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이날’

10월14일 할머니와 어머니 버리고 떠난 비정한 한국인···‘라이따이한’의 눈물

2019.10.14 00:15 입력 2019.10.14 00:40 수정 노정연 기자

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9년 10월14일자 경향신문 23면.

■1999년 10월14일 ‘떠올리면 눈물뿐인 코리아’

지난해 3월 베트남을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과 베트남 양국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한 유감의 뜻을 표했습니다. 한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과정에서 빚어진 민간인 희생에 대한 사과였습니다.

1965년 한국은 베트남전에 지상군을 파병했습니다. 총 32만명이 참전해 5099명의 사망자와 1만1232명의 부상자, 15만9132명의 고엽제 피해자가 발생했습니다. 그 대가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참전 수당과 차관을 받았습니다. 10년의 참전 기간에 한국의 국민총생산(GNP)은 5배나 늘었습니다.

1973년 한국군 철수 이후 베트남은 기억에서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눈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1999년 10월14일자 경향신문 23면.

‘서울 중앙병원 소아과 병동. 병실에 누워있는 두살배기 손녀 방울이를 바라보는 외할머니 윈 티 팟씨(49)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1999년 경향신문 실린 라이따이한(한국인 남자와 베트남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가족에 대한 기사입니다.

방울이는 뇌성마비와 간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아버지의 나라를 찾았습니다.

베트남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라이따이한. 윈씨의 딸 미추(18)가 2년 전 베트남에 사업차왔던 50대 한국인 채모씨와의 사이에 낳은 아이입니다.

손녀와 함께 온 윈씨는 한국과의 모진 인연을 떠올렸습니다.

윈씨는 베트남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한국군에 의해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수십명의 사람들이 학살된, 아픈 기억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윈씨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때 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이모씨를 만나 1년여간 동거하며 딸(응엔 티 뉴항·한국이름 이근순)을 낳았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지만 이씨는 “계약기간이 끝났다”며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이씨가 떠난 뒤 윈씨는 라이따이한을 혼자 키워야만 했습니다.

그 뒤 윈씨는 중국인을 만나 결혼한 윈씨는 둘째딸 미추를 낳았습니다.

미추는 엄마보다 더 어린 나이에 한국인 채씨를 만났습니다.

미추가 방울이를 낳은 것은 중학교 3학년때였습니다. 학교도 그만둬야했습니다.

윈씨는 졸지에 미혼모가 된 딸의 처치를 알고 채씨의 여권을 뺏어 호치민시 공안청에 고발을 했습니다. 그러나 채씨는 한국영사관에 여권을 분실한 것으로 신고하고 베트남을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윈씨는 “중학교 3학년이던 딸 애를 그렇게 만들어놓고도 지금껏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며 원망했습니다.

중국인이 남편과 이혼한 뒤 거리에서 옷을 팔며 생활해 오던 그는 한국선교사회의 도움을 받아 아픈 방울이를 간호하던 상황이었습니다. 한국 비영리단체와 중앙병원의 도움으로 한국을 찾은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요?

2016년 7월2일자 경향신문 26면

▶관련기사 [여적]대통령의 월남패망론

베트남 전쟁 때 태어난 라이따이한의 숫자는 최소 5000명에서 최대 3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적대국 군인의 자식이라는 사회적 억압때문에 신분노출을 기피한 이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입니다.

전쟁이 끝난지 50년이 지났지만 베트남에는 여전히 한국인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산업화가 이루어지며 사업차 또는 관광차 베트남을 방문한 한국인 남성들에 의해 태어난 ‘뉴 라이따이한’이 그들입니다.

베트남뿐만이 아닙니다.

필리핀에서 역시 수많은 ‘코피노’(한국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떠난 한국인 아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0년 전 기사가 어제 본 뉴스처럼 생생한 것은, 부끄러운 역사가 지금도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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