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노조 파괴’ 현대차 임직원 징역형 집유…노동계 “솜방망이”

2019.08.22 21:36 입력 2019.08.22 21:56 수정
권순재·김지환·정대연 기자

법원, 노사관계 개입 원청업체 부당노동행위 ‘첫 유죄’ 판결

유성기업 노조 “재판서 공소사실 부인, 실형 내렸어야” 비판

현대자동차 소속 임직원들이 부품납품업체인 유성기업의 노조파괴에 관여한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의 노사관계에 개입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법원의 유죄 판결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계는 “법원의 집행유예 선고를 이해할 수 없다”며 유감을 표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3단독 홍성욱 판사는 22일 유성기업의 노조파괴에 관여한 혐의(노조법 위반)로 기소된 최모 현대차 구매본부 구동부품개발실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12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홍 판사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황모 현대차 엔진부품개발팀장·강모 현대차 엔진부품개발팀 차장에게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사회봉사 80시간), 권모 현대차 엔진부품개발팀 대리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사회봉사 60시간)을 선고했다.

홍 판사는 “검찰의 공소 내용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며 “피고인들 중 중한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감안해 양형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최씨 등 유죄를 선고받은 현대차 직원들은 “유성기업 노사관계에 관여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결품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유성기업이 제공한 생산 안정화 계획 등을 살펴본 것일 뿐”이라며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씨 등 현대차 임직원 4명은 유성기업의 제2노조 설립 직후인 2011년 9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유성기업 사측으로부터 노조 운영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은 뒤 유성기업에 제2노조 조합원 확대 목표치까지 제시하면서 제1노조(금속노조 산하) 파괴에 관여한 혐의로 2017년 5월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공소장을 보면, 최씨는 제2노조 조합원 가입 속도가 더디자 2011년 9월 부하 직원에게 “신규노조 가입인원이 최근 1주일간 1명도 없는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9월20일까지 220명, 9월30일 250명, 10월10일까지 290명 목표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1명도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강하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또 황씨와 강씨 등은 2011년 9월22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10층 회의실에서 유성기업·창조컨설팅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관련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해 10월8일 유성기업은 “2012년 12월31일까지 유성노조 조합원수가 (총원의) 80% 이상을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취지의 자료를 현대차에 제출했다.

현대차 같은 대기업 원청업체가 부품납품업체의 노조파괴에 개입한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현대차는 “유성기업에 부당노동행위를 지시·공모한 사실이 없다”며 “안정적으로 부품공급을 받기 위해 이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유성기업 측 자료를 받아본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해왔다.

노동계는 이번 판결에 대해 “솜방망이가 아니라 솜사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현대차 직원들은 재판 내내 공소사실에 대해 전면 부인했었다”며 “이들은 반성도 없을뿐더러 피해자들과 합의한 적도 없었는데 법원의 집행유예 선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유성영동지회와 유성기업 범시민대책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현대차가 부품사업체의 노사관계에 개입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처음으로 그 죄를 인정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실형을 내려야 하는 명백한 사건에 대해 집행유예를 내렸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현대차와 유성기업에 대해 “노조파괴 행위를 중단하고 일상적인 노조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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