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결사의 자유 옥죄려는 윤 정부, 국민의 말 겸허하게 들어야”

2023.06.27 20:56 입력 2023.06.28 09:33 수정

‘데모하는 작가’ 정보라

정보라 작가가 지난 20일 경향신문사 스튜디오에서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얼룩진 서울국제도서전 사태와 신작 소설 <한밤의 시간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정보라 작가가 지난 20일 경향신문사 스튜디오에서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얼룩진 서울국제도서전 사태와 신작 소설 <한밤의 시간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인문학부, 미국 예일대 러시아동유럽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대학에서 슬라브문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부터 2021년까지 대학 강단에 섰다.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를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저주토끼> <여자들의 왕> <아무도 모를 것이다> 등이 있다. <호>로 디지털문학상 우수상, <씨앗>으로 SF어워드 우수상을 받았다. <저주토끼>는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선정된 후 20개국 이상에서 번역·출간됐다. <거장과 마르가리타> <안드로메다 성운> 등 슬라브어권 문학 작품 다수를 우리말로 옮겼다. 최근 소설집 <한밤의 시간표>를 출간했다.

블랙리스트 지휘한 남성들을 여성작가 뒤에 숨긴, 문체부와 출협 야비
세월호 참사 뒤 사회참여 더 강해져…집회 현장에서 소설 구상 많이 해
부끄럽게 살지 않기 위해 나섰고, 성평등 문제엔 온 힘 다해 저항할 것
연세대와 소송 대법까지 갈 각오…노동 관련 최근 대법원 판결엔 실망

정보라 작가는 소설을 쓰고 번역하고, 데모를 한다. 지난해 소설집 <저주토끼>가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올라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시민 정보라’의 행보는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시위 현장 어디선가에서 그를 볼 수 있다. 정 작가와의 인터뷰는 지난 20일 경향신문사에서 했다. 그는 전날에도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가는 시민대책위 기자회견에 갔다 왔다”고 했다. 그 다음날엔 시간강사로 일했던 연세대를 상대로 제기한 퇴직금·수당 청구 재판이 있었다. 2021년 강의를 그만둔 정 작가는 연세대와 11년치 퇴직금·수당 청구 소송 중인데, “대법원까지 갈 각오”를 다지고 있다. 최근 폐막한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박근혜 정부 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간여’ 의혹을 받는 오정희 소설가의 홍보대사 위촉에 항의하다 문화예술인들이 끌려 나가는 일이 벌어지자 어김없이 마이크를 잡았다. 정 작가는 분개했다. 그는 “도서전에서 시인을 끌고 나가 내동댕이치는 것이 공권력이 할 짓이냐”며 대통령경호실의 위법 문제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또 “문화체육관광부와 도서전을 주최한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공개사과하고 재발방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옥죄려는 이 나라가 문제”라면서 “국민이 할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고, 정부가 잘못했으면 겸허하게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가 데모를 하는 이유는 “부끄럽게 살고 싶지 않아서”이다. 말처럼 그는 오랫동안 세월호 유가족 천막을 지켰고, 차별금지법과 중대재해법 제정을 위한 오체투지,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집회에 나갔다. 그러곤 뒤틀린 세상을 ‘저주’하는 글을 쓴다. 그 끝은 여러 갈래다. 세상엔 열받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사필귀정·권선징악에 이르는 그의 글은 현실에서 소외받고 부당한 일을 당한 피해자들을 위한 위로이자 가해자들을 향한 경고가 됐다. 얼마 전 수상한 연구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묶은 소설집 <한밤의 시간표>를 냈다. 이번엔 토끼 대신 ‘저주양’이 등장한다. 정 작가와 긴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다음 저주는 무엇일까.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인 정보라 작가(가운데)가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앞에서 열린 문화예술단체 기자회견에서 ‘서울국제도서전’ 오정희 홍보대사의 사과·반성 없는 자진 사퇴를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인 정보라 작가(가운데)가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앞에서 열린 문화예술단체 기자회견에서 ‘서울국제도서전’ 오정희 홍보대사의 사과·반성 없는 자진 사퇴를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서울국제도서전을 계기로 다시 불거졌습니다. 오정희씨 홍보대사 위촉에 항의하는 문화예술인들이 현장에서 끌려 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는데요.

“출협이 홍보대사로 오정희 소설가를 선정하면서 사달이 났어요. 개막식 날 항의하는 송경동 시인이 입장하려다가 김건희 여사의 도서전 축사를 위해 현장에 온 대통령경호실 직원들에게 강제로 끌려 나갔고, 문화연대와 블랙리스트이후(준) 활동가 역시 끌려 나가며 비명을 지르고 너무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어요. 경호법을 이유로 시인을 짐짝처럼 들고 나가서 내동댕이치는 것은 공권력이 할 짓이 아니잖아요. 코엑스와 도서전 관계자들 요청에 따라 항의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피켓을 접어서 들고 있었고, 경호 구역에서 폭력적 언행을 하지 않았어요. 그냥 가만히 뒀으면 아무 일 없었을 텐데요.”

- 오정희 작가가 자진사퇴하긴 했지만 화가 날 수밖에 없었겠는데요.

“도서전을 전면 보이콧한다는 말도 나왔었는데, 보이콧하면 결국 피해는 출판사와 작가들한테 돌아가요. 독립 출판사들은 도서전 매출이 상당히 크거든요. 결국은 작가들 몫이죠. 이런 일은 진짜 작가 생명이 걸린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부가 권력을 남용해서 문화예술인의 사상이나 작품을 사찰하기로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잖아요. 그럴 때는 집 밖으로 나와야지요. 오 작가가 블랙리스트 사태 가담과 실행에 대해 인정도 사과도 않는 것은 잘못이에요. 중도에 말없이 사퇴한 것은 더 비겁하죠. 그러나 오 작가가 혼자 한 건 아니잖아요. 한국 문단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 남성이에요. 블랙리스트 사태를 진두지휘하던 남성들이 정작 여성 작가 등 뒤에 숨어버렸어요. 홍보대사 6인을 전부 여성으로 선정한 것도 문화부와 출협의 의도가 뻔히 보이고 정말 야비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곧바로 ‘여자의 적은 여자’ 따위 논리를 들고 나올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블랙리스트 사태와 그 후폭풍은 창작의 자유에 관련된 문제라 제가 대표로 있는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회원들에게도 의견을 물어 단체 이름을 걸고 기자회견에 참가했습니다.”

- 목소리를 내기가 쉽진 않을 텐데요.

“물론 상대 작가에게 공개적으로 비판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저야 장르문학 작가이니, 아무래도 문단 권력에서 좀 자유로운 측면이 있긴 해요. 그러니까 이렇게 나댈 수가 있기도 하죠. 그렇지만 할 수 있는 행동은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는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자유롭게 일할 권리를 위한 투쟁이기도 하니까요. 문화연대 등 문화예술단체, 송경동 시인과 함께 도서전 마지막 날에 코엑스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오정희씨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반납을 촉구하고 문화부에 이번 사태와 관련한 책임자 처벌·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사과하지 않는 대통령경호실의 위법도 물어야 합니다.”

- 그동안 많은 시위 현장을 다녔는데, 정부가 ‘집회 및 결사의 자유’에 대해 전방위적 공격을 하고 있는데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이 나와요. 3·1운동, 4·19혁명도 데모였잖아요. 우리는 데모의 민족이고, 투쟁과 피와 땀으로 이룬 나라입니다. 이태원 참사 후 여야 없이 정치권에서 제일 먼저 나온 얘기가 세월호 때처럼 촛불집회를 해서 정권 바꾸려나였어요. 그래서 국민의힘 쪽에서는 ‘집회를 못하게 해야겠다’, 더불어민주당 쪽에서는 ‘그러면 누구를 대통령으로 해야 하나’ 했던 것 같아요. 사람이 159명이 죽었는데 여야 모두 정권 생각만 하고 있잖아요. 누구를 대통령 만들어 주려고, 정권 바꾸려고 데모하는 것 아니고요. 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인데, 이를 옥죄려는 이 나라에 문제가 있는 거죠.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로서 국민으로서 할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고, 잘못했으면 그걸 겸허하게 들을 줄 알아야 해요. 정치인들이 정권 바꿀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 지금 세상이 이 지경 이 꼴인 거예요.”

- 연세대와의 소송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요.

“올 초 서울고법이 국립 부산대·부경대 시간강사들의 연차·주휴수당 청구를 기각해서 결과가 좋진 않아요. 연세대는 관련 재판 판결을 보려고 시간을 끌고 있다고 생각해요. 환갑 아니, 그 이후까지. 대법원까지 갈 각오로 끝까지 싸울 거예요.”

- 강의를 오래 했는데 학교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어요.

“학교로 다시 들어간다면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로 남든가, 그 두 가지 중에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그걸 알면서도 발을 들이고 싶지는 않아요. 제 전공이 20세기 소련 문학이거든요. 러시아가 전쟁을 멈추지 않잖아요. 푸틴이 소련 시절의 시나리오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 제 눈에는 보여요. 과거 스탈린이 홀로도모르(‘기아에 의한 죽음’)로 우크라이나를 없애려고 했었는데, 이제 고전적인 방식으로 그걸 다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학생들한테 전쟁 범죄자를 지도자로 두고, 애국적이라고 숭배하는 나라의 언어와 문학을 어떻게 가르칠 수가 있겠어요. 러시아가 자기들의 문화와 역사를 무가치하게 만들었으니 자업자득이에요. 저는 ‘복수와 저주’의 작가이기 때문에 ‘자업자득’ ‘망해라’ 막 이러고 있어요.”

-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온 힘을 다해 저항해야 하는 것들’은 이를테면 무엇인가요.

“너무 많아요. 특히 성평등이요. 어린이 성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분의 특강을 코로나19 때 들은 적 있어요. 근데 그분이 ‘성교육을 3~4세 때쯤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서너 살 때부터 가르치면 그때 아이들은 편견이 없기 때문에 스펀지처럼 쫙 빨아들인대요. 모든 성별의 아이들한테 그런 교육을 하면 세상이 정말 혁명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근본적으로 좀 바꿔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다른 사람을 괴롭힐 권리를 가지는 것이 나의 우월함의 증명이고, 차별이 싫으면 노력해서 너희도 나처럼 남을 괴롭힐 권리를 가진 사람이 되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 부정하라는 얘기처럼 들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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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참여의 물꼬를 트게 된 계기가 있어요.

“2013년도 철도민영화 반대 시위가 시작이었고요. 근본적으로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였어요. 수업시간에 말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세월호 참사 후 그 생각이 더 강해졌고요. 러시아에서 어머니를 따라서 한국에 온 단원고 2학년 4반 슬라바의 동생 준성이가 그때 여섯 살인가 그랬거든요. 준성이가 커서 ‘너는 무엇을 했냐’고 물으면 ‘나는 할 수 있는 걸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근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를 많이 배우게 돼요. 그리고 ‘특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한국에서 다 행복하지도 않아요. 입시·취업 압박에 자신이 어떤 특권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해요. 근데 그걸 가르치지도 않아요. ‘너 따위 없어도 삼성 들어갈 사람은 많다’ ‘서울대 못 간다’ 계속 압박을 하니까 온 국민이 어마어마한 트라우마와 스트레스에 눌려 있는 셈이죠. 특권이 없는 사람의 삶이 어디까지 내몰리는지 생각할 여유도 없고, 그걸 생각하라고 하면 막 화를 내는 거예요.”

- 파업 중인 미국작가조합(WGA)에 한국 작가들도 연대하고, 인공지능(AI)에 대항한 ‘인간의 첫 파업’으로 세계적 관심을 받았어요.

“사람한테 돈 주지 않고 AI 돌려서 이윤을 내고 사람은 내쫓겠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잖아요. 인간한테 정당한 보상을 하고, 작가를 소모품으로 대하지 않으면 사실 생산성을 굉장히 증대시킬 수 있는 도구이기는 해요. 근데 그런 방향으로 AI를 활용하지 않으니까 문제가 되는 거지요. 애초에 사회가 사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짜여 있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죠.”

소설집 <한밤의 시간표>.

소설집 <한밤의 시간표>.

- 이번 신작 <한밤의 시간표>에는 양이 저주 동물 계보를 잇는데요.

“제가 필진으로 있는 환상문학 웹진 ‘거울’에서 2015년 말, 12지신 가운데 한 동물을 정해서 각자가 글을 쓰자고 했었거든요. 웬만한 멋있는 동물들은 거의 선택이 끝났고, 남은 건 토끼하고 양뿐이었어요. 그래서 <저주토끼>를 먼저 썼고, 후에 저주양도 써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남편이 경북대를 나왔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은데 남편이 학교를 다닐 때 수의과에서 키우는 양들이 학교를 돌아다녔다고 하더라고요. 실험할 때 쓰는 양이라서 수술 자국이 있고, 링거 같은 거 달고 있어서 양들이 너무 불쌍했다고 한 얘기를 들은 것도 있고요. 그래서 이번 <한밤의 시간표> 배경이 연구소입니다.”

- 글이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해요.

“모나미 153 프리미엄 펜으로 종이에 글을 써요. 잘 써지기 시작하면 타자를 치면서 좀 솎아내고 하다 보면 뭘 써야 될지 좀 보이기 시작해요. 집회에서 행진하면서 구상을 되게 많이 했어요. 특히 1인 시위할 때 소설 구상을 많이 했어요. 데모를 합시다. 소설 쓰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오늘도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요.

“도서전 중간에, 지난 15일 쌍용차와 현대자동차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 기자회견에 다녀왔거든요. 결과가 일부 파기였죠. 회사가 쟁의 원인을 제공했어도 노동자들이 회사에 손해를 입히면 조합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나왔는데, 어쩌라는 거예요. 그냥 죽으라는 얘기잖아요. 근데 이게 노동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이면 저도 정권이 바뀌어서 나한테 유리한 정권이 될 때까지 계속 소송을 해야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도 들고요. 이번 대법원 판결은 정말 실망이에요. 저도 데모 좀 그만하고 싶어요.”

- 이제 뭐 할지 계획 잡은 게 있어요.

“세 출판사가 함께 펴내는 ‘아무튼’ 시리즈를 준비해야 합니다. 제목은 ‘아무튼 데모’쯤이에요. 출판사와 연말까지 마감하기로 약속했으니, 책은 내년 초쯤이나 나오겠네요.”

이명희 논설위원

이명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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