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환자-되찾은 性, 더 높은 벽

2006.12.31 16:12

지난해 대법원은 성전환자의 호적 성별정정 허가결정을 냈고, 국회에서는 관련 특별법안이 발의됐다. 또 성전환자를 다룬 영화는 물론 케이블 TV채널에서 관련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우리 사회에서 성전환자의 존재감이 널리 자리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성전환자들은 당당히 집밖을 나서지 못한다.

지난해 9월 개봉한 ‘천하장사 마돈나’는 남성의 육체를 갖고 태어났으나 여성의 성정체성을 지향하는 트랜스젠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난해 9월 개봉한 ‘천하장사 마돈나’는 남성의 육체를 갖고 태어났으나 여성의 성정체성을 지향하는 트랜스젠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민번호 탓에=이모씨(44)는 1년전 태국에서 여성이 되는 성전환수술을 받았다. “학사장교로 군복무까지 했어요.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는데, 그 뒤에야 저의 성정체성을 깨닫게 된 거죠. 이혼 뒤 곁에 남은 초등생 아들은 대견스럽게도 저를 ‘엄마’라고 불러줍니다. 법적으로도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어요.”

부모와의 연마저 끊긴 이씨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은 아이뿐이다. 아이는 아빠였던 그를 2년 전쯤부터 엄마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무책임하게 애는 왜 낳았느냐”는 주변의 비난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한 카페를 운영 중인 이씨는 동업자 명의로 업소등록을 했다. 자신의 신분증을 내보이기 싫어서였다.

김모씨(36)도 수술을 생각하고 있다. “5년째 남성호르몬을 투약 중입니다. ‘남자 아닌 남자’로 살아온 동안 뒷자리 2로 시작하는 주민번호는 저에게 ‘빨간 딱지’였어요. ‘용모 단정’이 아니니 취업도 안되고 은행계좌 개설, 휴대전화 구입조차 어려웠죠. 평범한 남자로 살고 싶을 뿐인데….”

생물학적 성과 자신의 성정체성이 서로 다른 성전환자. 국내에는 1,000~3만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씨에 따르면 카페 손님들은 청년에서 60대 이상까지 다양했으며, 특히 아직 생물학적 성을 유지한 채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 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가 지난해 ‘남성으로 태어나 성정체성이 여성인 사람’(MTF) 40명, 반대 경우인 사람(FTM) 38명 등 성전환자 78명을 설문조사해 낸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보고서’에 이들의 처지가 잘 나타난다.

외모 탓으로 욕설·비아냥(65.4%), 성추행(44.9%) 등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차별과 폭력에 대한 대처는 ‘참는다’(37.7%), ‘무시한다’(36.4%) 등이었으며 ‘즉시 항의한다’는 응답은 고작 9.1%였다. 자살충동을 경험한 사람은 80.5%나 됐고, 상당수가 자살시도(50.0%), 자해(45.5%) 등을 했다.

[세상밖 꿈꾸는 사람들] 성전환자-되찾은 性, 더 높은 벽

차별피해를 경찰 등에 고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며(60.3%), 이유는 ‘자신이 드러날까 두려워서’와 ‘별 도움이 안돼서’가 각각 34.1%(복수응답)로 가장 많았다. 응답자의 83.1%는 성별변경을 희망하고 있었다. 호적 상 성별정정에 따른 법적 권리 보장이 이들의 최우선 목표다. 자신의 성정체성과 주민등록번호 상의 성별 불일치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다.

◇희망과 좌절=대법원은 지난해 6월 남성으로 성전환수술을 마친 50대에게 성별정정 허가를 결정했다. 각급 법원 판사의 재량에 맡겨온 성전환자 성별정정 문제에 처음으로 기준이 선 셈이다. 재판부는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고 적시했다.

국가가 나서 성전환자도 사회구성원임을 인정한 이 결정에 고무돼 이후 3개월간 성전환자 26명이 잇따라 성별정정을 신청했다. 2005년 연간 신청건수 18건을 웃도는 수치다.

그러나 대법원은 9월 다시 내놓은 ‘성전환자 성별정정 허가신청 사무처리 지침’에서 상당한 제한조건을 뒀다. 우선 ‘만 20세 이상, 미혼, 무자녀’를 규정한 허가기준이 이씨를 괴롭힌다. 성전환자라는 본인 각성이 없던 시절 결혼해 아이를 낳은 그는 성별정정 기회가 원천 봉쇄된다.

성별정정 신청의 전제조건으로 ‘성전환수술’을 요구한 것 역시 고액의 비용과 부작용 등 현실을 외면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전환할 경우 가슴성형, 난소제거, 성기성형 등의 수술을 받으며 3천만~1억원의 비용이 든다. 실태 보고서에도 수술 부작용을 겪었다는 응답이 43.6%에 달하는 등 후유증에 따른 고통도 많다. 김씨도 “2년전쯤 태국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받은 30대가 귀국 뒤 1개월 만에 부작용으로 숨졌다”고 전했다. 영국은 성전환수술이 없어도 성별변경이 가능하며, 스웨덴·네덜란드 등은 불임수술 등으로 생식능력이 없으면 된다.

민주노동당이 특별법안을 내놓으면서 국면이 다시 반전됐다. 지난해 10월 노회찬 의원 대표발의로 ‘성전환자의 성별변경 등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 법사위에 제출됐다. 법안은 ‘의사 2인 이상의 성전환자 인정, 생식능력이 없을 것, 미혼일 것’ 등을 성별변경 허가 기준으로 제시했다. 성전환수술을 받지 않더라도 생식기관을 제거했거나 오랜 호르몬 투여로 생식능력을 잃은 경우 성별변경이 가능토록 했다. 성전환수술 여부 등 허가 기준을 놓고 이 법안과 대법원 지침이 상충하는 상황이다.

◇인식전환이 중요=전문가들은 인권의 측면에서 성별정정이란 법적 절차와 함께 성전환자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과)는 “국가부터 성전환자를 ‘비정상’ ‘예외인간’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사회전반적 인식이 바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필요에 의해 바꾼다는 점에서 개명과 성별변경은 차이가 없지만 국가는 성전환자의 요구를 기피한다”며 “신청시 전과, 병적, 신용정보 등을 조회시키는 것도 성전환자를 범법자로 예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숙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장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국가가 동성애자, 성전환자 등 소위 ‘비정상’ 가족의 삶에 대해서는 적극적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성전환자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차별을 막기 위한 대책도 요구된다. 성별정체성 상담기구 설치, 학교·공공기관의 인권 교육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민등록번호의 무분별한 이용을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최명애·장관순기자〉

◇ 트랜스젠더는 넓은 의미에서 성전환자를 포함, 다양한 젠더(사회적으로 형성된 성)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성전환자는 트랜스젠더의 하위 개념으로, ‘타고난 생물학적 성(섹스)과 젠더가 일치하지 않아, 상대 성을 얻기 위해 의학적 조치를 받거나 받은 사람’이다. 성전환자 중 육체적으로는 남성이지만 정신적으로 여성의 성정체성을 지향하는 사람을 MTF(Male To Female), 반대의 경우를 FTM(Female To Male)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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