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피아] 🎓‘도서관’을 ‘독서실’로 만든다고?

인스피아

🎓‘도서관’을 ‘독서실’로 만든다고?

15분 2022.11.16

도서관 동네 도시 관계 제3의장소

‘도서관’을 ‘독서실’로 만든다고?

Library for all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66), 2022.11.16,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웹에서 보기 Web link

키워드: 도서관, 인프라, 동네, 관계, 사람

1.머리말

2.엉뚱하고 살아있는 도서관

3.‘구멍’을 내는 도서관

4.도서관을 잃어버린 도시

5.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연구자님은 도서관에 자주 다니시는 편이신가요? 저는 회사 근처에 커다란 도서관이 있어서 자주 다니는 편입니다. 인스피아를 시작하고 나선 한층 더 자주 다니게 되었고요.

최근 마포구청장이 관내 구립 ‘작은도서관’1)의 사실상 폐관 방침을 밝혀 논란이 되었는데요.(링크) 반발이 높아지자 구청 측은 기존 도서관 기능은 그대로 둔 채 ‘독서실’로서의 기능을 더하겠다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 상황입니다. 시민단체는 작은도서관 축소, 폐관 조치에 맞서 청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동네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왼쪽) 마포구청의 작은도서관 폐관 조치에 반발하는 서명문(링크). 경향신문 자료사진 / 서명 갈무리

도서관은 ‘독서실’이 될 수 있을까요? 왜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도서관을 사랑할까요? 책을 안 읽는 시대에 도서관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오늘 레터에선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수전 올리언), <동네 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이소이 요시미쓰),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에릭 클라이넨버그) 등을 지팡이 삼아 도서관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너비33㎡, 장서1000권, 열람석 6석 이상의 공중 생활권역내 소규모 도서관

【2.엉뚱하고 살아있는 도서관】

옛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이 불타서 / 사라졌네 / 그 시내의 도서관.
그리고 그와 함께 / 내 젊음의 커다란 부분도 / 사라졌다네…
그 경이로운 곳 /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
-찰스 부코스키, The Burning of the Dream

로스앤젤레스 도서관은 방대한 서가와 훌륭한 서비스 등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공공 도서관으로 손꼽혀온 곳입니다. 그런데 이 대단한 도서관은 1986년 4월 대화재로 인해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무려 7시간이나 이어진 불로 인해 수십만권의 장서가 불에 타고 물에 젖고 말았죠.

수전 올리언이 쓴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은 화재로부터 약 30년 후인 2011년, 화재를 둘러싼 관계자들의 증언을 듣고 그날의 비밀을 추적해가는 논픽션 책입니다.

이렇게 간추려놓으면 꽤 스릴 넘치는 범죄 미스터리물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실은 이 책의 주인공은 ‘범죄’나 ‘미스터리’보다도 ‘도서관’입니다.

정확히는 로스앤젤레스 도서관이 화재 이전에 어떻게 책, 독자들과 교류해왔으며, 어떻게 화재에서 복구 되었고, 그 이후 현재까지 어떻게 이용자들과 교류해오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주입니다.

1986년 대화재로 수많은 책들이 소실된 로스앤젤레스 도서관에서 소방관이 화재 진압을 하고 있는 모습(왼쪽) 화재를 이겨내고 다시 이용자들을 맞게 된 도서관. 출처 LA Times / 로스앤젤레스 도서관 홈페이지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책과 도서관을 사랑한 도서관 덕후인데요. 그에게 있어서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곧 삶이었고, 우연한 기회에 로스앤젤레스 도서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화재 사건을 추적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화재 이전(1980년대 이전), 유명한 공공도서관이 어떻게 이용자들과 긴밀하게 소통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공공도서관이 지닌 공공성은 요즘 세상에서 점점 희귀해지고 있다. 모두를 환영하는 곳, 그리고 그렇게 따뜻하게 받아들여주면서도 돈을 청구하지 않는 곳을 떠올리기란 갈수록 어려워진다.”
-수전 올리언,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이하 동일)

원래 도서관 초기엔 회원제로 남성, 엘리트 위주로 운영되어왔지만 이후 누구나 환대하는 장소로 탈바꿈합니다. 도서관은 노숙자, 아이 등을 이용자로 받아들이고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요. 도서관은 때로 재난이 닥쳤을 때 마을의 ‘광장’이 되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도서관의 명성은 열의 있는 사서, 책임자들의 헌신에 큰 빚을 지고 있었는데요. 이용자에게 책을 추천해주는 것은 기본이고, 독특한 질문코너를 운영하며 이용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고 하네요. 1937년 로스앤젤레스 도서관에 들어온 문의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로미오의 외모, 1929년 미국에서 생산된 우유의 양, 문학적 가치가 있는 흑인 노예의 글, 인간의 불임에 대한 통계,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라디오의 개수, 정신박약자 보호시설에서 하는 일의 유형, 글렌데일에 사는 유대인 가족의 수, 하와이의 매장 풍습, 인간의 평균 수명, 눈으로 영생을 볼 수 있는지 여부...

지금으로 치면 ‘초록창’에 검색하면 간단히 나올 내용도 있고, 그렇지 않은 질문들도 있습니다. 이런 대중없는 호기심의 목록을 보며 당시 사서들이 어떤 질문에까지 대답을 했을지, 그리고 그 대답은 어떤 것이었을지에 신경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도서관 질문’의 전통은 지속되어 로스앤젤레스 도서관은 1970년대에는 SCAN이라는 ‘지식 응답서비스’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SCAN에 들어왔던 질문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 “넥타이가 욕조에 빠졌어요”를 스웨덴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알고 싶어함. 그는 대본을 쓰고 있었음
* 술고래인 남편을 위해 간질환에 관한 책을 요청함
* “곰이 북극에서 기침을 했다”라는 표현의 원출처를 알고 싶어함(답을 알려주지 못함)
*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국가가 연주될 때 기립해야 하는지 물어봄. 강제성 없이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고 설명함. 예를 들어 목욕을 하거나 식사를 하고 있거나, 카드놀이를 할 때는 일어설 필요가 없음
* 헝가리의 비밀경찰을 연기해야 하는 한 배우가 헝가리어 단어들의 발음을 듣길 원했음. 헝가리어를 할 줄 아는 사서를 찾아 고객과 대화를 나누도록 함.
* 아버지의 묘비명 작성을 도와달라고 요청함.

열의가 지나친 사서였던 러미스는 도서관에 들어온 형편없는 책(사이비 과학서적 등)에 ‘독극물 표시’를 하고, “이 책을 볼거면 차라리 다른 책을 보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경고를 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그는 해당 책 대신 볼 만한 훌륭한 다른 책을 함께 추천했습니다.

이런 엉뚱하면서도 사서와 이용자 간의 돈독한 소통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들은 한물 간 얘깃거리가 아니라, 어쩌면 미래에도 도서관이 어떤 형태로 이용자들과 소통해야하는지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하고요.
저자는 로스앤젤레스 도서관의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미래에 도서관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에 대해 단서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미트닉과 나는 도서관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지식이 물리적인 책 속에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고 있으며 그런 세상에 요즘 도서관도 적응 중이라고 생각했다[…](도서관이) 단순한 자료 보관소라기보다 정보 및 지식 센터라고 생각했다.

로스앤젤레스 도서관에서 방문객들은 누구나 원하는 책을 읽고, 사서와 담소를 나누고, 맘껏 해찰을 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 읽을 책이 어떤 책인지 알지 못한다면 조언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아이든, 노인이든, 직장인이든 상관 없이 말이죠.

이러한 자유분방하고 열린 도서관의 정신이 수전 올리언같은 ‘도서관 덕후’를 낳고, 이런 매력적인 책을 낳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1949년에 유네스코는 도서관의 중요성을 유엔 의제로 확립하기 위해 공공도서관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은 “도서관은 시민들이 정보에 대한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활용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민주주의에서는 열린 토론과 여론의 형성을 위해 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언명했다.-수전 올리언,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3.‘구멍’을 내는 도서관】

이처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다양한 (유용하거나 유용하지 않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꼭 도서관의 목적이 ‘지식’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동네 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를 쓴 이소이 요시미쓰는 중소기업 사원이었다가 일본 내 ‘동네도서관 바람’의 주역이 된 인물입니다. 그가 도서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독특한데요. 원래 회사에서 일반인 교육 쪽 사업을 하다가 재기 방법을 찾던 중 눈에 띈 것이 ‘도서관’이었다고 합니다.

이소이 요시미쓰는 처음부터 굉장히 파격적인 선언을 하며 책을 시작합니다. “책이 많지 않아도 도서관을 할 수 있다!”

‘도서관’이라고 하면 통상 책이 많은 곳을 떠올리는데, 책이 적어도 도서관을 할 수 있다는 게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싶기도 합니다.

그는 일단 모이고 싶은 마음, 함께 배우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책은 그 이후에 마련하거나 각자가 가져와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도서관 서가에 책을 마련하는 것을 ‘나무 심기’에서 따와 ‘식본(植本)’이라고 하기도 하죠.

책의 저자인 이소이 요시미쓰(왼쪽) 가게, 개인의 집, 병원 등에 열린 '동네 도서관'들의 사례. 이 중 '하루에문고' 등은 <동네 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 책에도 소개가 되었습니다. 이소이 요시미쓰 페이스북, machilibrary 홈페이지 갈무리

이 책은 ‘도서관’에 대한 책이지만 실상은 ‘사람(커뮤니티)’에 대한 책에 가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책에서 소개되는 도서관들은 하나같이 독특한데요. 개인의 서재를 활용해 만든 작은 개인 도서관, 특정한 주제에 대한 도서관, 병원이나 대학에 차려진 간이 도서관 등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도서관일까요? 저자에게 있어 ‘도서관’이라는 정체성은 중요합니다. 책을 매개로 했을 때 사람들은 나이, 계층, 목적 등과 무관하게 순수한 마음으로 모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움에는 나이나 성별, 지위 따위 사회적 조건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책을 매개로 하면 지위나 입장이 아닌, 상대방을 사람 그 자체로서 받아들일 수 있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배움을 나눌 수 있다.”-이소이 요시미쓰,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

오늘날엔 점차 아무런 연결 없는 성인이 돈을 내지 않고 평등하게 어울려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와 관련해 이 책에서 ‘제3의 장소’라는 개념을 언급하기도 하는데요.2) 동네도서관이 바로 그런 공간이라는 것이죠.

도서관 가족은 피를 나눈 가족과 지역 커뮤니티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존재다. 감성이 통하고 분위기가 맞는 사람들이 책으로 이어져 서로의 생활과 장래에 관심을 두고 도움을 주는 관계가 형성된다.

-이소이 요시미쓰, <동네 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이하 동일)

책을 계기로 민주적인 의사소통, 관계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도 합니다. 환자가 대상화, 소외되기 쉬운 대표적인 공간인 병원에서의 ‘건강 책 읽기 모임’이 한 예인데요. 이곳에선 평소엔 대화가 없었던 환자, 의사, 간병인 등이 같은 책을 읽고 진솔하게 소통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건강을 생각하는 동네도서관 추진) 모임 소식을 들은 한 환자가 전화를 걸어 ‘나는 암 환자입니다. 의사, 의료진과 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나도 그 모임에 꼭 참가하고 싶습니다’하며 적극적으로 참가 의지를 보였다[...]사람은 저마다 개성이 있다. 의사, 의료진, 환자도 마찬가지다. 신뢰 없이는 제대로 치료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마음의 교류로 통증도 없앨 수 있듯이 의료 현장에서의 동네도서관 활동으로 인간관계를 쌓으면 치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은 아주 적어도 괜찮습니다. 이 책에선 미국에서 시작된 ‘초미니도서관’인 앞뜰 우편함 도서관(Little free library)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기도 한데요.

각자 집의 앞마당에 나무상자를 만들어 마련한 초미니도서관 'Little free library'. 창시자 토드 볼은 마이크로라이브러리서밋에 초대되기도 했습니다. machilibrary 홈페이지 갈무리

“리틀 프리 라이브러리의 특징은 이웃이나 친구와 함께 앞마당에 나무상자를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다는 데 있다[...]한 참가자에 따르면 10년간 같은 곳에 살았는데 그동안 만난 사람보다 새집 모양의 나무상자를 설치한 후 일주일 동안 만난 사람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저자는 나아가 ‘도서관’이 어른에게 ‘놀이’, 목적없는 즐김, 조건없는 호혜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앞서 마포구청장은 “예산 낭비”라며 도서관을 없애겠다고 했다지만, 저자의 입장에서 볼 땐 ‘대체 도통 뭘 하는 공간인지 모를 지경’인 편이 이상적인 도서관에 가까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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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도서관을 하면서 돈도 안되는 걸 왜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때마다 “네 살배기 꼬마가 놀이터 모래밭에서 터널을 만들며 놀 때 비용대비 효과를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대답한다[…]적어도 나에게 동네도서관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놀이이고, 좋은 의미의 ‘빈둥거림’이다. 목표를 향해 앞으로만 걸을 때보다는 가끔 한눈을 팔며 이곳저곳을 산책할 때 뜻하지 않은 발견을 한다. 그때 만나는 발견이 생활에 윤택함을 준다. 그것이 동네도서관이다.

어른에게도 놀이가 필요하다[…]문화는 놀이 속에서 생겨난다. 동네도서관은 꼭 해야만 하는 활동이 아니다. 즐기는 놀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새로운 문화가 생겨날지 모른다.”-이소이 요시미쓰, <동네 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

2)미국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제3의 장소>를 통해 제시한 개념. 혈연, 지연 등에 매이지 않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 소통할 수 있는 중립적인 공간을 뜻합니다. 과거 '노키즈존' 회차에서 다룬 책이니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이쪽을 참고해주세요(💌지난레터)

【4.도서관을 잃어버린 도시】

1995년 극심한 폭염이 시카고를 덮쳤습니다. 당시 폭염으로 인해 무려 739명이 사망했는데요. 그런데 지역별 사망자 수엔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시카고 안에서도 잉글우드의 사망률은 10만명 당 33명꼴이었던 반면, 오번그래셤3)의 사망률은 10만명 당 3명꼴로 부유한 동네보다도 재난을 더 잘 견뎠다고 하죠.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 핵심 요소는 빈부격차 외에도 도시의 사회적 인프라, 관계망이었습니다. 비록 가난한 동네라고 해도 평소 주민 간의 교류가 활발하고 관리가 잘 되는 도시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습니다.

이상은 미국 사회학자 에릭클라이넨버그가 <폭염사회>를 통해 보여준 핵심 메시지입니다.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그의 다른 저작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Palaces for the people>에서 ‘사회적 자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이번 레터에서 이 책을 소개한 이유는, 저자가 뜻밖에 ‘도서관’을 무척 중요한 도시 속 사회적 자본의 사례로 꼽고 있기 때문입니다.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이자 <폭염사회> 등을 쓴 에릭 클라이넨버그(왼쪽)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영어판 표지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폭염사회>의 메시지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재난’이 와도 도시에 어떤 사회적 인프라, 관계망이 조성되어있느냐에 따라 실제 피해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도서관 등 사회적 자본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죠.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적 자본이 발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짓는 물리적 환경을 지칭한다. 튼튼한 사회적 인프라는 친구들이나 이웃들끼리 만나고 서로 지지하며 협력하기를 촉진하는 반면, 낙후한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 활동을 저해하고 가족이나 개개인이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든다. 사회적 인프라의 역할은 가히 결정적이라 할 만큼 중요하다. 학교나 놀이터 혹은 동네식당 등에서 벌어지는, 서로 얼굴을 직접 마주하며 이루어지는 지역적 교류가 곧 그들의 공공 생활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건전한 사회적 인프라를 갖춘 장소에서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 공동체 형성을 목적으로 이 같은 장소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꾸준하게 반복해서 모여들 때, 특히 즐거운 일을 하며 교류할 때 관계 또한 필연적으로 싹트기 때문이다.

-에릭 클라이넨버그,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이하 동일)

이 책은 도입부부터 ‘동네 도서관’의 사례를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실질적인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점차 급속히 디지털화, 개인화, 원자화되는 도시에서 - 도서관은 이웃과 비교적 편견이나 허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사회적 공간입니다.

“이러한 대화(온라인 대화)에서 사람들은 대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눌 때보다 상대방을 무례하고 투박하게 대하면서 대화를 빠르게 진전시킨다. 좋은 의도를 가졌던 사람들조차 때로는 상대방이 뼈와 살이 있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스크린 위 말풍선"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했다[...]셰리 터클은 우리가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우리 앞에 있는 사람과 장소에 집중하여 "대화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청소년이 그토록 많은 사회적 시간을 온라인에서 보내는 이유는 어른들이 청소년에게 다른 선택지를 충분히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곳에서 사람들은 편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자산을 얻을 수 있는 힘을 누구나 기를 수 있습니다. 이에 도서관을 ‘모든 이들을 위한 궁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누구나 책 앞에서 평등하며, 각자의 고결함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도록 돕는 일은 공립도서관 직원들에게 주어진 핵심 임무다[…]”그들은(도서관 찾는 사람) 지금까지 겪어온 환경, 즉 그들을 멋대로 판단하거나 이용하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그들의 사회적 역할을 폄하했던 환경들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에 스스로 발전하려 애쓰는 사람들이예요. 이 사람들은 모두의 인간성을 너그럽게 믿어주는 공간을 찾아다니죠. 도서관이 바로 그런 곳이고요.”

이 책에선 ‘사회적 자본’으로 도서관 뿐 아니라 아이슬란드의 공공 온천(쉰드뢰이그), 교회 등이 사례로 다루어지기도 하는데요. 요는 어떤 형태로든 재난, 불시의 위험에서 우리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삶을 공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공의 안전 지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가장 수월하고도 막강한 자원은 도서관입니다.

책을 덮으면서는, 실상 우리가 평소에 ‘사회적 자본’ 부족을 체감하기조차 어려운 이유가 우리가 그걸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회적 자본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고, 돈으로 거래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평소에 그 가치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3)잉글우드와 오번그래셤 모두 아프리카계미국인 거주자 비율이 99%에 육박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만 사회적 관계망의 차이로 인해 오번그래셤은 부유한 동네보다도 더 적은 사망률을 기록하게 됐습니다.(링크)

"95년도에 폭염으로 사망한 인구의 비율은 엥글우드가 오번그레셤보다 무려 11배나 높았다. 결과의 비밀은 공동체 조직에 있었다. 엥글우드는[...]사회적 유대관계가 약해져 폭염 발생 시 각자가 고립됐다. 반면 오번그레셤은 평소에도 공동체 활동을 자주 하는 지역이었다. 그렇기에 오번그레셤 주민들은 누가 혼자 살고 누가 위험한지를 알고 있어서 폭염 기간에 서로를 챙길 수 있었다."-"누가 왜 폭염 때문에 죽는가", 대학신문, 2018, 09. 02

【5.맺음말】

오늘 레터에선 도서관을 키워드 삼아 이런저런 해찰을 해보았습니다.

평소 저는 도서관을 주로 ‘책’을 목적으로 이용해왔지만, 오늘 소개한 책들을 읽으면서는 어쩌면 막연하게 바라왔던 공간이 바로 ‘좋은 도서관’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로 사회적 조건, 배경과 관계 없이 책을 매개로 바쁜 일상 중에도 생각과 안부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요.

1980~90년대에 미국 스펜서공공도서관에서 ‘명예사서’로 재직한, 인기 만점 도서관 고양이 듀이에 대한 이야기로 오늘 레터를 맺어볼까 합니다.

예전에 고양이 듀이에 대한 책(<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실 고양이보다도 고양이와 어울리는 다양한 도서관 이용자들의 얼굴이었습니다.

미국 아이오와주의 스펜서공공도서관에서 명예사서로 1988년부터 2006년까지 지냈던 고양이 듀이. 풀네임은 '듀이 리드모어 북스Dewey Readmore Books'입니다. 듀이는 남녀노소 가리지않고 도서관 이용자에게 다가가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영상) Grand Central Publishing / Iowa PBS 유튜브 갈무리

도서관 고양이 듀이가 활약하던 도서관은 인구가 1만명 아래로 떨어져 쇠락하기 시작한 도시 아이오와에 있는 작은 공립 도서관(스펜서공공도서관)이었는데요.

이곳에 1988년 발을 붙이고 살기 시작한 살가운 도서관 고양이 듀이는 실직으로 인해 낙담한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다가가 얼굴에 미소를 띠게 만들어줍니다. 처음엔 고양이를 밀어내던 무뚝뚝한 노인이나 중년 사내들도 점차 고양이에게 무릎을 내어주게 되었죠.

“노인들은 평소 도서관에 들르면 잡지를 대강 훑어보거나 무심히 책장을 넘기곤 했었다. 하지만 듀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자 달라졌다. 도서관을 더 자주 찾고 더 오래 머물게 된 것이었다. 도서관 직원들에게 다정하게 손을 흔들어주거나 아침 인사를 건네기만 하던 분들이 이제는 자꾸만 우리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했다. 물론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 듀이에 관한 것이었다[…]도서관에 와서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년 사내도 있었다[…]어느 날 나는 듀이가 그 사내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것을 봤다. 몇주만에 처음으로 중년 사내는 미소짓고 있었다. 두눈은 아직 슬퍼보였지만, 분명 미소 짓고 있었다[…]듀이는 매섭기만 했던 1988년 겨울, 스펜서 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었다.”

여기서 누구나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는 듀이는 어쩌면 ‘도서관의 요정’같은 존재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 성별, 직업 등을 넘어서 누구나 환대하는 도서관의 정신이요.

이런 공간이 과연 “절대 정숙”하고, 서로 대화도 나누지 않고 오로지 효율적으로 각자의 일에만 몰두하는 ‘독서실’로 갈음될 수 있을까요?

도서관은 책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사람과 사람이 조건없이 만나는, 우리가 서로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교류하고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제3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런 공간이 자꾸만 더 줄어들게 된다면, 이는 비단 ‘책 볼 곳’이 사라지는 문제에 그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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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그저 책만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도서관은 지역 사회의 중심이었다. 좋은 도서관은 모두의 기분을 한결 좋게 만들었다.”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수전 올리언, 박우정 옮김,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글항아리, 2019.

-'도서관 화재 사건'에 대한 책이라는 소개를 보고서 읽어내려간 책인데, 읽는 도중에 계속 책의 첫인상이 바뀌었던 - 오히려 그것이 더 즐거웠던 책입니다. 레터에서도 짧게 언급했듯, 미스터리같은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당시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책과 함께 소통했는지를 재기발랄하고 생생하게 적어간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이소이 요시미쓰, 홍성민 옮김, 『동네 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 펄북스, 2015.

-사실 이 책은 '도서관'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관계'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도서관 사례'들은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죠. 그럼에도 이 책을 이번 레터에서 소개하고 싶었던 이유는, 어떻게 책이 부싯돌이 되어 사람들 간에 관계와 유익한 문화를 만들어내는지의 장면들을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에릭 클라이넨버그, 서종민 옮김,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웅진지식하우스, 2019.

-예전에 전혀 다른 맥락에서 최근 읽은 책인데, 정작 읽어보니 도서관에 대한 내용이 굉장히 비중있게 적혀있어서 이번 레터에서 함께 다루게 되었습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도시계획, 도시 인프라에 대한 책이지만, 도서관에 대한 내용이 많다는 것은 어찌보면 그만큼 도서관이 단순히 '책 많은 곳'을 넘어 소중한 도시 인프라라는 의미가 되겠죠. 도시의 고립감, 관계 상실 등의 현상 그리고 그런 현상이 우리 사회에 주는 부담, 위험 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독서였습니다.

박영숙,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습니다』, 알마, 2014.

-느티나무도서관의 박영숙 관장이 쓴 책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도서관, 시민이 탄생하는 제3의 공간'인데요. 이용자를 왕처럼, 고객처럼 일방적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등한 시민적 관계에서 책을 매개로 소통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비키 마이런 외, 배유정 옮김,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갤리온, 2009.

-미국 아이오와의 한 낙후된 동네, 도서관 책 반납함에서 어느날 갈색 아기고양이가 발견됩니다. 사서들은 고양이를 씻기고 도서관에서 키우기로 결심하는데요. 이 작고 살가운 고양이가 도서관 명예 사서가 되면서 도서관 이용자들과 마을 분위기는 순식간에 변화합니다. 듀이는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조용히 곁을 내어줍니다.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절대 정숙'해야 하는 도서관?

독서시간: 약 7분 / 글자수: 약 1900자

🖍글 속 한 문장

"아이가 재밌는 책을 스스로 골랐다는 자체를 너무 기뻐하더라고요. 그 희열이 아이로 하여금 도서관은 즐거운 곳이라고 자연스럽게 인식하는 것 같아요[...]도서관이 더 재밌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나는 도서관 옆집에 산다>를 출간한 '도서관 덕후' 윤예솔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신혼집을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 옆에 마련하기도 했는데요. 누구나 책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대의 공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머물 수 없어서 비로소 알았다

독서시간: 약 19분 / 글자수: 약 6200자

🖍글 속 한 문장

도서관에 출근하다시피 하던 몇몇은 도서관 바깥을 맴돌고 있다. 인문·자연과학자료실 주순옥 사서는 국회도서관 바깥에서 늘 자료실을 방문하던 이용자를 만난 기억을 떠올렸다. 라틴어를 공부하는 80대 노인이다. 도서관 휴관 중에도 생수와 먹거리를 들고 근처 정자에 앉았다 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매일 오시던 열람자들이 지금 어디에서 어떤 자료를 이용하고 계실까. 그냥 방에 머무시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따금 들어요.”

👤김스피의 블라블라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해 '머물 수 없어진, 그래서 그 부재를 느끼게 된 도서관'에 대해 쓴 기사입니다.

아이들에게 공간을 주는 도서관 티티섬

독서시간: 약 9분 / 글자수: 약 2300자

🖍글 속 한 문장

스마트폰 속 좁은 공간에 갇혔던 아이들의 세계는 티티섬에서 다시 펼쳐진다[...]조 관장은 “지식의 격차는 성인이 돼서 따라갈 수 있지만 경험의 격차는 따라가기 어렵다”면서 “경제적·사회적 격차와 상관 없이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이 다양한 사람과 경험을 만나는 공공 공간이 필요하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사립' 공공도서관 티티섬도서관에 대한 기사입니다. 어린이들이 집안 사정 등에 상관 없이 누구나 와서 다양한 것들을 체험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도서관입니다. 놀이터조차 제대로 이용하기 어려운 도시에서 이런 공간의 존재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걸어서 도서관 갈 수 있는 도시, 서울 뿐

독서시간: 약 5분 / 글자수: 약 1500자

🖍글 속 한 문장

도서관 접근성이 가장 낮은 곳은 강원이었다. 집에서 도서관까지 평균거리는 9.15㎞로 도보로, 약 2시간2분이 소요됐다. 경북 113분(9.50㎞), 전남 100분(7.49㎞)순으로 도서관 접근성이 떨어졌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도서관, 문화, 의료 접근성 등에 있어 서울과 지방의 차이는 컸습니다. 올해 국토연구원이 발간한 자료와 관련된 기사입니다. 도서관에 한번 가려면 2시간이나 가야한다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지난 회차의 반응

지난 회차(‘재난을 지나는 보통 사람들 : 애도의 형태’)에 대한 연구자님들의 반응을 모아 소개합니다. 편지로 다양한 의견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 버튼을 누르면 연구자님들의 반응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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