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과 선진국

2017.12.04 21:14 입력 2017.12.04 21:24 수정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황대권의 흙과 문명]적정기술과 선진국

지난 12월1일 서울대학교에서 ‘적정기술 국제콘퍼런스’가 열렸다. 정부의 해외개발원조 자금을 받아 열리는 이 콘퍼런스는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져 올해는 하루에 무려 55개의 발표가 이루어졌다. 오래전부터 적정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도 한 꼭지 맡아 발표하였다. 발표를 하면서도 왠지 잘하고 있는 남의 잔치에 쳐들어가 훼방 놓는 기분이 들어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발표가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들을 도와줄 수 있는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발표 첫 마디를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도둑질로 집안을 일으킨 아버지가 자식에게 도둑질만큼은 하지 말라고 타이르면 자식이 말을 듣겠습니까?” 우리는 부지런히 선진국의 첨단기술을 들여와 경제를 부흥시켜 놓고 이제 돈 좀 벌었다고 후진국을 도와주면서 “당신들은 아직 수준이 안되니 적정기술을 사용하도록 하시오”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황대권의 흙과 문명]적정기술과 선진국

내 발표의 논지는 간단하다. 선진국이야말로 적정기술이 가장 시급한 곳이라는 것이다.

원래 적정기술 개념은 전문가와 관료가 지배하는 거대기술의 폐해를 비판하면서 생겨났다. 그런데 1960~70년대의 제3세계 원조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는 비판이 일자 돈과 소비 물자가 아니라 원주민이 스스로 벌어 먹고살 수 있는 적절한 기술을 전해주자는 주장이 널리 퍼지면서 지금은 마치 적정기술이 제3세계를 위한 기술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선진국이 전해주는 적정기술이 예측한 대로 실효를 거두고 있을까?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것이 적정기술이건 저급기술이건 외부에서 만들어져 수입되는 한 원주민들에게는 그저 ‘외래기술’일 뿐이다. 원주민들은 기술보다는 기술을 가지고 들어온 선진국 사람들과 선진국의 문물에 관심이 있지 기술 그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자기들도 선진국처럼 잘살 수 있을까 하고 부러워하거나 선진국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어 신분 이탈을 꿈꾸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 실제로 선진국에서 만들어준 적정기술 시설과 장비들은 몇년 후에 가보면 쓰레기처럼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몇몇 성과물을 일반화하여 정부 자금을 가지고 뻔질나게 제3세계를 드나들며 적정기술 전도사 노릇을 하는 것은 미안한 말이지만 자기만족에 더 가깝다. 진정으로 적정기술 원조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현지로 이민을 가서 원주민들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평생을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다가 현지에서 생을 마감한 슈바이처 박사가 그 대표적 사례이다.

적정기술은 인간척도(human scale)에 기초한 소규모이면서 사회적으로도 위화감을 주지 않는 기술을 말한다. 다시 말해 전문가가 지배하는 중앙집중식 거대기술에 대한 대안기술이다. 오늘날 지구적 규모의 생태위기는 거의 모두가 선진국의 거대기술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선진국에서 만들어내는 각종 오염물질과 방사능, 유전자변형생물(GMO) 등이 생태계를 회복불능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데 자신들은 거대기술을 그대로 쓰면서 가난한 나라에 생태계를 살리는 기술을 쓰자고 말하는 것은 이만저만한 후안무치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선진국은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적정기술을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혹자는 이미 거대도시로 발전한 데다 고도로 복잡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는 선진국에서는 거대기술이 적정기술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일면 맞는 말이지만 선진국 사회가 자연생태계와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적정기술이 될 수 없다. 자연생태계의 입장에서 볼 때 거대기술은 일탈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거대기술을 고집하는 이유는 거대기술 창안자들의 제국주의적 지배욕망 때문이다. 후진국이었던 서양은 거대기술의 우위를 앞세워 동양을 지배하고 더 나아가 전 세계를 식민지로 만들어버렸다. 그로 인해 세계는 끊임없는 전쟁과 분란에 시달리고 있다. 거대기술은 생태계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의 평화는 물론 인간성 자체를 파괴하고 있다.

생태적이면서 평화로운 세계를 원한다면 모든 나라들이 적정기술을 중심에 놓고 한 나라의 기술을 어떻게 재편성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후진국은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자기 실정에 맞게 업그레이드해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만 선진국은 문제가 복잡하다. 기술은 고유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 다운그레이드가 안된다. 한번 높은 수준의 기술을 맛본 사람은 절대 그보다 낮은 기술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기술의 내면화 또는 내실화이다. 말하자면 기술을 인문학적으로 해석하여 생활 속에서 적정기술을 구현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저급한 기술이 아니다. 선진국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과 기술을 다 동원해야 가능한 일이다.

예컨대 첨단 디자인일수록 형태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선진국의 적정기술은 여기에 비용과 생태계와의 조화, 인간척도, 사회적 수용성, 노동가치의 실현까지 다 집어 넣어야 하므로 굉장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하여 이것을 전문가에게 맡겨서는 안된다. 시민대중의 다양한 연구와 시행착오 속에서 만들어져야 제대로 된 생활밀착형 적정기술이 된다. 당연히 국가는 일반시민들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를 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선진국과 후진국이 적정기술을 중심에 두고 서로 수렴함으로써 보다 평등하고 평화로운, 그리고 생태적으로 조화로운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