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시선

포르노는 포르노, 군사반란은 군사반란

2012.09.17 21:03 입력 2012.09.17 22:51 수정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

송강호의 애드리브라고 알려진 영화 <살인의 추억>의 대사다.

연이어 성범죄가 보도된다. 차마 입에 올리기 싫은 사건이 방송과 신문과 인터넷에 가득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도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난 깜짝 놀란다. ‘강간’ 같은 단어를 말할 때면 마음이 편치 않고 옆에 누가 있는지 눈치도 살피게 되는데, 요즘은 뉴스만 틀면 성범죄의 세부 과정이 다 등장한다. 그러니 초등학생 아이들의 대화에 성폭행 사건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한다. 정말 우리나라가 강간의 왕국이 된 걸까?

인터넷에서 ‘한국, 성범죄’라는 두 키워드로 검색해 보기만 해도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범죄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높은 수치이며, 게다가 미신고 범죄나 합의로 고소가 취하된 경우를 따지면 숫자가 훨씬 더 증가한다고 한다. 구태여 숫자를 따져봐야 뭐하나. 방송이나 신문의 보도만 보더라도 우리 현실이 적나라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음란물을, 그러니까 포르노를 문제의 원인으로 꼽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포르노는 우리나라에서 조금의 여지도 없이 불법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강력한 청소년보호법이 있어, 합법적인 콘텐츠라 하더라도, 청소년의 정서를 해칠 것 같으면 여성가족부에서 유해매체로 지정할 수 있다. 유해매체가 되면 함부로 열어볼 수 없게 포장돼야 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진열도 할 수 없다. 그런데 만연한 음란물이 문제라고?

포르노가 문제라면, 포르노가 합법인 일본은 그야말로 지옥불구덩이 속이어야 한다. 하지만 창피하게도 일본의 우익 누리꾼들은 우리나라를 강간의 나라라고 조롱할 정도다. 그러니까 포르노는 문제될 게 없는 게 아닌가? 아니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포르노는 불법이다. 그게 문제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불법이어서 문제다. 불법이기 때문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데, 버젓이 존재한다. 다만, ‘야동’이라는 귀여운 이름이 붙어서. 누가 만든 이름인지 모르겠지만, 포르노가 야동이 되는 그 지점이 문제의 시작이다.

불법 음란물 혹은 포르노라는 문제적 단어를 대치한 야동. 어감도 귀여운 야동은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를 이야기하는 토크쇼, 스포츠신문 기사, 유머 게시판 등에 빠지지 않는 에피소드다. 심지어 어느 시트콤에서는 완고한 할아버지 캐릭터가 야동을 보기 위해 말도 안되는 일을 벌이는 에피소드가 나왔고, 한때 국회의원을 지낸 한 배우는 ‘야동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포르노는 불법적인데, 이걸 야동으로 바꿔 모든 세대의 상큼한 취미활동쯤으로 덧칠을 했다. 이런 상황이니 어른들은 물론이고, 청소년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야동을 찾아본다. 포르노가 불법인 나라에서, 포르노는 야동으로 개명하고, 국민적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야동이 된 포르노. 분명 불법인데 합법처럼 보이는 이 진기한 현상의 핵심에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많은 불법들이 제 이름을 버리고, 다른 이름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5·16과 12·12다. 5·16과 12·12 모두 불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한 반란, 그것도 무력을 사용한 군사반란이다. 그런데 그 불법적 행위를 반란이라 부르지 않고 5·16, 12·12라고 부른다. 5·16? 12·12? 무슨 암호인가? 그래서인지 그 암호에 응답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뭐, 자신의 가치관과 역사의식에 따라 군사반란을 옹호할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반란을 숫자로 치환하지는 말자. 그렇게 군사반란이 우리나라를 공산당의 침략에서 구한 구국의 결단이라 생각한다면, 좋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구국의 군사반란이라고 부르시라. 다만, 5월16일 새벽 전차를 몰고, 군대를 동원해 멀쩡한 정부를 전복시킨 명백하고도 객관적인 반란은 반란으로 부르면 될 일이다.

포르노는 포르노로 불러야 하고, 군사반란은 군사반란이라 불러야 한다. 포르노를 야동으로 부르는 순간, 유통과 시청이 말썽꾸러기들의 장난 정도로 포장된다. 근엄한 이순재씨가 ‘야동순재’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군사반란을 숫자의 조합으로 부르는 순간, 불법이 모호함으로 포장된다. 본질인 반란을 숫자로 가리고 나면,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라는 따위의 주장이 나오게 된다.

포르노가 야동이 된 우리 사회는 불법이 합법으로 가장되는 사회다. 합법으로 가장된 불법은 약한 자들을 짓누르고 착취하는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병을 뿌리 뽑을 때는 원인균을 박멸해야 한다. 성범죄를 줄이고 싶다면, 우리 사회에서 작동되는 이 왜곡의 메커니즘을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포르노는 포르노라 부르고, 군사반란은 군사반란이라 부르자. 용어가 인식을 만들고, 인식이 행동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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