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문명이 문제인가

2017.04.24 20:44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황대권의 흙과 문명]왜 문명이 문제인가

오래된 한옥동네엘 가보면 지붕을 통째로 비닐이나 천막으로 감싸놓은 집을 심심치 않게 본다. 부분수리가 불가능해서 그리 했으리라 짐작한다. 처음엔 안방 벽이나 천장에 곰팡이가 피는 것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것을 고쳐보려고 도배도 새로 해보고, 천장도 뜯어보고, 나중엔 기와도 일부 갈아보았지만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예 지붕을 통째로 덮어버린 것이다.

[황대권의 흙과 문명]왜 문명이 문제인가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문명을 얘기하는 이유이다. 철이 든 이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대의 요구에 맞춰 온갖 사회운동을 다 해보았으나 운동가라는 타이틀만 남고 사회는 전혀 변한 게 없다. 아니 변하기는커녕 처음보다 더 악화된 듯 보인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소수 기득권자들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자신의 이익만 확보되면 그만이지만 생존게임에 시달리는 서민대중은 조그만 변화에도 불안해하며 눈앞의 이익을 좇아 살다보니 기울어진 운동장이 바로잡힐 기회가 별로 없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이를 바로잡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이 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은 거의 모두 비운에 갔거나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다가 그리 된 것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과 함께 놀아나다가 버림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들이 추구했던 사회체제와 국가운영방식을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다.

코리아라는 국명을 쓰는 이 땅만 그런가 싶어 나라 밖을 둘러보아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정은 마찬가지다. 살육과 테러, 기아와 질병, 범죄와 기만 등으로 온 지구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냐고? 나는 실은 위에 쓴 것보다 더 부정적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예컨대 발암물질이나 조작된 유전자가 포함된 식품으로 슈퍼마켓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들을 이슬람국가(IS)보다 더 흉악한 테러리스트로 보며, 방사능을 끊임없이 외부에 유출시키면서 다른 한 편으로 핵발전소를 팔아먹는 행위 등을 자연과 인간에 대한 끔찍한 범죄로 여긴다. 국가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선진화’ 또는 ‘경제성장’으로 보겠지만 내 눈에는 ‘파렴치한 범죄’로만 보인다. 아득한 과거에 저질러진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중국의 만리장성 앞에 서면 그 거대한 규모에 감탄하기보다 건축에 동원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이 먼저 떠오른다.

양이 있으면 음이 있고 위대함의 이면엔 비참함이 있는 게 당연한 이치이거늘 한쪽만 보고 세상을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꾸짖는 분들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문제 삼는 건 음양의 이치가 아니라 음양의 부동성이다. 자연계에선 음양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그것도 공평하게. 나무 그림자만 보더라도 해의 위치에 따라 그림자의 모양과 크기가 하루종일 변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보면 음은 언제까지나 음이고 양은 언제까지나 양이다. 음양을 결정짓는 것은 ‘권력’이다. 권력의 부침에 따라 일부 음양이 바뀌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권력은 음양의 영속성을 전제로 한다.

언제까지고 권력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족보와 가계도는 그래서 만들어졌다. 우리 집안은 이렇게 양지 쪽만 딛고 왔소 하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영속적 권력에 대한 욕망, 이것이 인류의 문명을 비극에 몰아넣은 원인이다.

이에 대해 음지쪽의 인간들은 끊임없이 저항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보는 위대한 성공담은 천 번의 시도 끝에 한 번 성공한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그 성공도 오래 가지 못했다. 근세 이후 가장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저항한 무리가 마르크시스트였다. 그들은 현 체제의 근본모순을 자본과 노동의 대립으로 보고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접수하여 계획경제를 통해 평등한 분배를 하면 이상사회가 올 것으로 믿었다. 한때 그들은 지구인구의 절반을 장악할 정도로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다. 그러나 노동자 권력이 관료화되고 적당히 일해도 국가가 먹고살게 해주자 체제 전체가 비효율에 빠져 결국 스스로 몰락하고 만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와 같은 문명관을 가졌다는 데에 있다.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경쟁하면 효율성이 높은 체제가 이기게 마련이다. 이제 자본주의는 숱한 모순을 안은 채 유일무이한 세계체제로서 작동하고 있지만 과잉생산과 과소비, 극심한 부의 편중, 그리고 그로 인한 생태환경의 파괴로 인해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다 함께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서 언제 올지 모를 ‘그날’을 향해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많은 이론들이 있다. 19세기 이후 진행된 산업화에서 문제를 찾는 사람도 있고, 인간의 본성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므로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겨우 1만년이 안된 인류문명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문명의 판을 짜자고 주장하고 있다. 새판을 짜기 위해서는 언제부터 무엇이 잘못되기 시작했는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그것을 바로잡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지 등등 밝혀야 할 것이 많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회운동과 농업노동에 쏟고 있는 사람이기에 식견 있는 독자들과 이 문제를 함께 풀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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