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에 진심인 사람들

“동물성 단백질의 신화를 깨야 함께 건강할 수 있다”

2021.07.07 17:14 입력 2021.07.07 23:09 수정 최미랑 기자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사바랭이 (1825)에 쓴 문장입니다. ‘먹을 것’ 이야기는 단순히 개인의 식탁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산업, 농업, 경제부터 시작해 문화, 환경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돼 있습니다. 물론 맛있는 음식이 주는 즐거움도 결코 빼놓을 수 없죠. [먹.진.사]에서는 ‘장르’를 불문하고 ‘먹을 것에 진심인 사람들’을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의철 유성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장(44)은 작업장의 노동자들을 하루 많게는 100명까지 검진하고 상담한다. 노동자가 아픈 이유를 작업 환경에서 찾는 게 직업환경의의 중요한 임무다. 환자가 증상을 호소하면 어떤 환경에 노출됐고 어떤 물질을 다루는지 등을 살펴 원인을 분석한다.

그가 최근 노동자들에게 가장 많이 묻는 것은 ‘평소 무엇을 먹는지’ 이다. “2018년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업무와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의 39%가 뇌심혈관질환으로 사망했어요. 몸에 쌓인 지방과 그에 따른 문제로 죽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뜻이거든요. 1970년대 한국인도 어마어마하게 장시간 노동을 많이 했지만 이런 문제로 죽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이의철 센터장은 최근 집에서 맛있게 먹은 자연식물식 요리로 ‘동치미 메밀국수’를 꼽았다. 동치미 국물에 삶은 메밀국수를 말면 되니 조리법도 간단한 편이다. 이의철 센터장 제공

노동 시간을 줄이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여전히 근본적으로 중요한 일이지만, 식습관이라는 일상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는 노동자들을 건강하게 할 수 없다는 게 이 센터장의 신념이다. 이 센터장은 특히 “고기가 몸에 좋다는 신화를 깨야 다 같이 건강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직장인들을 상담하다 보면 ‘밥은 탄수화물이고 고기는 단백질’이라는 식의 잘못된 이분법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생선까지 포함해서, 동물성 단백질이 각종 질병 유발을 촉진한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하고요. 실제로 완전 채식으로 생활해도 필요한 열량만큼 골고루 먹으면 단백질이 부족할 일은 없습니다.”

온라인 쇼핑과 음식 배달이 보편화되면서 육식을 권하는 마케팅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 가족은 고기 없으면 밥을 안 먹어요’, ‘갓잡은 삼겹살’, ‘고기만이 나라에서 허락하는 유일한 마약이다’…. 휴대전화 어플에는 이런 광고 문구가 수시로 날아든다.

반세기 전까지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했던 고기와 생선, 우유, 달걀, 식용유, 설탕은 지금은 식탁 위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이 센터장은 이 6가지를 식단에서 배제하고 통곡물과 채소, 과일 위주로 먹는 ‘자연식물식’을 권한다.

자연식물식이라고 하면 곡식을 생으로 씹어먹는다든가 채소를 날로 먹는 섭식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뜻은 아니다. “어렵게 생각할 게 없어요. 흰쌀밥은 현미와 잡곡밥으로 바꾸고, 돌솥비빔밥에서 계란과 참기름을 빼는 식으로 응용하면 됩니다.” 미국 생활습관의학회(ACLM)가 권하는 ‘식물성 재료 기반 자연식품 식단(whole-food, plant based diet)’이 자연식물식에 해당한다.

대전 유성선병원 구내식당는 이의철 센터장의 제안으로 ‘비건’ 메뉴가 도입됐다. 사진은 콩나물밥. 이 센터장은 “맛과 영양이 두루 훌륭한데도 ‘비건’이라는 이름만 보고 맛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 아쉽다”고 했다. 최미랑 기자

식단을 바꾸는 것은 기후위기 시대 전 세계가 직면한 공동의 과제이기도 하다.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축산업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전 기후·환경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주장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2016년부터 정책적으로 자국민들에게 육류 및 어류 섭취 줄이기를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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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센터장은 오로지 개인의 건강 문제만 놓고 볼 때도 채식이 나은 선택이라고 본다. 다만 방식이 중요하다. “동물의 고통과 기후위기 문제에 공감해 채식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채식을 한다고 무조건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에요.” 그는 윤리적 동기로 채식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달고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을 줄이는 노력까지 병행해야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채식을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국내 채식 인구가 늘고 관련 논의가 활발해지자 윤리적 채식이 ‘부르주아적’이란 비판도 나온다. 비싼 돈을 내고 유기농·비건 제품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처지를 외면하고 비판하는 게 오히려 비윤리적이란 얘기다. ‘닭고기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좋은 단백질 섭취원’이라는 주장도 흔히 나온다.

이 센터장은 이렇게 되묻는다. “그렇다면 경제력이 약한 사람들은 계속 몸에 해로운 식습관을 유지하며 살아야 하나요? 항생제 범벅이 된 닭고기의 해로움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최저임금이 오르면 맛있는 치킨을 더 자주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온당한가요?”

앞서 지난 2월 그는 한국인의 식단 변화, 동물성 재료 섭취와 만성질환의 상관관계, 자연식물식 실천 방법 등을 담은 책 <조금씩, 천천히, 자연식물식>을 펴냈다. 식단을 짤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특정 영양소를 추가 섭취하고 싶을 때 어떤 식재료를 쓰면 되는지를 상세하게 안내했다. 최근 출간된 <청소년 생활습관의학 안내서> 번역에도 참여했다.

이 센터장 자신은 2011년부터 채식을 하고 있다. “현미밥에 채소 반찬 위주로 식단을 바꾼 후 많이 일해도 덜 피곤하고 나잇살이라고만 생각했던 뱃살이 확 줄어 신기했다”고 한다.

지난달 18일 대전 유성구의 유성선병원 연구실에서 이 센터장과 만나 식습관 개선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쉽게 건강한 식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식생활의 인프라를 바꿔 나가려면 ‘동물성 재료가 맛있고 건강하다’는 오해를 깨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의철 유성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장이 지난달 18일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최미랑 기자

- 어떻게 먹어야 잘 먹는 것일까. 이 문제를 다들 많이 고민하는 것 같은데, 참 답을 찾기 어려워요. 전문가마다 말이 다 다르니 ‘그냥 입맛대로 골고루 먹으면 되겠지’ 하는 경우도 있고요.

“음식과 영양에 대한 논의가 너무 얕아진 것 같아 아쉬워요. 미디어에서도 음식을 여가나 유흥을 위한 수단으로만 조명하거나, 아니면 ‘이것을 먹으면 몸에 좋다’ 라고 상품을 홍보하는 식의 내용만 주로 다루잖아요.”

- 최근에 사업장에 다니시면서 특히 건강이 걱정되는 이들이 혹시 있었나요?

“청소년과 사회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청년들이요. 최근 대전의 한 고등학교 신입생 건강검진을 했는데, 고도비만 우려가 있는 고1 학생이 10%를 넘었어요. 또 군산에 있는 한 자동차 회사의 직원 건강검진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30대 직원(1986년~1990년 출생자) 10명 중 1명이 고도비만 우려가 있는 걸로 나오더라고요. 착잡했어요. 이 두 곳의 데이터가 세대를 대표한다고 볼 수야 없겠지만, 1980년대 후반 이후 출생자들의 식습관은 이전과 기본값이 달라진 게 아닐까 싶어요.”

- 육류와 가공식품 등에 더 많이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겠네요.

“충북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 결과를 보면, 1998년에는 섭취하는 전체 음식 중에 동물성 식품이 18.5%(중량 기준)였거든요. 같은 조사를 2008년에 해보니 동물성 식품 비중이 23.4%로 나왔어요. 살펴보니 곡류 섭취가 딱 그만큼 줄었더라고요. 이전에 곡물로 먹던 것을 고기, 생선, 달걀로 먹는다고 봐야겠죠. 설탕 섭취도 꽤 늘었고요.”

- 중장년의 노동자들의 성인병 얘기를 하실 것 같았는데 청년들 얘기를 먼저 하신 게 의외예요.

“채용 신체검사를 받으러 오는 친구들을 볼 때 정말 마음이 안 좋아요. 아직 어린데 고혈압, 고지혈증이 있고, 당뇨 전 단계이거나 이미 당뇨가 있고, 지방간이 심하고. 검진 결과를 내놓으면서 이분들 앞날에 재를 뿌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살아갈 날이 한참 많은데 이렇게 몸이 안 좋으면 여러 기회를 다 잃게 돼요. 취업 기회를 잃게 되고, 일을 하면서도 업무에서 좋은 성과를 낼 기회를 뺏기게 되고요. 아토피나 건선, 자가면역성 질환을 가진 젊은 분들은 일에 아주 지장이 크거든요.”

- 식습관을 바꾸라고 조언하시나요?

“채식을 하고 가공식품을 끊으면 크게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아요. 어린 나이에 만성질환 진단을 받으면 ‘어차피 나을 수 없다’ ‘평생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으며 살아야 한다’ 생각하고 포기하는 분들도 있는데, 음식을 바꾸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회가 날 때마다 학생, 교사, 학부모 등이 모인 지역공동체에 나가서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해요.”

지난달 19일 이의철 센터장이 지역사회 시민모임에서 건강한 식습관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이의철 센터장 제공

- 같은 걸 먹어도 어떤 사람은 건강한데, 어떤 사람은 병에 걸리기도 하잖아요.

“유전적 요인이 다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편차가 큽니다. 그렇지만 내가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잖아요? 나쁜 식습관을 가지게 되면 확률적으로 질 게 뻔한 쪽에 베팅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봐요.”

이 센터장은 책에서 지난 50년 한국인의 식단 변화를 주목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단백질을 늘려야 한다’고 믿는데, 데이터가 드러내는 바는 이와 다르다.

한국인은 1974년에 하루 771g을 먹던 탄수화물을 2011년에는 464g만 먹었다. 40%나 감소한 것이다. 반면 육류 섭취는 15배가량 늘었다. 1961년에 한국인이 먹은 고기는 12.2g이었는데 2011년에는 180g이 되었다. 생선 및 어패류도 36.2g에서 164g으로 5배 늘었다. 식용유는 어떨까? 1961년 하루 평균 1.2g에서 2011년 59.9g으로 무려 42배나 증가했다. 설탕은 20배, 계란과 알류는 8배, 유제품은 48배 증가했다.

- 책에서 1970년대와 현재의 비교를 많이 하셨는데요. 요즘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크론병 등은 센터장님이 의대에서 수업을 들을 때만 해도 “미국 사례이고 실제로 진료실에서 이런 환자를 볼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으셨다고요.

“1970년대 상황을 이상화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비만과 성인병, 자가면역질환, 어린이들의 성조숙증이 그때는 아주 드물었어요.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약으로 관리하는 고혈압의 경우 1970년대만 하더라도 ‘고혈압증’이라고 부를 만큼 새로운 현상이었거든요.”

- 고기와 우유, 생선이 몸에 좋다는 통념이 잘못됐다고 지적하셨는데요.

“‘우유가 뼈 건강에 좋다’고 믿는 분들이 많은데, 우유 섭취가 가장 빠르게 늘어난 1990년대에 한국인의 고관절 골절도 가장 많이 늘었어요. 우유는 워낙 생리 활성이 강한 물질이기 때문에 약을 쓰듯 꼭 필요한 사람한테 쓸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걸 일상적으로 매일 마시는 건 다른 문제예요. 생선과 고기도 마찬가지로 과거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먹던 음식이 아닙니다. 안 먹던 것들을 많이 먹게 되면서 과거에 없던 질병이 현대에 만연한 거라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크론병의 경우에는 불과 20년 사이에 100배 넘게 늘어났어요. ‘밥’은 지금보다 훨씬 많이 먹었는데 비만은 드물었죠. ”

고기를 먹지 않으면 단백질을 무엇으로 섭취할까. 채식에 대해 가장 흔히 나오는 질문 중 하나다.

“안타깝게도 동물성 단백질은 식물성 단백질에 비해 인간의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 구성이 비슷해 대사 속도가 빠르고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촉진하는 경향이 있다. (...) 이런 특성이 성장기 아이들을 빨리 크게 하고 체중을 빨리 증가시켜 과거에는 장점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암세포 성장 및 세포 분열, 인슐린저항성, 비만,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지방간, 심혈관질환 등을 촉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마디로, 동물성 단백질은 최대한 먹지 않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다.”(<조금씩, 천천히, 자연식물식> 120쪽)

- 자연식물식의 이상적 탄수화물:단백질:지방 칼로리 비율을 80:10:10으로 제시하셨는데요. 탄수화물이 비중이 이렇게 크다니 깜짝 놀랐어요. 보통 식습관을 개선할 때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을 늘리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흔한데요.

“단백질에 대한 오해가 너무 널리 퍼져있어요. 일단 ‘단백질은 고기로 섭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굉장히 큰 오해입니다. 식물성 식품에도 충분한 양의 단백질이 존재한단 사실을 학교에서 얘기해주지 않거든요. 계란, 우유, 고기는 단백질, 밥과 빵은 탄수화물. 이런 식으로 잘못된 이분법을 너무 오래 가르쳤어요. 모든 식물성 식품에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이 다 들어있어요. 그런데도 ‘채소가 완전식품이다’라고는 가르치지 않죠.

둘째, 많이 먹는다고 좋은 게 결코 아니거든요. 너무 많이 먹으면 여러 부작용이 와요. 요산, 통풍, 콜레스테롤이 높아지고, 혈압도 높아지고…. 인슐린저항성과 당뇨병을 초래할 수 있어요.

현미, 보리, 밀, 감자, 옥수수 같은 녹말 식품과 시금치, 브로콜리 등 채소, 과일, 콩류 등을 골고루 필요한 칼로리만큼 섭취하면 하루 필요량을 쉽게 채울 수 있어요. 밀이나 옥수수는 일부 필수아미노산이 부족한 게 사실인데요. 우리가 옥수수나 밀가루만 먹고사는 건 아니니까 별 문제가 되지 않고요."

세계보건기구는 하루에 체중 1kg당 0.83g의 단백질을 섭취할 것을 권장한다. (단, 체중을 대입할 때는 본인의 키에 대한 이상적 체중을 대입하는 것이 좋다.) 체중 70kg의 성인이라면 58g의 단백질이 필요하다. 단백질 58g은 단일 식재료로 치면 볶은 콩 145g, 두부 600g 정도에서 얻을 수 있는 양이다. 현미밥 3공기를 먹으면 단백질을 20g정도 섭취할 수 있다.

이 센터장은 책의 한 장에 ‘탄수화물은 억울하다’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탄수화물에 관한 흔한 오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탄수화물에 대한 가장 잘못된 주장은 ‘탄수화물은 당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탄수화물은 설탕이나 마찬가지다’라는 것이다. 이는 ‘도자기는 흙으로 빚어졌기 때문에 모든 도자기는 모양이나 크기에 상관없이 흙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흙이 집을 더럽히지 못하게 도자기를 죄다 갖다 버리는 게 좋다’라는 주장과 큰 차이가 없다.”(109쪽)

“탄수화물을 분해하고 가공해서 단맛을 즉각적으로 느끼도록 만든 ‘당류’ 형태로 탄수화물을 섭취하지 않고 통곡물, 과일, 채소, 콩류(특히 대두류 이외의 콩류) 등 자연상태의 식물성 식품 형태로 섭취하면 탄수화물로 인한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탄수화물을 많이 먹을수록 건강해진다.”(112쪽)

이 센터장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백미 대신 현미밥을 먹을 것을 계속해서 권해 왔다. 몇 군데 사업장에 제안해 단체 급식 밥에 현미밥을 도입하도록 한 적도 있다. 그중 일부 사업장에서는 ‘맛이 없다’는 이유로 현미밥이 외면을 받아 결국 다시 백미만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 센터장은 현장 노동자들에게 단백질과 영양소가 풍부한 현미밥을 먹으라고 권한다. 이 센터장 제안으로 사업장 급식소에 설치된 현미밥솥. 이의철 센터장 제공

- 무엇이 좋은지 잘 안다고 해도 식습관을 바꾸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 같습니다. 개인의 식습관을 비난하는 건 때로 폭력적인 일이 되기도 하고요. 미국에선 ‘정크푸드’란 말을 쓰지 말라는 사람들도 있었죠. 기쁨을 경멸하는 단어라고요. 어떤 식습관이 “몸에 해롭다” 말하는 것이, 그 음식을 선택하는 사람이 놓인 처지는 가려버리고 이들을 “몸을 망치는 무책임한 사람”으로 비난하는 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직업환경의는 어찌 보면 사람들의 건강 악화와 사망 같은 것들을 주변 환경과 제도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들여다보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생각에 이르게 돼요. 근골격계 질환과 심혈관계 질환으로부터 이 사람을 자유롭게 하려면, 교대 근무를 못하게 하고 장시간 노동을 못 하게 하면 그만인가? 저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사람을 정말 건강하게 만들고, 악조건에 놓였을 때도 몸이 견딜 수 있도록 하려면 개인적 실천의 문제도 꼭 얘기를 해야 하거든요. 좋은 것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요. 개인에게도 얘기하고 사업주에게도 이런 얘기를 꼭 해야 돼요.”

미국에서 시작된 ‘생활습관의학’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병의 증상을 약으로 다스리는 데만 집중할 게 아니라 병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을 생활에서 바꿔낼 수 있도록 환자를 교육하고 변화를 유도하는 데 집중한다. 식단 관련 지도는 필수다.

하버드 의대 생활습관의학 코스에서도 식물성 재료를 기반으로 한 자연식품 식단을 이상적인 것으로 꼽는다. 최근 하버드대와 스탠포드대 의대에는 ‘요리의학’ 강좌도 개설됐다. 이 센터장은 국제생활습관의학위원회(IBLM)가 주관하는 전문의 시험을 2019년 통과한 후, 올해부터 차의과대학 통합의학대학원에서 생활습관의학 강의를 하고 있다.

- 진료실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식단에 대해 구체적 지침을 주는 경우가 흔치는 않은 것 같은데요.

“의사들 뿐만 아니라 영양학 전문가들도 영양소에 대해 아주 단편적인 지식 밖에 배우지 못하거든요. 각각 영양소가 우리 몸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결핍되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를 배우지만 그걸로 끝이에요. 현실에서 어떻게 건강하게 먹어야 하는 지에 대한 조언을 해 줄 수가 없는 거에요.

스탠포드대와 하버드대 예과에 개설된 요리의학 강좌가 아주 인기가 높아요. 한 마디로 집밥을 해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과목인데요. 장보기, 식재료 보관하기, 식사 계획하기, 요리하기까지 다 가르쳐요. 의사들이 스스로 먹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환자를 볼 때도 이 부분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으니까요.”

이의철 센터장은 2011년부터 채식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자연식물식의 권하면서, 자신도 시간을 쪼개 부엌에서 요리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집에서 배우자와 카레를 만들었다. 이의철 센터장 제공

- 채식을 했는데 몸이 오히려 나빠진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윤리적 동기로 채식을 시작한 경우 ‘설령 건강을 해친다 하더라도 고기는 먹지 않겠다’ 다짐하는 분들도 있고요.

“몸이 안 좋아지면 ‘채식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채식을 했기 때문’이라고는 잘 생각을 못 하는 경우가 있어요. 기름과 설탕이 많이 들어간 가공식품이나 지방과 첨가물이 많이 들어간 대체육 같은 것을 오래 먹다 보면 건강이 나빠질 수 밖에 없어요.

저는 채식을 하는 분들께 ‘꼭 지속 가능한 방식의 채식을 하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당장 고기 소비를 줄이기 위해 맛이 고기와 비슷하고 몸에도 고기 만큼, 혹은 고기보다 더 나쁜 가공식품만 먹게 되면 결국은 포기하고 싶어 져요. 장기적으론 꼭 자연식물식을 해야 건강합니다.”

- 앞서 단백질은 식물성 식품으로만 섭취해도 충분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의학적으로 볼 때, 채식주의자가 꼭 따로 챙겨먹어야 할 것이 있나요?

“비타민 B12와 비타민 D, 두 가지는 건강검진을 하셔서 부족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따로 챙겨 드실 것을 권합니다. 저도 채식을 하면서 이 두 가지는 계속 체크를 하고 있어요.

많은 영양 전문가들이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으면 비타민 B12 부족 문제(신경손상 등)가 생긴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비건이나 자연식물식 식단을 장기간 유지한 게 비타민B12 결핍의 원인인 경우는 드물어요.

다른 원인이 더 흔합니다. 비타민 B12는 섭취가 아니라 흡수가 안 되는 데서 주로 결핍이 발생하거든요. 위장관질환이 있어 제산제를 먹거나 당뇨약을 드시는 분들, 궤양성대장염이나 크론병으로 소장 부분이 망가진 경우에 흡수가 안 돼요. 전체 인구의 10%가 당뇨병이고, 제산제는 가장 많이 팔리는 약 중 하나거든요. 결론적으로 비타민 B12 부족은 채식을 하는 사람 만이 아니라 현대인이 거의 다 경계해야 하는 것이고요.

비타민D 또한 마찬가지인데요. 햇볕을 자주 보는 생활을 하면 절대 문제가 없지만 현대인에겐 결핍이 흔합니다. 제가 직접 해 보니, 보충제를 먹는 것보다 의도적으로 햇볕을 쪼이는 게 훨씬 효과가 좋긴 했습니다.”

- 윤리적 이유로 채식을 시작했는데 건강까지 좋아진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을 돈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하겠느냐, 닭고기야말로 서민의 가장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다, 이런 지적을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일단 공장식 축산으로 만든 고기가 ‘질 좋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주장이라고 봅니다. 지금 사람들을 병들게 만드는 것이 동물성 단백질인데 이것만 섭취하라고 한다면, 결국 돈 없는 사람일수록 더 아프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몸에 좋은 식단을 누구나 시도할 수 있으려면, 근본적으로 주당 노동시간이 지금보다 현저히 줄어야해요. 매일 8시간 넘게 일하면서 자기 자신을 돌보기가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을 논의할 때 노동계에서 이따금 ‘치킨 값’이나 ‘삼겹살 값’을 예로 들어 ‘우리도 이 정도는 먹을 수 있어야 한다’ 하는 주장이 나오는 것을 보면 착찹해져요. 처우를 개선해서 더 나쁜 것을 먹자는 얘기잖아요. 축산업이 지금과 같이 존재하는 한 토양과 물 오염, 항생제로 인한 내성균 문제를 피할 수 없습니다. 다함께 건강하려면 이 문제를 회피해선 안 돼요.”

경기도에 위치한 한 도축장 계류장(도축에 앞서 가축이 잠시 머무는 공간)이 주말을 앞두고 텅 비어있다. 김흥일 기자

- 채소와 과일이 일부 계층에게 고기보다 오히려 더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조금 사서 간단히 구워먹기만 하면 고기와 달리 채소는 도시에 사는 1인 가구가 소비하기에 까다로운 면도 있고요.

“미국에서는 저소득층 가구들이 통조림과 시리얼 같은 가공식품만 접하고 신선한 과일, 채소를 사지 못하는 ‘음식 사막(food dessert)’ 현상이 문제가 되잖아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사기가 아주 쉬운 환경이지만, 일부 연령과 계층의 생활반경에선 이미 음식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닌지 잘 들여다 봐야 할 것 같아요. 마트에 가면 너무 많이사야 되고, 좁은 집에는 제대로된 조리 시설도 없고, 이런 상황에선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선택지가 확 좁아지죠.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거나 배달 음식을 먹으며 어떻게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섭취할 수 있겠어요.”

이 센터장이 자연식물식으로 뉴욕을 건강하게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는 풀뿌리조직 '플랜트 파워드 메트로 뉴욕(Plant Powered Metro New York)'의 초청 강연에서 나물과 쌈 등 한식 채소 요리를 소개했던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최미랑 기자

- 누구나 건강한 식단을 쉽게 구성할 수 있게 되려면 어떤 사회적 인프라가 필요할까요.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전 세계 최빈국에 속했어요. 그 상황에서는 빨리 서양처럼 풍요를 누리고 큰 체격을 갖기를 바랐을 것이고 그에 맞는 영양 정책이 수립되었죠. 이제는 선진국이 되었고 영양 결핍이 아니라 영양 과잉이 사람들을 아프게 합니다. 여전히 영양 결핍을 전제로 교육을 할 게 아니라, 영양 과잉을 최대한 막고 비타민과 미네랄 같은 것들을 충분히 섭취하게 만들어야죠.

‘고기는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깨고 ‘채소와 과일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먼저 형성이 돼야 해요.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야만 음식이 맛있고 영양가 있다는 편견이 덜해져야 하는 것이죠. 어느 식당에 가더라도 ‘비건식으로 해 주세요’ 혹은 ‘자연식물식으로 해 주세요’ 하고 요청할 수 있는 수준까지 변화하면 선택하기가 훨씬 쉽지 않을까요?

사실 한식은 몇 가지 재료만 빼면 훌륭한 자연식물식이 되는 음식이 아주 많답니다. 저는 해외의 학회에 나가면 좋은 자연식물식 식단으로 비건 김치, 나물, 쌈을 자주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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