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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처와 자주 일을 하느냐는 물음에 답을 찾느라 한참 동안 생각한 적이 있다. 18개의 중앙행정기관 모두 장애인이나 아동, 여성에 관한 정책을 다루고 있기에, 같이 일을 안 해 본 부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장애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경우, 법무부는 진술 조력인과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여성가족부는 장애 여성 성폭력 상담소나 쉼터를, 보건복지부는 피해 장애 여성에게 필요한 돌봄이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2022년 10월 15일 한국 여성의 전화 등 전국 180 개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 회원들이서울 종각 인근에서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안을 규탄하는 “성평등 민주주의 후퇴 우리가 막는다” 집회를 열고 있다.  이준헌 기자

2022년 10월 15일 한국 여성의 전화 등 전국 180 개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 회원들이서울 종각 인근에서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안을 규탄하는 “성평등 민주주의 후퇴 우리가 막는다” 집회를 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성폭력 피해자인 장애 여성이 오직 범죄 피해자로만 존재하지는 않기에, 여러 부처가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장애 여성은 억압적인 가정 아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청년일 수도 있고, 어린아이를 홀로 돌봐야 하는 엄마일 수도 있으며, 피해 수습을 위한 휴가를 갑자기 내기 어려운 노동자일 수도 있다. 각기 다른 복잡한 상황 속에 다면적인 특성이 있는 사람을 여러 부처가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지원하기에, 단지 효율성을 이유로 정책 담당 부처의 통폐합을 결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플랫]유엔 “한국 정부, 여가부 폐지 철회하고 장관 임명하라”

여가부 폐지론이 나온 지 벌써 3년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인 2022년 1월7일, 후보자 페이스북 계정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가 올라온 후 이는 대선공약이 되었고, 국민의힘은 같은 해 10월 여가부 폐지 조항이 담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여가부를 없애면서 기존 가족·청소년과 폭력 피해자 지원 및 양성평등 정책 분야는 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에 이관하고, 여성 노동 관련 분야는 고용노동부에 이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이었다. 국회 논의와는 별개로 올해 2월20일 김현숙 여가부 장관의 사표가 수리된 이후 지금까지 장관 공석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5월 초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신설하겠다는 대통령실 계획이 발표되면서 여가부 폐지론이 재점화되었다.

한편 지난 5월29일 21대 국회가 문 닫으며 여가부 폐지에 관한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자동 폐기되었다. 22대 국회는 범야권이 192석을 차지하는 여소야대로 문을 열었고,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6월4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여가부를 폐지하는 법안을 철회하고 장관을 속히 임명해 여가부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할 것을 권고했다. 이어 12일, 국가인권위원회도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해당 권고를 적극 이행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유엔 심의 현장에 앉아 여가부 공무원의 입에서 여가부가 없어져야 하는 이유를 정성스레 설명하는 것을 직접 보기란 참 어색했다. ‘여성의 건강과 보건, 출산과 양육 문제와 빈곤과 장애, 노인 문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폐지한다는 정부의 답변 이후 곧바로 비정부기구(NGO) 참가단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여가부는 바로 그 유기적 기능을 잘 수행하기 위해 탄생한 부처이기 때문이다.

부처 폐지에는 적지 않은 노력과 비용이 든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박근혜 대통령이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겠다고 발표한 후, 해경은 같은 해 11월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로 이관되었다. 그로부터 불과 3년도 지나지 않은 2017년 7월 말, 문재인 대통령은 해경을 다시 독립된 부처로 복원했다. 조직 개편과 통합, 새로운 기관이나 부서의 설립과 운영, 복원과 재조직에 든 큰 노력과 비용은 공중에 흩어져 버렸다.

2001년 김대중 정부가 여가부를 만든 이유는 성평등 촉진과 가족정책 수행만이 아니다. 아동과 청소년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권익 보호와 지원도 있다. 20년 넘게 이어온 부처의 역할과 기능을 ‘역차별’이라는 정치적 몰이로 납작하게 만들면,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린 누군가를 위한 국가의 역할도 함께 오므라들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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