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6시가 조금 지난 시간, 사람들이 가득 찬 서울 마포구 홍대축제거리 한 가운데 네 명의 남자들이 버스킹을 준비했다. 기타와 앰프, 드럼과 마이크 등의 장비들을 차량에서 내려놓고 세팅하는 동안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시계 바늘이 7시를 가리키자 공연이 시작됐다. “봄을 두 번이나 보내고 다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밴드 보컬 김석현씨(34)의 첫 마디다. 석현씨와 기타 염만제씨(34), 드럼 최현석씨(34), 베이스 최현수씨(28)로 이루어진 4인조 밴드 ‘분리수거(BLSG)’의 거리공연이다. 무려 687일 만이다.
전공자 하나 없이 무작정 거리에서 음악을 시작했던 이들은 거리에서 관객과 만나고, 관객의 이야기를 즉흥곡으로 만들며 홍대거리에서 유명해졌다. ‘버스킹’으로 성장한 밴드였지만, 코로나로 인해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거리로 나서지 못했다. 그새 멤버들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군에 입대했던 현수씨는 전역했고, 만제씨는 태어난 지 100일을 앞둔 딸 ‘리아’의 아빠가 됐다.
버스킹을 앞둔 6일 연습실을 찾았다. 지난 2년 거리공연 대신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위해 스튜디오 역할을 하던 이곳도 대면 공연과 버스킹 날짜가 잡히면서 다시 연습 공간으로 바뀌었다. “The greatest show(영화 <위대한 쇼맨>OST 커버곡) 한 번만 더 해볼까요?” 베이시스트 현수씨가 입대로 떠나있던 2021년 2월 멤버들이 편곡해 SNS에 올린 곡을 한 번 더 연습하자고 요청했다.
각 멤버별로 연습하고 싶은 곡들을 마치자, 밤 10시가 훌쩍 넘었다. 멤버들은 공연 장비들을 차에 싣기 시작했다. 둘이 들기도 버거운 발전기와 앰프, 기타와 드럼, 멀티탭과 각종 전선들까지 지하 연습실에서 장비를 차량에 옮기는 것도 2년 만이다. “진짜 다 챙긴 거 맞아?” 장비를 옮긴 뒤에도 멤버들은 어색한 듯 한동안 트렁크 문을 닫지 못했다.
비예보가 있었던 버스킹 당일에는 다행히도 하늘이 맑았다. “다시 봄이 돌아왔으니 ‘꽃’과 관련된 노래를 불러보겠습니다.” 가수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의 커버곡으로 분리수거밴드의 공연이 시작됐다. 첫 곡을 시작으로 가수들의 커버곡들과 밴드의 자작곡 <분리수거 하는 날> 등이 이어졌다.
“저희가 즉흥곡으로 만들어드릴 테니 혹시 하고픈 말씀 있으신 분 계실까요?” 공연이 무르익자 석현씨가 관객들을 향해 말했다. 전역까지 1년이 남은 군인, 우울증을 겪은 이, 올해 결혼한 신혼부부 등 관객들 사이에서 사연이 흘러나왔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던 석현씨는 “우리 이분들에게 공통으로 해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을까요?”하고 관객들에게 다시 물었다. 인파 속에서 “화이팅이요~”라는 말이 들렸다. “화이팅이요, 좋은데요.” 석현씨의 말이 끝나자 기타와 베이스 반주에 드럼의 비트가 얹혀졌다. 그는 즉흥으로 가사를 지어 노래를 부르며 “힘내요, 파이팅”으로 후렴구를 붙였다. 반복되는 후렴구에 관객들은 모두 “힘내요”를 합창하며 사연의 주인공들을 응원했다.
공연 시작 후 1시간이 넘어가자 어느새 200명이 훌쩍 넘는 관객들이 밴드를 둘러쌌다. “지난 2년은 저희를 계속 의심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여러분들 덕분에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음악 열심히 해볼 테니까요, 혹시라도 저희를 길가다 마주치게 된다면 기억해주시고 응원해주세요.” 밴드는 마지막으로 <The greatest show>와 자작곡 <오늘밤에>를 20분 가까이 열창했다. 하나가 된 관객들과 밴드 멤버들의 흥이 토요일 밤의 홍대거리를 가득 채웠다.
“지금까지 저희는 ‘But Life is So Good’ BLSG 분리수거 밴드였구요. 저희가 ‘지화자’ 하면, 여러분은 ‘좋다’ 해주세요.” 공연의 엔딩이었다. “지화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