시는 분들도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제 가족들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했을 겁니다. 덕분에 매일매일 하루씩 버텨내고 이겨내며 살고 있습니다. 절대 지지 않겠습니다.”

▼ 김정화 기자 clea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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