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시간이 많아 슬픈 학교 경비원

2019.12.07 11:47 입력 2019.12.07 11:50 수정

16시간이나 상주해도 근무는 6시간만 인정… 나머지는 휴게시간으로 처리

“학교에서 이래도 되나요?”

발단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부산의 한 고교 격일제 경비원(당직전담원) 채용공고였다. 하루종일 학교에 머무는 데 휴게시간이 근무시간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지난 11월 25일 이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고를 보면, 평일 ‘상주시간’은 오후 4시 20분부터 다음날 오전 8시 20분까지 총 16시간이다. 임금이 제공되는 근무시간은 6시간뿐. 나머지 10시간은 휴식(수면)시간이다. 주말·공휴일은 오전 8시 20분부터 다음 날 8시 20분까지 24시간을 머문다. 근무시간은 9시간. 휴식시간은 15시간에 달한다.

이 학교의 격일제 경비원은 한 달 86만84000원의 기본급을 받는다. 최저임금 8350원, 월평균 근무시간 104시간으로 계산한 것이다. 달마다 급식비 6만5000원이 따로 나온다. 1년 넘게 일하면 처우개선비 명목으로 명절휴가비(연 50만원)·맞춤형복지비(연 20만원) 등을 제공한다. 경비원 직종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처우가 너무 열악한 게 아니냐는 반응이 쏟아졌다.

서울 시내 한 학교의 감시직 노동자가 야간 순찰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서울 시내 한 학교의 감시직 노동자가 야간 순찰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감시·단속직이라서 그래요

비단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의 학교 경비원 대다수는 비슷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일터에 오래 머물고도 근무시간이 턱없이 적은 이유는 이들이 ‘감시·단속적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감시업무를 주업무로 하며 상태적으로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적은 업무에 종사하는 자’ 또는 ‘근로가 간헐적·단속적으로 이루어져 휴게시간·대기시간이 많은 업무에 종사하는 자’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학교 당직노동자와 아파트 경비원이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이 나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휴게시간, 휴일에 대한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다.

휴게시간은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 도중에 사용자의 지휘·명령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시간이라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2016년 고용노동부가 펴낸 ‘감시·단속적 근로자의 근로·휴게시간 구분에 관한 가이드라인’에는 “근로계약 등에 휴게시간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특정 근무 장소를 벗어날 수 없고 근무 장소를 벗어날 시 임금 감액이나 제재 등 규정이 있는 등 대기가 강제되는 시간”은 휴게시간으로 볼 수 없다고 나온다. 또 휴게시간으로 인정되는 경우로 “일정 구역을 벗어날 수 없는 등 다소 장소적 제약이 있더라도 사용자의 지휘·감독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한 시간”을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면서 전국의 시·도교육청은 지난해 9월 전후로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하던 학교 경비원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했다. 당시 교육청이 각 학교에 안내한 공문을 보면 “휴게시간은 자리를 비우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정도의 휴식이 가능한 시간. 휴게시간 미준수는 감시·단속적 근로 ‘미승인’ 주요 사유”라고 안내했다.

현장에 와보신다면

부산교육청 관계자는 논란이 된 채용공고문을 두고 “‘상주시간’이라는 표현이 잘못 나갔다. 휴게시간은 집에 가서 자고 와도 되도록 자유롭게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논란이 된 부분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전국의 학교에서 처한 구조적 문제인 만큼 논의가 필요한 것 같다”며 “시교육청에서도 변화를 줄 수 있는 방법을 포괄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고 했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격일제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60대 ㄱ씨는 할 말이 많다. 그는 평일 오후 4시 반에 출근해 다음 날 아침 8시 반에 퇴근한다. 학교에 머무는 시간은 16시간. 오후 6시 반부터 7시 반까지 한 시간, 무인경비장치를 가동하는 밤 9시 반부터 다음 날 새벽 6시 반까지 9시간, 총 10시간이 휴게시간이다. 주말에는 오전 8시부터 24시간 학교에 머물고 9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받는다. 오전 8시부터 1시간 근무하고 9시부터 한 시간 휴식, 10시부터 1시간 근무하고 11시부터 1시간 휴식을 취하는 식이다.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 30분까지 11시간 30분이 휴게시간으로 묶여 있다. 한 달 임금은 약 87만원이다.

“교육청에선 아침 6시 30분에 ‘세콤(보안시스템)’을 풀라는데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조기축구나 운동하러 많이 오고 (학생들이 먹는) 우유 배달도 와요. 제시간에 풀면 항의가 심해서 지시대로 할 수 없어요. 5시에 세콤을 풀고, 운동장 문 열어주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감시합니다. 겨울 되면 방화셔터 오·작동이 많아서 밤에 누워 있다가도 사이렌이 울리면 조치하죠. 저수조가 지하실에 있으면 동파 위험이 덜한데, 오래된 학교는 저수조가 옥상에 있어요. 화장실마다 다니면서 물 졸졸졸 틀어줘야 하고, 동파되면 밸브 찾아서 막고 물 흘러내리는 거 닦고 합니다. 그냥 놔두고 볼 순 없는 문제 아닙니까.”

ㄱ씨는 “‘휴게시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교육청 측의 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보안시스템 장치와 수신기가 전부 당직실에 있어요. 그걸 세팅하고 나면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학교 측에서도 주말에 운동장·강당을 개방하고 수시로 교사와 학생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학교를 비우지 못하게 하고요. (교육청이) 모르면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니까 답답합니다.” 학교에 머무는 시간의 반이라도 근무시간으로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권우상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부산지부 조직국장은 “상주 여부보다는 16시간 중 단지 6시간만 근무로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불합리하다. 예산에 시간을 맞춰놓은 것”이라며 “전일제의 경우 임금이 조금 더 높다는 이유로 격일제보다 근무시간을 평일 30분, 주말 2시간을 줄여놨다”고 지적했다. 김계호 서울지부 조직국장도 “서울에선 평일 근무시간이 4시간인 곳도 있다. 교섭에서 ‘8시간은 인정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수없이 이야기해도 안 통한다. 교육청 측에선 ‘무인 경비로 바꾸겠다’고 맞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법에서 벗어나지 않아도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의 이다솜 노무사는 “자유로운 휴식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에서 이를 입증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입증은 노동자 몫이다 보니 휴게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이런 계약이 반복 체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노무사는 “근로계약서상 근무시간이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실제 업무에 필요한 시간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인원 충원 등 오랜 시간 학교에 머물지 않아도 되는 방법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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