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의 온기라도 쥐여주려면

2020.12.28 03:00 입력 2020.12.28 03:03 수정

컵라면은 바쁘고 입맛 없을 때 뜨거운 물만 부으면 언제 어디서든 한 끼의 식사로 변신하는 요긴한 패스트푸드이지만 미디어에서는 종종 고단한 삶을 상징하는 장치로 쓴다. 특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이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면 대사가 없어도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삶의 비극성을 드러낼 때도 라면이 동원된다. 비근한 사례로 인천의 주택 화재를 ‘라면형제’ 사건으로 명명하는 것이다. 화재 조사 결과 라면을 끓이다 불이 난 것은 아니라지만 이 사건은 앞으로도 ‘라면형제’ 사건으로 불릴 것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2016년 5월28일 구의역 김모군. 이렇게만 말해도 숟가락이 올려져 있는 사발면 사진이 떠오르곤 한다. 19세 청년노동자 김군의 유품에서 나온 사발면은 그 어떤 말보다 힘이 있었다. 추모객들은 구의역 승강장에 추모의 글귀를 남기고 꽃을 갖다 놓기도 한다. 컵라면을 갖다 놓기도 한다. 고인을 추모하려면 좀 더 비싸고 좋은 음식을 가져다 놓을 법도 하건만 왜 컵라면일까. 또 누군가는 천천히 먹으라는 메모지와 함께 편의점 샌드위치를 가져다 놓았다. 지상에서는 늘 급하게 쫓기며 먹는 신세였지만 하늘에서는 비록 편의점 샌드위치더라도 천천히 체하지 말고 먹으란 뜻일 것이다. 컵라면과 편의점 샌드위치를 가져다 놓은 저 추모 의례는 나도 당신의 삶과 다르지 않게 살고 있다는, ‘나는 너다’란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다.

기름때 묻은 공구와 함께 발견된 구의역 김군의 숟가락은 인간의 식사란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깨끗하게 닦인 수저로 자리를 잡고 가급적 ‘천천히’ 먹는 밥을 인간의 식사라 한다면, 김군은 안전문 수리를 하면서 제대로 식사를 한 적이 몇 번이나 될까. 그때 정치인들도 달려와 추모의 말을 보태며 정치적 해결을 약속했다. 하지만 2년 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씨의 유품에도 컵라면이 있었다. 구의역에 와서 입법을 통해 위험을 방치한 자들의 처벌과 재발 방지를 하겠다고 약속한 정치인들의 금배지는 여전히 반짝거리는데 생명의 빛을 잃은 노동자들은 더 많아졌다.

서울교통공사나 한국발전기술 같은 회사는 필수 기간시설을 운영하는 공공부문에 속해 있으니 사기업보다야 노동 환경이나 처우가 좀 더 낫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실상은 하청의 굴레 속에서 ‘갑’ 회사에 옴짝달싹할 수 없는 ‘을’일 뿐이었다. 그렇게 ‘을’ 회사에 소속되어 을 중의 을로 일하다 죽었건만 고작 하청회사의 말단 관리자만 약간의 죗값을 치렀을 뿐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산업재해 사망자는 2020명, 하루에 7명꼴이다. 다치는 사람은 그보다 더 많다. 누군가가 죽어간 자리를 구의역 김군과 태안화력 김용균씨가 메웠고 이들이 떠난 자리는 새로운 죽음들로 속속 채워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산재사망률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한국이야말로 ‘K산재국’이다. 산업재해로 자식을 먼저 보낸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방송 제작 노동의 고통을 죽음으로 알린 tvN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가 12월11일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을 하고 있다. 이 법이 제정되어도 자식이 살아 돌아오지 않겠지만 모든 부모의 이름을 걸고 싸우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현장의 안전을 철저히 지키게끔 처벌 규정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하청을 준 중소기업 뒤에 숨어 모르쇠로 일관하는 원청의 대기업들과 공공기업도 재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법에 적어두자는 것이다. 없는 법은 안 지켜도 있는 법은 지키려고 할 테니 말이다. 이 법이 제정되면 기업들이 망한다는 반발도 있다. 이는 그간 사람 잡아가며 기업을 운영했다는 자백밖에 안 된다. 추운 겨울 굶고 있는 유족들에게 따뜻한 컵라면의 온기라도 쥐여주려면 그날, 구의역으로 달려왔던 정치인들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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