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연구소 창립 13년만에 최초로 사인펜 작업을 해봤어요. 이렇게도 광고를 만들 수 있구나 했죠.” 이제석광고연구소의 이제석 대표는 자신이 기획한 새로운 카툰광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가 공개한 사진엔 그가 A4용지에 직접 검정색 사인펜으로 슥슥 그린 그림들이 담겨있었다. ‘초저예산’인 탓에 이 그림에 색만 입혀 ‘너울성 파도 사고 예방’ 안전홍보물이 완성됐다. 지자체가 한 해 수억 원을 들여 제작하는 초대형 관광 홍보물과 대조된다.
강원 속초해양경찰서와 이제석광고연구소는 동해안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너울성 파도의 위험성을 알리고 연안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10~11월 집중 캠페인을 추진한다고 31일 밝혔다. 10~11월은 물의 온도가 여름철과 비슷해 서핑객들이 동해안을 많이 찾는 성수기이다. ‘얕은 물에서도 익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네 컷의 만화로 담은 안전홍보물을 제작해 너울성파도 사망사고 위험구역에 시범 설치했다. ‘너울성 파도’란 먼 바다에서 형성된 큰 바도가 해안가까지 밀려드는 현상으로, 맑고 바람이 없는 날에도 갑자기 찾아와 예측이 어렵고 무방비 상태로 먼 바다까지 휩쓸려가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속초해양경찰서에 따르면, 관내에서 최근 3년간 15명이 너울성 파도로 추정되는 사고를 당했고, 이 중 10명이 사망했다.
해마다 서핑객들을 끌어들이는 관광홍보물에는 수억원의 예산이 쓰이지만 이번 안전홍보물은 최소한의 경비로 제작됐다. 광고 제작 비용이 부족해 컴퓨터그래픽, 포토샵, 모델 기용 등 일체의 과정을 생략하고 손그림으로 만들었다. 제작 수량도 매우 적어 현재는 사망사고 위험구역 3곳에만 설치된 상태다. 이 대표는 “제대로 안전 홍보를 하려면 숙박업소나 공중화장실, 고속도로 진입구간 등에도 다 배포를 해야 하는데 비용이 부족해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서핑 관광을 홍보하는 초대형 광고판들은 길목마다 있는데 그 비용의 10분의 1이라도 사람 목숨을 보호하는 안전홍보물 제작에 쓰면 좋겠다”고 말했다. 각 지자체가 피서객 모집을 위해서는 수억원씩 들여 초대형 광고판을 제작하고 홍보물을 뿌리면서 안전사고 예방 홍보에는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포스터 한 장으로도 사람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이번 캠페인에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속초해양경찰서 관계자는 “이번 캠페인이 동해바다를 찾는 국민들이 너울성 파도의 위험성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며 “해양안전문화 확산과 연안사고 예방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