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간첩조작’ 징계받은 검사에게 ‘공직기강’ 맡기다니

2022.05.05 20:53 입력 2022.05.05 23:03 수정

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장제원 비서실장이 5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을 나서면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5일 대통령실 비서관급 1차 인선 명단 19명을 발표했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게 될 비서실장 직속 비서관 7명 중 3명이 윤 당선인과 가까운 검찰 출신으로 채워졌다. 특히 검찰사 최대 오점 중 하나인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됐던 이시원 전 부장검사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내정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비서관 내정자는 2012년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있으면서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 수사를 맡았다. 당시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제출받아 법원에 낸 유씨의 ‘중국·북한 출입경 기록’이 위조됐다는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유씨는 무죄가 확정되고 이 내정자를 비롯한 검사들은 수사 대상이 됐다. 검찰은 이 내정자가 직접 증거를 조작하거나, 조작 사실을 인지하지는 않았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증거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 내정자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로 좌천된 윤 당선인과 대구고검에서 함께 근무하며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그는 국정원이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조작한 범죄를 사실상 방조하거나 묵인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윤 당선인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이런 인사에게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는 엄중한 책임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공정’과 ‘상식’에 맞는 일인가.

대통령실 살림을 책임질 총무비서관으로 내정된 윤재순씨는 윤 당선인의 검찰총장 시절 대검찰청 운영지원과장을 지냈다. 대통령 법률자문을 담당할 법률비서관에 내정된 주진우 전 부장검사는 2019년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한 바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인사검증을 맡았다. 이들의 존재만으로도 청와대 내 ‘문고리 권력’ 논란이 일고 ‘검찰공화국’ 시비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인사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면서도 아랑곳없이 측근을 쓰겠다는 윤 당선인의 인식이 우려스럽다.

윤 당선인은 또 정책조정기획관실을 신설하고, 책임자인 정책조정기획관에 장성민 당선인 정무특보를 임명했다. ‘대통령실 슬림화’를 내세우던 윤 당선인이 정책조정기획관실을 별도로 만든 것은 측근인 장 특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위인설관’이라는 의심이 든다. 윤 당선인 측은 정책조정기획관실이 중단기 정책과제를 조정·관리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기존 정책실은 왜 없애겠다는 건가.

인선 발표 때마다 반복되는 ‘다양성 실종’은 더 지적하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이날 내정된 19명 중 여성은 2명뿐이고, 30대 이하 청년은 전무하다. 윤 당선인은 오는 8일 비서관급 인선 결과를 추가로 발표한다. 남은 인선에서는 반드시 여성·청년들이 호명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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