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나

① 유명무실 ‘2인1조 원칙’…동료 대원도 소방호스도 없이 불길로

2024.05.07 06:00 입력 2024.05.07 06:14 수정 강현석 기자

홀로 불길 뛰어든 새내기 소방관

2023년 3월6일 화재가 발생한 전북 김제시의 한 주택. 이 주택 화재로 10개월된 신임 소방관이 숨졌다. 소방청 순직사고 보고서 발췌.

“시작부터가 잘못됐습니다. 그날 출동은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성용묵씨(54)는 “아들이 불길에 들어갔고 안 들어갔고의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2인1조’ 원칙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던 만큼, 당시 출동했던 소방관이라면 누구라도 불길 속에서 돌아오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는 얘기다.

성씨의 하나뿐인 아들 성공일 소방사(당시 30세·순직후 소방교로 특진)는 2023년 3월6일 전북 김제시 금산면 한 단독주택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 70대 노부부가 사는 주택에서는 오후 8시33분쯤 불이 났다. 부부는 오후 6시44분쯤 집 소각장에서 깨를 수확하고 남은 줄기인 깻대와 쓰레기 등을 태웠다.

2시간쯤 뒤 노부부는 ‘타닥타닥’ 하는 소리를 듣고 집 밖으로 나왔다. 인근 카페도 불이 난 것을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 김제소방서 금산119안전센터가 가장 먼저 현장으로 출동했다.

4.2㎞ 떨어진 화재 현장까지 구급차는 10분 만인 오후 8시43분 도착했다. 불을 끌 수 있는 펌프차는 오후 8시45분에 도착했다. 좁은 도로 탓에 진입이 늦어졌다.

현장에 처음 도착한 소방관은 성 소방사를 포함해 모두 5명. 하지만 3명은 구급대원이었고 실제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진압대원은 성 소방사와 펌프차를 운전한 선착대장 등 단 2명뿐이었다.

현장은 혼란스러웠다. 불길을 보고 나온 이웃 주민들은 “할아버지가 집 안에 있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집 밖으로 나왔던 할아버지가 곧장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선착 대장은 펌프차를 조작하며 구급대원에게 불을 끌 수 있는 호스를 성 소방사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하지만 중간에 호스를 추가로 연결하느라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불길은 단독주택을 집어삼킬 듯 거세졌다.

결국 성 소방사가 방화복과 산소통만 맨 채 현관을 통해 홀로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소방청 규정에는 인명구조를 위해서는 반드시 ‘2인1조’로 진입하도록 하고 있다. 불길 진압과 탈출 상황에 대비해 곧바로 물을 쏠 수 있는 소방호스도 휴대해야 한다.

2023년 3월6일 전북 김제시 금산면 한 단독주택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순직한 성공일 소방사(당시 30세·순직 후 소방교로 특진)의 부친 성용묵씨가 지난 4월29일 인터뷰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하지만 소방호스도 없이 위험을 감수하며 혼자 집안으로 들어간 성 소방사를 당시 그 누구도 제지하지않았다. 그는 19초 동안이나 혼자 집안을 살폈지만 할아버지를 발견하지 못했다. 집 밖으로 나온 성 소방사는 이번에는 거실 출입구를 통해 다시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성 소방사는 고등학교 때부터 소방관이 꿈이었다. 전북 전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고향에 있는 대학 소방방재학과를 택했다. 성씨는 “평소 소방관들을 존경해 왔기에 아들의 선택을 말릴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3차례 치른 소방관 시험에서 떨어졌지만 아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한 번만 더 해보자”며 도전해 2022년 전북도 소방본부의 공개채용에 합격해 꿈을 이뤘다. 성씨는 “아들은 ‘소방관 일이 재미있다’고 했다. 퇴근이 늦어질 때도 있었는데 ‘호스 등 장비를 정리하느라고 그랬다’고 했다”면서 “소방관은 체력이 중요하다면서 아들은 퇴근 후 헬스장에서 운동도 했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인원이 부족한 상태로 출동한 아들이 혼자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말을 들은 성씨는 한 달 전 일이 생각났다고 했다. 퇴근한 아들의 몸에서 그을음 냄새가 심하게 났다. 걱정스러운 눈빛의 가족들에게 그는 “화재 진압을 하다 잠깐 고립됐었는데 괜찮다”라며 안심시켰다.

그러나 성 소방사는 이번에는 불길 속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대응 1단계’ 발령으로 다른 지역 소방관들까지 출동해 초진이 거의 이뤄지던 오후 9시33분쯤 단독 주택의 가장 깊숙한 방안에서 웅크린 자세로 발견됐다. 홀로 집 안으로 뛰어든 지 45분이나 지났다.

대전 현충원순직 소방관 묘역에 2023년 3월6일 전북 김제시 금산면 한 단독주택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순직한 성공일 소방사(당시 30세·순직후 소방교로 특진)의 묘비가 서 있다. 권도현 기자

성 소방사가 착용하고 있던 방화복은 1300도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불길 속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 그가 구하려던 집 주인 할아버지도 숨졌다.

성 소방사는 불을 끌 수 있는 소방 호스도,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탈출 할 수 있는 도끼 등 기본적인 장비도 갖고 있지 않았다. 화재 진압 중 소방관에게 사고가 발생하면 경고음을 내 주변에 위험을 알려주는 ‘인명구조 경보기’의 전원도 켜져 있지 않았다.

소방청은 소방관 안전을 위해 현장에서 ‘절대불변 4대원칙’의 준수를 강조한다. ‘2인1조 활동’ ‘소방호스 필수 휴대’ ‘개인장비 착용 철저’ ‘안전장비 작동상태 유지’다. 하지만 4대 원칙 중 3개가 지켜지지 않았다.

성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들이 좀 다쳐서 전주의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큰일은 아니겠지’ 마음을 달래면서도 그는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침 출근을 배웅했던 아들은 숨을 쉬지 않았다. 소방관이 된 지 겨우 열 달이 지났을 뿐이었다.

성씨는 왜 경험이 부족한 아들이 혼자서 불길 속으로 들어가야 했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 안 되지만, 아들이 탔던 펌프차가 아예 현장에 진입하지 못했다면 이런 일까지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라고 했다. 당시 소방청은 “인력 부족으로 출동 대원이 부족했다”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사고 이후 소방청은 14명의 전문가로 ‘중앙사고합동조사단’을 구성해 30일 동안 사고를 조사했다. 조사결과 보고서를 보면 무려 12가지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성 소방사가 일했던 금산안전센터는 당시 정원대비 인력이 3명이나 부족했다.

그나마도 구급대 위주로 출동대를 편성하면서 화재 진압을 위한 펌프차는 ‘최소 3명 탑승’ 이라는 기준을 지킬 수 없었다. 당시 두 번째로 현장에 도착한 펌프차에도 역시 2명만 타고 있었다. 1명이 펌프차를 조작해야 하는 만큼 소방 호스를 잡는 진압대원은 1명뿐인 상황이 당연시됐다.

현장 지휘관의 지휘활동도 ‘전면 부재’ 했었다는 게 조사단의 판단이었다. 현장 도착 당시 불은 최전성기를 향하고 있었다. ‘실내진입 불가’로 판단했지만 선착 대장은 새내기 소방관인 성 소방사의 주택 진입을 막지 못했다. 그는 2014년 이후 전문교육과 훈련 집합교육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소방호스의 길이가 60m로 충분했는데도 거리를 잘못 판단해 30m를 추가 연장하느라 첫 방수도 늦어졌다. 그러는 사이 소방관 도착 이후 3분 만에 불은 지붕 전체로 확대됐다. 성 소방사는 숨질 때까지 소방호스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고립됐던 성 소방사를 구출하기 위해 다른 구조대가 오후 9시쯤 주택 내부로 진입했지만 물 공급이 끊겨 50초간 소방호스를 사용하지 못해 탈출하기도 했다.

성 씨는 “소방관의 생명을 지켜줘야 국민의 생명도 지킬 수 있는데 왜 진입이 어려운 현장에서 소방관이 무리하게 진입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현장 소방관들이 문제점을 가장 잘 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이런 일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아들이 떠난지 1년이 지났지만 성씨는 자신과 체격이 비슷했던 아들이 남긴 옷을 버리지 않고 입고 다닌다. 지난달 29일 만난 성씨는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는 한마디를 어렵게 꺼냈다. 그는 매주 토요일 아들을 만나기 위해 국립 대전 현충원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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