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인구론

태어나니 ‘낀 세대’ 1992년생을 구하라

2019.01.09 20:26 입력 2022.10.27 17:46 수정 박은하 기자

(3)세대 게임을 넘어

채용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면접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1991~1996년 태어난 ‘에코붐 세대’
그중 ‘1992년생’ 인구구조상 ‘낀 세대’
출생 몇년 뒤 IMF 터져 긴 불황 겪고
‘지옥 입시’ 뚫고 졸업하니 ‘취업 지옥’

세대갈등을 얘기할 때 대표적인 젊은 집단이 있다. 구직난으로 신음하는 소위 ‘에코붐 세대’(1991~1996년생)다.

인구가 많은 2차 베이비붐 세대(1968~1974년생)의 자녀 세대로, 에코(메아리)붐 세대라는 별칭이 붙었다. 1981년 86만7409명이던 출생아 수는 이후 내리 감소해 60만명대로 떨어졌다가, 이들이 등장한 1991~1995년 5년 연속 70만명대를 기록했다. 1991~1996년대생들이 태어날 때만 해도 한국사회에 가득 차 있던 낙관적 전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질 좋은 일자리들은 인구감소 속도보다 빠르게 사라지고 한국은 구조적 저성장 사회에 돌입했다. 이런 상황에서 1991년생 대학 졸업자가 배출되면서 청년실업률은 9% 이상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베이비부머 세대가 대규모로 은퇴하며 노인인구의 급증이 예상된다.

취업 연령은 늦어지고 일자리의 질은 나빠지는 반면 취직하면 노인인구 부양 때문에 힘겨워질 것. 1990년대생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진단이다. 기회를 빼앗긴 1990년대생들의 분노가 성·세대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갈등은 에코붐 세대에 대한 집중적 지원으로 예방 가능하다는 진단도 있다.

에코붐 세대는 저성장 국면에서 고령화의 유탄을 맞는 첫 세대가 될 것인가. 에코붐 세대의 분노는 정말 윗세대를 향하고 있을까. 본격적 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청년세대의 고민과 세대갈등 가능성을 살펴봤다.

■ 죽음의 트라이앵글 거쳤는데…죄다 계약직

경기도의 한 공공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정현봄씨(27·가명)는 요즘 직장 분위기에 숨이 막힌다고 전했다. 봄철 정기인사를 앞두고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심사가 이뤄지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200명가량 일하는 곳에서 절반 이상이 계약직이고, 계약직의 70%는 20대들이다. 인사권을 쥔 상사에게 밉보였다가 느닷없이 원하지 않는 부서로 발령 나거나 계약이 해지되는 모습도 제법 봤다.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1992년생인 정씨는 대학에 갈 무렵 번잡하게 바뀐 입시제도가 적용돼 수능, 내신, 논술을 모두 힘겹게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로 ‘죽음의 트라이앵글 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IMF 외환위기가 수습된 이후 7~8%를 오가던 청년(15~29세)실업률은 정씨가 대학 4학년이던 2014년부터 내리 9%를 넘겨 지난해에는 9.5%를 기록했다. 체감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22.8%로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였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뚫고 사회에 나왔는데 일자리 전망이 꽉 막힌 것이다.

정씨는 “어릴 적부터 ‘청년실업 40만 시대’ 같은 말을 늘 듣고 자랐다. 취업하기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는데, 대부분 계약직 일자리뿐이고 친구들 대부분 계약직”이며 “회사에서 정규직은 대부분 40대 이상이다. 불공평한 느낌마저 든다”고 전했다.

취업을 손쉽게 했던 윗세대가 ‘1992년생’들을 계속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일까. 정씨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직장에서의 상하관계로만 보면 세대갈등이지만 우리 가족을 보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중소 무역업체에 다니던 정씨의 아버지는 IMF 외환위기 때 잠시 해고됐다 재취업했다. 어머니가 교사라서 어려운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두 분이 등록금을 대줘서 대학을 무사히 졸업했다. 정씨는 “불안했던 어른들의 모습을 봐 왔기에 나는 공공기관에서 어떻게든 버텨서 정규직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20대 비정규직 비율은 32.3%로 30대(21%)나 40대(25%)보다 월등히 높다. 그러나 50대 비정규직 비율(34.2%)은 20대보다도 높고, 60대 비정규직 비율은 67.9%로 치솟는다. 30~40대의 고용률은 높다. 30대 남성의 경우 90%에 달한다. 그러나 2018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55~64세 767만명 가운데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둘 당시 평균 연령은 49.1세(남성 51.4세, 여성 47.1세)에 불과했다. 실질적으로 은퇴 연령은 72.9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65~79세 고령자의 직업적 분포를 보면 단순노무 종사자가 36.1%로 가장 많았다. 소위 취업하기 쉬웠던 세대도 30대 장시간 노동을 하다 40대 후반에 안정된 직장을 일찍 그만두고 50대에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하며 노인이 되어서까지 일하는 패턴이 고착화된 것이다.

■ 한 번 트랙 올라타지 못하면 캄캄한 미래

에코붐 세대들이 느끼는 미래는 불안하다. 김현수씨(28)는 지난해 3월 첫 취업을 한 이래 직장을 1년에 4차례 옮겼다. 모두 10명 이하의 소규모 회사에서 광고디자인 일을 했다. 180만원 남짓한 월급에 60만원에 달하는 방세와 건강보험료 등을 내고 나면 생활은 늘 빠듯하다. 이직도 잦고, 4대 보험 없이 연봉제로 계약해 국민연금 가입은 엄두도 못 낸다.

김씨는 “졸업 후 빨리 등록금 빚을 갚고 싶었고, 워낙 취업이 어렵다고 하니 되는 대로 취업을 했다. 막상 일을 해보니 더 좋은 직장에 도전하고 싶어졌지만 비용도 걱정되고, 있는 직장마저 없어질까봐 불안해 또 되는 대로 취업하는 걸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만고만한 직장 사이에서 이직이 잦아질수록 ‘한 곳에서 못 버티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만 덧입혀지는 것 같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인가 걱정스럽다.

고용난 원인, 질 좋은 일자리 감소인데
청년·기성세대 간 갈등 모는 건 ‘잘못’
청년들이 버틸 수 있는 지원 더 늘려야

‘1992년생’들은 인구구조상 ‘낀 세대’이기도 하다. 1992년 한국의 출생아 수는 73만678명으로 9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1990년대 전반생들은 1980년대 후반생보다 인구가 많다. 전반적으로 저출산 추세가 계속됐지만 일시적으로 인구가 증가한 세대이다. 2014년 이후 청년실업률이 치솟은 이유는 이 같은 인구구조의 영향도 일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2026년쯤에는 극심한 취업난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2002년 이후 출생아 수가 50만명 아래로 급감한 데다,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생산가능 인구가 급감하고 단카이세대(1947~1949년생)가 2010년부터 은퇴에 들어가면서, 2003년 9%에 달하던 청년실업률이 지난해 4.6%까지 떨어졌다.

인구구조의 변화로 상황이 마냥 좋아질 것이라고 낙관할 수 없다. 일본에서 청년실업이 극심했던 2000년대에 단기 아르바이트로 일을 시작했던 프리터들은 40대가 된 지금도 좋은 일자리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에서 원하는 경험이나 경력을 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혼과 출산에도 소극적이라 고령 빈곤층이 될 위험이 높다고도 한다. 한국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30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유독 타격을 입었다”며 “이들 상당수는 IMF 외환위기 시절 합격했으나 채용이 취소되는 일 등을 겪으며 비정규직으로 20대 첫 커리어를 내디디면서, 소위 ‘좋은 일자리’에 안착하지 못하고 부유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대책이 없을 때 에코붐 세대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에코붐 세대의 취업난은 사회갈등의 불씨로도 여겨진다. 최근 가장 고용상황이 악화된 집단은 20대 남성이다. 20대 남성 고용률은 2000년 66.2%에서 2018년 56.1%로 떨어졌다. 성·연령별로 봤을 때 고용률이 가장 크게 감소한 집단이 20대 남성이다. 20대 여성 고용률은 같은 기간 54.9%에서 59.6%로 올랐다. ‘된장녀’란 조어가 나왔던 2005년 20대 남녀 고용률이 역전됐다. 하지만 여성 고용률은 30대부터 급감한다. 지난해 30대 여성 고용률은 60.7%로 30대 남성(89.7%)을 크게 밑돈다. 소득주도성장특위 특별위원인 신현호 경제평론가는 “20대 고용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높지만 30대 이후 여성이 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컨설팅 등 연봉이 높은 고급 일자리 분야에선 여성 채용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전했다. 현재 20대 남녀 간 극심한 젠더 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이 같은 고용현실이 꼽힌다.

■ ‘부글부글 청년’ 이용 세대 게임, 답 아니다

에코붐 세대가 처한 현실의 원인을 ‘세대갈등’에서 찾는 시각이 있다. 저성장 국면에서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와의 일자리 경쟁에서 패해 극심한 실업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노동자의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극심한 청년실업을 이유로 들었다.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무원연금 개혁에 맞춰 국민연금도 덜 받는 방향으로 개편을 추진하면서 반발여론이 일자 “세대 간 도적질”이라고 표현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7월 20대 비정규직이 줄어드는 동안 50대 정규직 비율이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비정규직 비율 자체는 50대가 20대보다 높지만, 50대 정규직 증가가 20대 비정규직 감소의 원인인 것처럼 들리는 대목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같은 접근을 ‘세대 게임’이라고 불렀다.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사회문제를 특정 세대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세대 간 갈등을 부추겨 진짜 원인과 해법을 가린다는 의미다. 전 교수는 “노인세대의 연금지급을 위해 청년세대가 지금 세금을 내는 것을 세대착취인 것처럼 언급하지만, 청년세대가 노인세대가 예전에 낸 세금으로 공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은 은폐한다”고 말했다. 세금과 가족 간 지원을 매개로 한 세대 간 연대의 해법이 있음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며, 공공정책을 추진하는 당사자들의 책임을 면제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세대담론이 부각되는 까닭은 청년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 고용이 불안정하거나 근로빈곤을 겪는 청년은 전체 청년의 3분의 1가량(32.6%)이라는 수치가 말해준다. 청년을 위한 지원도 적다. 2018년 아동·청소년 보건복지 예산 총액은 약 1조6779억원이다. 노인 보건복지 예산 총액은 11조7677억원으로 아동·청소년 예산에 비해 10배 넘게 많다. 그러나 노인빈곤율(46%)이 말해주는 것처럼 노인복지 예산조차도 충분하지 않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고령화가 진행되면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재정의 사이즈를 늘려야 하고 국민소득도 늘었기 때문에 늘리는 것도 가능한데, 세대갈등보다는 대상이 노인이든 청년이든 재정지출을 낭비라고 보는 시선이 더 근본적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에코붐 세대의 취업난은 외환위기 이후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질 좋은 일자리의 숫자가 더 급격하게 줄어들어서 생겨났다. 홍민기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자리 구조가 불리하게 바뀐 데다가 산업구조조정까지 진행되고 있어 청년세대의 고용 문제는 단기적으로 풀리기 어렵다”며 “청년들이 버틸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유석 한림대 교수는 <세대 간 연대와 갈등의 풍경>에서 “공적 투자를 통한 연대와 질 좋은 일자리를 주는 접근법으로 청년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목차

1. 인구 감소, 위기인가 기회인가
2. 다 인구 때문일까
3. 세대 게임을 넘어
4. 우리 모두는 일할 수 있을까
5. 아이 키우기에 정말 필요한 것은
6. 지방은 지속 가능한가
7. 우리는 이방인을 품을 수 있을까
8. 돌봄은 어떻게 재구성될까


원문기사 보기
상단으로 이동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경향신문 뉴스 앱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