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물음표

학생선수들, 시험 보는 대신 ‘시합’ 나가는데 최저학력은 넘겨야 된다고요?

2024.05.04 08:00 입력 김나연 기자

지난해부터 대회 출전 시 ‘출석인정 일수’ 증가

올해부터 최저학력 못 넘기면 대회 출전 막혀

현장 “운동vs학습 상충···제도 정비 필요”

지난 3월 서울 소재 한 중학교에서 올해 기초학력 진단검사의 일환으로 실시한 ‘기초학력 진단·보정 시스템’에 배구부 학생 16명이 불참했다. 불참 사유는 ‘배구 대회 출전’. 이 학교 전교생 487명 중 병결자 6명을 제외하고 진단검사를 받지 않은 학생은 배구부 학생들뿐이었다. 이들은 국어, 영어, 수학 과목에서 필요한 학습 능력을 갖췄는지 진단 받지 못한 채 학기를 보내고 있다. 기초학력 진단검사는 학생들의 기초학습 능력을 진단하고 부족한 영역의 학습능력을 보충하기 위해 학년 초 실시하는 검사다.

4일 교육계 등에 따르면 학교 운동부에 소속된 ‘학생선수’들이 올해 최저학력제 본격 시행 후에도 ‘운동’과 ‘학습’의 균형을 잡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학습 성과를 맞춰야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참여하다 보면 수업은 물론 학교 시험도 빼먹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는 대회에 참가한 것을 출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일수가 늘어나 ‘출석인정일수 증가’와 ‘최저학력제’가 상충하는 제도라는 지적도 현장에서 이어지고 있다.

학생 선수들은 대회에 참가하면 ‘출석인정제’에 따라 연간 정해진 일수를 출석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출석인정 일수는 예전에는 종목별로 최대 60일이 넘었으나 지난 정권에서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로 축소됐다. 그러나 지난해 주말 대회 개최의 고충 등 현장의 반발로 다시 늘어나 현재 초등학교 20일, 중학교 35일, 고등학교 50일을 인정받을 수 있다.

출석인정 일수가 다시 늘어나면서 주요 학사일정과 겹치는 대회들이 생겼다. 학생들이 중간, 기말 등 시험에 빠져야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사례도 늘었다.

그렇다고 학생 선수들이 학교 공부를 완전히 무시해도 되는 상황은 아니다. 성적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면 대회 출전권을 얻지 못하는 ‘최저학력제’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학교체육진흥법’ 일부 개정안에 따라 학생선수들은 교과 성적이 일정 수준(학년 평균의 초 50%, 중 40%, 고 30%)을 넘지 못하면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 그간 학생선수들은 성취 수준을 못 넘기면 온라인 교육 플랫폼 ‘이(e)스쿨’에서 기초학력보장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방식으로 대회 참가 자격을 얻을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아예 참가가 제한된다.

학생 선수 대상 최저학력제는 이들이 ‘선수학생’이 아닌 ‘학생선수’로서 균형잡힌 학교 생활에 참여하고, 또 프로선수가 아니더라도 나중에 다양한 진로 선택의 길을 열어두기 위한 차원에서 도입됐다.

정현우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최저학력은 학생선수들이 운동을 하면서도 학생으로서 나이에 맞는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이들이 공부하고 싶어질 때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주느냐가 핵심이 돼야 한다”며 “이스쿨을 질적으로 개선해서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돕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문화를 바꾸는 방식으로 가야지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역행”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출석인정 일수 증가’와 ‘최저학력제 강화’가 상충한다며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늘어난 출석인정 일수만큼 학교를 빠지면서, 최저학력을 넘기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1월에는 한 학부모가 “학생선수들의 미래를 짓밟는 최저학력제를 폐지해 달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을 올렸다. 그는 “운동을 마치고 공부를 하면 오후 11시~12시에 과외선생님을 불러야 하나”라며 “하루 종일 운동하는 학생선수들에게 공부에 대해 커트라인을 정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학교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학년 초나 중간·기말고사 기간에는 대회를 열 수 없다는 등 조건부를 방식으로 출석인정 일수를 보완해야 했다”라며 “그래야 학생선수들이 추후 다른 진로를 선택하거나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내신 성적을 갖고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문기사 보기
상단으로 이동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경향신문 뉴스 앱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