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가을이 와요

2023.11.24 20:29 입력 2023.11.24 20:30 수정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며 두 계절의 사이가 아무리 가까워졌다고 해도 그 사이에 가을이 있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심해지고 건조한 날씨에 눈도 따끔거린다. 몸의 변화로 계절의 변화, 환절기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마음의 변화로도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분이야’, ‘난 어떤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해’.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을 잠식한다. 계절성 우울증이다. 계절성 우울증의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신경전달물질인 멜라토닌이 줄어 일시적으로 우울증을 유발한다고 보고 있다. 같은 환절기이지만 봄보다는 해가 짧아지고 바람이 차가워지는 가을에 유발률이 높다. ‘11월의 저주’라는 말이 있을 만큼 자살 소식도 다른 때보다 많이 들려온다.

여러 정신질환을 진단받고 주기적으로 정신의학과에 다니며 꼬박꼬박 약을 먹은 지도 몇년이다. ‘네가 마음먹기에 달렸어’, ‘양약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노력을 해봐’ 같은 말은 위로도 도움도 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너 같은 애가…’ 하는 걱정도 부담만 될 뿐이다.

머리에 꽃을 꽂고 길을 쏘다니거나 다락방에 갇혀 있는 ‘미친×’에게는 서사가 있어야만 한다. 특별한 일이 없다고 말을 해도 어떠한 일이 ‘문제’를 촉발했으리라는 서사를 부여하고야 만다. 불우한 가정환경이라든지 순탄치 못했던 교우관계나 폭력에의 노출, 무엇이든 충격적인 일을 겪어 마음의 병을 얻었다는 서사. 내게도 어떤 일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정신질환의 원인이라는 극적인 서사는 없다. 10대 초중반부터 앓아온 정신질환은 알레르기나 위염과 같이 늘 관심을 가지고 관리를 해야 하는 ‘반려병’ 중 하나이다.

실제 간호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웹툰을 드라마화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는 다양한 정신질환 환자가 등장한다. 질환마다의 특성도 정신병동 의료진의 일상도 섬세하게 묘사한다. 정신질환이 희화화되지도 않고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어느 날에는 안정적이고 어느 날에는 ‘액팅 아웃’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극중 정신의학과 간호사가 우울증 환자라는 것이 알려지자 환자들도 환자 가족들도 그 간호사를 불신한다. 병을 가진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겠다는 건 욕심이지 않냐고 비난한다. 이마저도 우리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뉴스에 흉악범죄 용의자가 어떤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기자의 멘트가 나오면 입을 닫게 된다. 누군가가 무슨 약을 먹는 거냐 물으면 대충 둘러댄다. 증상으로 힘들 때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정신질환 환자라는 나의 ‘커밍아웃’이 나를 향한 불신이나 배제, 따가운 시선과 같은 위협으로 돌아올 때도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말한다. 정신질환이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예상할 수 없는 병이라고. 그렇다. 누구나 아플 수 있고 아플 때는 숨지 말고 아픔을 드러내야 한다. 따뜻한 날이 지속되다 갑자기 추워졌다. 이사이 짧은 가을에도 또 누군가는 아파하고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가을이 온다고, 누구라도 아플 수 있다고,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김예선 부산민주공원 홍보 담당 청년활동가

김예선 부산민주공원 홍보 담당 청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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