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극복 ‘전원일기’의 영원한 할머니

2004.12.20 17:50 입력

“‘전원일기’ 같은 농촌 가족드라마가 다시 부활한다면 그곳에 딱 한번 게스트로 출연해 죽기 전 내 생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고 싶습니다.”

MBC ‘전원일기’의 ‘영원한 할머니’ 정애란 여사(본명 예대임·78)가 요즘 TV 드라마에서 농촌이 사라져버린 현실을 개탄하며 농촌 가족드라마의 부활을 간절히 소망했다.

그는 또 “내년이 벌써 팔십이라 나의 60년 무대인생은 커튼을 내렸으나 농촌(평택 서정리) 출신이라서 그런지 전원일기 같은 드라마에 대한 애착은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10년 전 갑자기 폐암(말기)이 발견돼 2~3년간의 투병생활을 했으나 대수술과 지독할 정도의 신앙심(천주교)으로 병을 극복하고 건강을 회복했다. 그 뒤 연기 생활을 계속하다가 2002년 12월19일 ‘장수드라마’ 전원일기의 종영(1,088회)과 함께 서울 외곽의 한 고급 실버타운으로 주거지를 옮겨 홀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정씨는 “건강은 활동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좋은 편이지만 고령이라 기력이 약하고 투병 당시 폐암균을 찾아내기 위한 머리수술 후유증으로 시력이 크게 나빠져 요즘 TV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드라마를 못봐도 누가 어디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는 다 전해들어서 알고 있다”며 각종 시상식이 쏟아지는 연말에 중·장년 연기자들은 소외감만 느끼지 말고 오히려 그걸 기화로 분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장년 연기자들은) 요즘 젊고 예쁜 후배들이 안방극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서 어린 후배들이나 방송국 탓만 할 게 아니다”라며 “전성기의 유명세에만 의존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신해야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정씨는 “내가 누구에게 신세지는 성격이 아니어서 깔끔하게 아파트형 노인홈을 택했다”며 “거처를 외부에 전혀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후배들 얼굴보기도 어렵지만 주말마다 딸(연극배우 예수정씨)·사위(탤런트 한진희씨) 부부가 찾아와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정씨는 18세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랑극단을 따라 배우의 길로 접어들어 그간 2,000여편의 연극·영화·드라마에 출연했다. 1991년 한국방송협회방송대상 공로상과 ‘상하이TV 페스티벌’ 여우조연상(KBS 신TV문학관 ‘길위의 날들’) 등을 받았다.

〈김정섭기자 lak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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